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연애 32

바라쿠다 2012. 11. 12. 12:55

" 빨리..  여진아, 빨리 의사 좀 불러와.. "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잠시 조는중에, 성희의 다급한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 철수씨가 깨어났어, 빨리.. "

" 그래, 알았어.. "

나중에서야 침대 옆에 호출단추가 있다는걸 들었지만 그럴 경황마저 없었다.

부리나케 간호원에게 의사를 불러 달라는 얘기를 전하고는 병실로 돌아왔다.

" 얼마나 잔거야.. "

어눌하지만 또렷하게 철수가 말문이 트였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더 감격했지 싶다.

성희는 철수의 뺨을 쓰다 듬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뿐이다.

" 조금 물러나세요.. "

간호원과 함께 들어선 의사가 철수의 눈에 불빛을 비추며 살핀다.

" 제대로 보이시나요? "

" 네..  아퍼.. "

온통 붕대로 감싼 철수의 입이 씰룩이며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

한참을 청진기를 들이대고 붕대가 감겨진 곳을 눌러가며 통증이 있는지를 확인한 의사가 몸을 세운다.

" 진통제를 투여하고 좀 더 지켜봅시다..   아니,그러지 말고 보호자가 옆에 있는게 좋겠네, 일반 병실로 옮겨요.. "

" 네, 선생님.. "

" 나, 보여? "

의사와 간호사가 물러서서 응급실을 나가자 성희가 철수에게 다가갔다.

" 응..  여진씨도 왔네.. "

" 고마워, 철수씨.. "

철수가 깨어남에 안심이 되는지 성희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중이다.

조금후에 간호사와 조무사들이 들어와서는, 철수를 일반 병실로 옮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 넌, 이제 가.. "

2 인실의 병실에 철수를 옮기고 간호사들이 돌아가자 성희가 비로소 나를 돌아본다.

" 됐어, 오늘은 같이 있을께..  너야말로 옆에서 잠 좀 자둬, 삼일간이나 눈도 못 붙이고선.. "

성희가 어찌 버티는지 신기할 뿐이다.     나라도 옆에 있어 줘야지 싶었다.

 

" 깨어났다면서요? "

" 어서오세요.. "

아침 10시가 못 돼 윤식씨와 정미언니가 병실로 들어섰다.

" 좀 어떠냐.. "

" 어서와요.. "

침대 곁으로 다가간 윤식씨가 철수와 대면을 했다.     사고가 난 뒤 처음으로 마주한 것이다.

"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그 미친놈이 음주 운전을 했다는구나.. "

" 네.. "

" 많이 놀랬지? "

정미 언니가 다가 와 내 손을 부여 잡는다.

" 언니.. "

" 그래, 다 알어..  성희가 제일 속상하겠지..  너무 마음쓰지 마, 금방 일어날거야.. "

" 네, 언니.. "

그전까지는 그저 철수의 직장 상사였던 사람이 옆에 살고 있노라며 단순하게 여겼다.     철수가 사고를 당한 지금 그네들이

가까이 있음도 큰 위로가 된다.

" 오늘 무슨 요일이야? "

" 토요일..  왜? "

철수가 기운없는 목소리로 윤식씨를 올려다 본다.

" 거기 가야 하는데.. "

" 어디를? "

윤식씨가 의아한 눈으로 철수의 말을 기다리는 중이다.

" 부탁이 있어요.. "

" ....................... "

" 성희씨랑 파주 좀 다녀와요.. "

" 철수씨 ~ 지금 제 정신이야?     자기 몸이나 추스려..  거긴 나중에 가도 되잖어.. "

기가 막혔다.    제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 마당에 엄마까지 신경쓰려는 철수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아냐, 기다리실거야..   선배랑 같이 다녀와.. "

말하기도 고통스러운지 이마가 찌푸려진다.     저렇듯 힘들어 하면서도 엄마를 챙기려는 철수의 맘이 아로 새겨진다.

" 여진아..  니가 수고좀 해 줘.. "

" 그래, 다녀와..  내가 지키고 있을께.. "

결국 철수의 고집을 꺽지 못하고 그의 말에 따를수 밖에 없었다.

 

" 괜찮아요? "

" 응.. "

성희와 윤식씨가 파주를 가기 위해 병실을 나서고 잠시 지켜보던 정미 언니도 돌아가고 난 뒤, 간호원이 들어와서 붕대를

갈아주고는 링겔에 새 진통제를 찔러주고 나갔다.

" 아주 열부 났어..  몸도 아픈 사람이 성희 엄마까지 챙기고.. "

" 그 양반이 기다리고 있거든.. "

" 철수씨가 그걸 어찌 아누? "

" 눈빛이 그랬어..  말씀은 못해도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따뜻했거든.. "

처음부터 느낀게지만 성희를 바라보는 철수의 눈길이 그러했다.     그렇듯 성희에게 일편단심 따뜻한 마음을 담고 있었다.

" 그런 못된 년이 뭐가 이쁘다고..   철수씨, 시력도 별로지?  호호.. "

" 못된 년이라도 이쁘더라.후후..  아야 ~ "

기분이라도 풀어주고 싶어 농담을 했더니, 장단을 맞춘다고 따라 웃다가 통증 때문에 힘들어 한다.

" 쌤통이다, 나같이 이쁜 여자를 몰라보고.호호.. "

" 성희씨 얼굴이 안돼 보이던데.. "

그 와중에도 성희를 눈여겨 본 모양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성희를 향한 그의 지극한 맘이 다시금 와 닿는다.

" 성희 임신했어.. "

" ....................... "

" 그 동안 성희가 많이 속상해 했어..  철수씨가 잘못될까봐 한숨도 못자고 식사도 못하고.. "

" 진짜야?    임신.. "

" 그럼..  아무렴 그런걸로 농담할까.. "

성희가 직접 얘기하는게 옳겠지만, 아픈 철수에게 좋은 소식이 도움을 주리라 생각됐다.

" 얼마나? "

" 어제 알았어..   철수씨한테 알려줘야 한다면서 많이 울었어.. "

" 애기를 가졌단 말이지.. 아야, 아이고 ~ "

" 그만 좀 좋아해라, 에그 ~   그러다 꿰맨자리 다 터져.. "

" 여진씨..  고마워.. "

" 피 ~ 내가 애기를 가졌나?    왜 나한테 고맙대니.. "

" 고마워, 여진씨.. "

성희가 애기를 가졌음에 감동이 밀려오는 표정이다.     그의 살가운 속이 들여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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