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연애 31

바라쿠다 2012. 11. 7. 09:00

" 언제 나갔어?    깜짝 놀랬잖어.. "

" 너 깰까 봐 그냥 나왔어.. "

옆에서 자고 있어야 할 성희가 보이지 않아 깜짝 놀란 여진이다.     어제 점심부터 굶다시피 한 성희가 염려스러워

씻는둥 마는둥 병원으로 달려 왔더니, 문도 열리지 않는 응급실 창문에 기대어 하염없이 철수쪽만 지켜보고 있다.

" 어때?    아직도 움직임이 없는가 보다.. "

" 응..  철수씨가 찾지 싶어서 왔는데.. "

" 일단 미음이래도 먹자.. "

" 싫어, 너나 먹어.. "

" 따라와, 어차피 면회시간이 되려면 더 있어야 돼.. "

손목을 잡고서는 반 강제로 병원 구내식당으로 끌고 내려왔다.     미음이라도 먹여 속을 보호해 주고자 했다.

아픈 철수를 걱정하는거야 이해가 되지만, 자기 자신이 건강해야 병간호라도 할수 있지 싶었다.

" 니 몸부터 챙겨 이 년아..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니까 뒷 수발을 들려면 니가 건강해야 돼.. "

" 나도 알지..  알면서도 밥이 안 넘어가.. "

" 에그, 열부났네..  진작에 좀 잘하지 그랬어.. "

" 진짜야..  배도 안 고프고, 자꾸 더부룩 하기만 해.. "

" 더부룩?    너, 혹시.. "

" ...................... "

" 이 년이, 이렇게 무디다니까..   가자, 산부인과에 접수하러.. "

시켜 놓은 미음에는 손도 대지 못한채 성희의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 축하합니다..  8주째 접어 들었네요.. "

" 그것 봐, 이년아..  무디기는.. "

" ....................... "

그네들의 얘기가 허공에서 맴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임신 소식을 전하는 의사의 얼굴조차 낯설다.

" 임신 초기니까 완전히 자리 잡을때까지 주의하시고, 일주일 후에 한번 더 들리세요.. "

" 네, 감사합니다..   가자.. "

여진이의 손에 이끌려 진료실을 나온 성희는 만감이 교차할수 밖에 없다.

굳이 임신을 피한건 아니지만, 철수가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인 지금 어찌 처신을 해야 하는지 판단조차 어렵다.

" 어쩌니, 여진아.. "

" 일단 응급실로 가보자.. "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는 사이, 이미 응급실은 면회를 할수있는 시간이 됐다.     우리보다 윤식씨가 먼저 와 있었다.

" 일찍 오셨네.. "

" 아, 네..  늦었네요.. "

" 어디 좀 들렸다 오느라고.. "

" 아까 회진 온 의사가 곧 깨어날거라고 했는데, 아직 이러고 있네.. "

윤식씨와 얘기하는 중에 침대 옆으로 다가간 성희가 철수의 뺨을 쓰다듬고 있다.

두 눈 가득 애절한 슬픔을 담고는, 하염없이 철수의 아픔에 끌려 들어가듯 그렇게 망부석이 돼 버렸다.

너무나도 절절한 성희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     윤식씨 역시 그런 성희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그저

바라다 볼 뿐이다.

" 철수씨..  빨리 일어나.. "

기어코 굵은 눈물을 흘리며 철수의 손을 부여잡은 채, 성희가 조르고 있다.

" 나, 어떡해..  철수씨.. "

보기가 애처러운지 윤식씨마저 고개를 돌린다.    대답없는 철수의 옆에 선 성희의 어깨가 심하게 떨리는 중이다.

 

" 아직도 안 깨어난거야? "

" 응..  의사가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네.. "

오후까지 응급실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온 윤식이다.    철수 옆에 있으면서 지켜주고 싶었지만, 성희를 지켜 본다는게 더

큰 고역이었다.

" 성희씨가 힘들겠네.. "

" 글쎄 말이야, 애처로워서 못 보겠더라구.. "

" 그렇겠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 "

정미가 직접 보기라고 한 듯 애처러워 하는 중이다.     두 여자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건만, 언니,동생하면서 금새

친해 졌다.

" 다시 봤어, 그 정도까지는 아닌줄 알았는데.. "

철수 옆을 지키면서 애닮아 하는 성희의 모습은 차마 지켜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마치 세상에 종말이라도 온 것처럼,

일말의 움직임이나 표정의 변화조차 없이 철수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는 그 마음이 들여다 보였다.                     

" 누구, 성희씨? "

" 응..  그냥 철 없는 아가씬 줄 알았는데, 상심이 큰가 봐.. "

" 오빠가 잘못 본거지..  난, 처음부터 괜찮은 여잔지 알았는데.. "

" 그랬어?    난, 걱정이 많았어..  철수가 여자를 잘못 고른것 같아서 내내 불안했거든..   뭣 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었잖어..  

철수가 어찌 되던간에 돈이나 펑펑 써 대질 않나..  집안 살림도 몽땅 철수가 도맡아서 했고.. "

따지고 보면 성희한테 빠져 직장에 사표까지 낸 철수였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는 성희를 유심히 지켜보기도 했다.

철수가 자신의 행로를 바꾸면서까지 고른 성희가,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여자인지 잣대를 들이댔던 것이다.

" 그러니까 오빠는 여자를 볼줄 모르는거야..   오빠 눈에는 성희가 제 멋대로 사는 철부지처럼 보였겠지만, 철수씨를

바라보는 눈을 보니까 척 알겠더라.. "

" 그런게 보였다구?    나는 왜 못 봤을까.. "

" 바보같은 오빠 눈에 그게 보이겠어?     내가 무식해도 사람 볼줄은 아네요.. "

정미 말마따나 집안 형편땜에 학교 공부를 못해 그렇지,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편이다.    내 표정만 보고도 무슨

고민인지 꿰뚫어 보고는 그 해결책까지 제시하곤 한다.

" 그건 또 뭔 소리래.. "

"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랬어..   철수씨를 처음 봤을때 고집이 있어 보이더라.. "

" 고집이야 있는 편이지만, 그 고집하고 성희하고 무슨 상관인데? "

" 나쁘게 얘기하니까 고집이지, 고집이 있으면 소신도 있다는 뜻이야..   그런 철수씨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한테 얼마나

잘했겠어..   성희도 그런 정성에 감복했을테고, 여자는 일편단심 자기를 좋아해 주는 남자한테는 못 이기는 법이야.. "

" 그랬나? "

" 그러니까 오빠도 나한테 잘 해..  괜히 우거지 상이나 짓지 말고.. "

" 내가 뭘 어쨌다고 나한테 화살이 돌아오냐? "

" 남자가 오죽이나 쫀쫀하면 입에 풀칠도 못할까 봐 겁부터 먹냐..   어깨 펴고 다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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