연애

연애 30

바라쿠다 2012. 10. 28. 01:01

" 얼마나 다쳤대요? "

" 아직 몰라요..  의사가 나와봐야 알지.. "

칼국수를 먹다가 핸폰을 받은 성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신발도 신는둥,마는둥 허둥대며 병원까지 달려와야 했다.  

역시 수술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윤식씨가 눈에 들어온다.    그에게 철수의 상태를 물어봤지만, 신통한 대답이

나올리는 없다.

" 여진아..   이 일을 어쩐다니.. "

" 가게 근처에서 사고가 났어요..   과속으로 달리던 차가 철수가 탄 오토바이를 들이 박았대요..   가게 밖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길래 내다 봤더니, 벌써 119가 와서는 철수를 앰블란스에 싣고 있더라구.. "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윤식씨나,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우리나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 언제 수술실에 들어갔어요? "

" 이제 1 시간쯤 됐을겁니다.. "

" 근데, 왜 아직도 안 나와요?    빨리 나와야지..   철수씨가 얼마나 다쳤는지 봐야하는데.. "

아직도 얼굴에 핏기가 없는 성희가 발을 동동거린다.      얼마나 놀랬는지 손까지 부들부들 떨어댄다.

" 그만 진정해라, 금방 나오겠지.. "

" 차가 들이 박았다잖아, 이 년아..   지금 내가 진정하게 됐니? "

뭐라고 얘기를 해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듯 막무가내가 된 성희다.     그저 철수의 안위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수술실 문앞을 지키고 서서 어쩔줄 모르는 성희마저 잘못 될까봐 염려스러울 정도다.

" 그래도 침착해야지..  너까지 이러면 안돼.. "

불안해 하는 성희의 어깨를 끌어안아 수술실 입구에 있는 쇼파에 앉혔다.

" 어쩜 좋니, 여진아..   철수씨가 잘못되면 어쩌니.. "

성희의 동공마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연신 움직이는 중이다.     일찌기 이렇듯 겁먹은 성희를 본 적이 없다.

" 괜찮을거야, 기다려 보자.. "

" 그렇겠지?    괜찮겠지?   맞어, 괜찮을거야..   철수씨는 그런 사람이 아냐.. "

혼자서 독백이라도 하듯, 흥분을 가라앉히질 못하고 불안에 떨고만 있다.     아직도 가늘게 떨리고 있는 성희의 두 손을

감싸줘야 했다.

 

무려 세시간이 지나고서야 수술실 문이 열렸다.

" 어찌 됐나요? "

수술실에서 나온 의사에게 몰려갔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안경을 고쳐 쥐더니 차분하게 설명을 한다.

" 다친곳이 많아서 늦었어요..   머리며 목, 허리까지 CT 촬영을 했어요, 나중에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부러진 곳이

많아요..   장도 파열이 됐고, 죽지 않는게 다행일 정도였으니까.. "

" 지금 볼수 있나요? "

" 조금후에 응급실로 옮길겁니다..  지금은 보셔야 소용이 없고, 내일 아침이나 돼야 어느정도 감이 올겁니다.. "

수술실 복도를 끼고 돌아 응급실로 향했다.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볼수 있을뿐이다.

" 자기야.. "

무려 30 여분을 기다린 끝에, 맞은편 응급실 문으로 병실 침대에 실려 들어오는 철수가 보인다.

응급실 창에 기대어 서서는, 철수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성희의 눈에 눈물이 그득하게 고인다. 

수술실 침대에서 응급실 침대로 옮겨지는 중에, 철수의 온 몸이 붕대며 거즈로 덮다시피 가려져 있는게 보였다.

" 여기 계셔야 소용이 없는데..   아침에 다시 오시죠, 그 때는 면회가 될 겝니다.. "

응급실 당직인듯 한 의사가 안에서 지켜보다가 나온 것이다.     하염없이 응급실 안을 들여다 보고 있는 우리들이 딱해

보였지 싶다.

" 그래요, 제수씨..  집에 갔다가 아침에 다시 옵시다.. "

" 먼저 가세요..  전 여기 있을래요.. "

벌써 몇시간째 수술실과 응급실 앞에서 마음을 졸이고 있는 성희다.     철수도 철수지만 성희가 잘못될까 봐 염려스럽다.

" 그러지 말고 이만 들어가자, 너까지 잘못되면 누가 철수씨를 간호한다니.. "

" 너나 가..  철수씨 혼자 놔 두고는 난, 못 가.. "

 

결국 안타깝게 지켜보던 윤식씨가 내일 아침 오겠다며 먼저 자리를 떳고, 성희를 혼자 두고 갈수 없음에 옆을 지켜줘야

했지만, 그나마 자정이 넘어가자 응급실의 당직인 간호사에게 쫒겨나듯 병원을 나설수 밖에 없었다.

넋이 나간듯,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이는 성희의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 가자..  집에서 자고 내일 다시 오자구.. "

병원 밖에 나와서도, 멍하니 응급실 쪽만을 쳐다보고 있는 성희의 팔을 끌어 아파트로 데려왔다.

" 여기 앉아 있어라, 우선 밥이라도 먹자.. "

집에 와서도, 시들해 있는 성희를 쇼파에 앉혀놓고 부랴부랴 저녁을 차려 식탁위에 올렸다.

" 어여 먹어, 낮에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잖어.. "

" 너나 먹어..  난, 못 먹겠어.. "

" 근데, 이 년이..  빨리 먹어 이 년아, 그러다가 너까지 쓰러져.. "

" 어떡하니, 여진아..  우리 철수씨 잘못되면 난 어쩌니.. "

" 이 년이 재수없게 별소릴 다하네..  철수씨가 왜 잘못 돼.. "

" 이제부터 잘 할려고 했는데.. "

축 쳐진채로 쇼파에 몸을 기대고 있던 성희가 기어코 눈물을 쏟고야 만다.

" 괜찮을거야, 그만 울어.. "

" 정말 괜찮을까? "

" 그럼..  철수씨가 너를 놔두고 갈 사람이니?    내일, 니 목소리만 들어도 벌떡 일어날거야.. "

" 그렇지?   나를 버릴 사람은 아니지? "

감정 기복이 수시로 변하는 친구를 보자니 측은하기까지 하다.     평소에 보이던 모습과는 다르게, 철수에게 많이 의지했던

모양이다.    

그런만큼 교통사고가 난 것이 성희에게는 크나 큰 충격이지 싶다.

" 그렇다니까..   이제 그만 한술 뜨자, 니 꼴이 말이 아냐..   철수씨한테 이쁘게 보여야지.. "

갖은 말로 성희를 달래서는, 된장찌게 국물에 밥을 말아 억지로 몇 숟갈 뜨게끔 했다.

 

꼬박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성희는, 희뿌옇게 여명이 밝자 간단하게 세면을 하고는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는 철수가 자신을 기다릴 것만 같아 집에 있을수가 없었다.

종종대며 응급실까지 왔건만, 여전히 철수는 움직임이 없어 보인다.     아직은 면회를 할수 없다는 말에 응급실 유리창을

통해 막연히 지켜봐야만 했다.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그의 진심을 가볍게 대하며 함부로 굴었던 지난날이 후회가 된다.

한결같은 애정을 보여주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엄마까지 보듬으려는 진심을 깨닫고서야 그의 여자로 거듭나려 했다.

그러던 차에 철수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자신의 그런 속마음을 내 보이지도 못했는데, 행여 잘못될까 싶어 조바심이

나는 중이다.

그의 사랑에 보답하고자, 알뜰한 살림꾼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윤식씨 와이프처럼 또순이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걸맞은 흉내나마 내려고 했다.

한푼두푼 아끼면서 철수가 갈아입을 옷을 챙겨주고 싶었다.     철수보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주고, 가게에서 돌아

오는 그를 맞이해 맛있는 저녁을 차려주고 싶었다.     

천상 여자라는 말도 듣고 싶었고, 귀여움도 받고 싶었다.

~ 자기야, 제발 일어나 줘..   나, 앞으로 잘 할께..   자기가 없으면 난 안돼..   하나님, 우리 철수씨 좀 살려주세요..  

교만하지 않고, 교회에도 열심히 나갈께요.. ~~

복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철수를 내 곁으로 돌아올수 있게끔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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