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긴가 보네.. "
윤식씨의 중얼거림에 잠에서 깨어났다.
" 죄송한데, 저 좀 잘께요.. "
운전대를 잡은 윤식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곳까지 오는 내내 잠에 취했었다. 무려 삼일간이나 꼬박 새우다시피 한데다,
철수가 안정을 찾았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어져 잠이 쏟아졌던 것이다.
" 네, 저 안쪽에다 주차하면 돼요.. "
점심 시간인지 삼삼오오 마당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인다.
" 철수는.. "
" 네, 오늘은 저 혼자 왔어요.. "
농장주인 선배 부부가 먼저 아는체를 했고, 엄마 역시 이쪽으로 다가오는 중이다.
" 엄마, 나 왔어.. "
" 응.. "
눈에 익었던 철수가 보이질 않자 엄마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 엄마.. 나 애기 가졌어, 축하해 줘.. "
누구보다도 엄마에게 축하를 받고 싶었다. 남은 가족이라고는 엄마와 둘 뿐인지라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 애기.. 그사람, 안 보여.. "
" 그사람 다쳤어요.. 지금 병원에 있어.. "
무던히도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는지 철수만을 궁금해 하는 엄마다.
" 가자, 빨리.. "
엄마가 내 손을 잡아 끈다. 뼈만 남아 앙상했던 엄마의 손에 그동안 살이 많이 붙었다.
" 어디를 가자고? "
" 그사람, 보고 싶어.. 나, 데려가.. "
" 철수씨한테 가잔 말이야? "
" 응.. 빨리 가.. "
대략 난감했지만 엄마의 청을 뿌리칠수가 없었다. 농장주 부부에게 철수의 사고 소식을 전하고 엄마를 차에 태워야 했다.
" 아니, 여기까지 웬일이래요? "
약에 취했는지 설핏 잠이 들었는데, 여진이의 목소리가 들려 눈을 떠야 했다.
성희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병실로 들어와 있었고, 윤식이 선배가 뒤를 이었다.
" 여기를 어떻게.. "
" 엄마가 자기를 보고싶다고 했어.. "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마음뿐이다.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 여기까지 오신 노인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 여진씨, 침대 좀 올려줘요, 빨리.. "
" 아직 무리일텐데.. "
" 많이.. 아프지.. "
비록 띄엄띄엄이지만 말씀이 많이 또렷해지고 말수도 늘었다.
" 죄송합니다.. 인사를 드려야 할텐데.. "
" 됐어.. "
" 엄마가 많이 좋아지셨대, 반장 아줌마가 칭찬까지 했어.. "
" 식사는 잘 하시죠.. "
" 응, 먹어.. "
" 좋아하시는 고기를 사 갔어야 하는데.. 다음에 많이 사 갈께요.. "
" 아프지 마.. "
침대 곁으로 다가와 내 손을 부여 잡고는 근심스런 얼굴로 내려다 보신다.
그 어머니의 눈에 설핏 눈물이 맺혀있는게 보인다. 마음을 담아 걱정을 해 주시는걸 느꼈다.
" 네, 고맙습니다.. "
" 우리 애.. 이뻐.. "
" 네, 많이 이쁘죠.. "
" 아프면.. 안 이뻐.. "
비록 말씀은 어눌했지만 하고 싶은 얘기가 무언지를 알수 있었다. 성희를 이뻐해 주기 위해서라도 아프지 말라는
당부로 들린다.
" 성희씨는 어머니 모시고 집으로 가.. 정육점에서 고기도 사고.. "
" 알았어, 내일 일찍 올께.. "
성희의 손에 이끌려 병실을 나가시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시는 어머니를 보니 죄송스런 마음뿐이다.
" 노인네가 대단하시네.. 철수씨를 보고 싶다고 여기까지 찾아오시고.. "
" 자네를 보고 싶다고 거기서도 성화가 대단했어, 빨리 데려다 달라고.. "
" 고마워요, 선배.. "
" 고맙긴, 이 사람이.. 빨리 일어나기나 해.. 저 노인네가 얼마나 걱정이 됐으면 차 타고 오면서도 계속 안절부절이더라.. "
" 네, 그래야죠.. "
" 철수씨가 인복은 많은가 봐, 살뜰히 걱정해 주는 사람도 많고.호호.. "
" 그래.. 여진씨도 고마워.. "
얼른 털고 일어나야 하는데 걱정이다. 부러진 뼈가 붙는데만 한달이 걸린다니 마음만 조급해 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성희 혼자서 고생할 걸 생각하니, 누워만 있어야 하는게 마음이 편할리가 없다.
" 언제까지 봐 줄거야? "
" 글쎄.. 철수가 퇴원할때까지는 봐 줘야지.. "
" 다음주부터 수리가 들어갈텐데.. "
자그마한 식당을 하기로 계약까지 했는데 철수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 당신 혼자 해야지, 매정하게 뿌리치고 나올수도 없고.. "
" 그건 그렇지만.. 홀에서 써빙할 사람도 없는데.. "
식당을 계약해 놓고는 상당한 의욕을 보였던 정미다. 멀리 시내까지 나가서 이쁜 그릇들을 사오고, 식당에서 팔 메뉴들을
정해 놓고 미리 맛을 보여주기도 했다.
" 당분간 여진씨를 쓰면 어떨까? "
" 여진이.. 성희 친구? "
" 응, 며칠간인데 어떨라구.. 가게 수리하는건 내가 짬짬이 들여다 볼께.. "
가게 수리가 끝나고 보름 정도만 도와줘도 얼추 시간을 짜 맞출수 있을것이다.
" 아직 어린데 그런 험한 일을 하겠어? "
" 철수한테 부탁하면 될거야.. "
" 도와주면야 좋지, 얼굴도 이쁘니까 손님들도 좋아할게고.. "
" 이쁘긴 당신이 훨 낫지.. "
" 에고, 쓸데 없이 재롱은.. 밤일이나 신경써, 자기 혼자 기분이나 내고.. "
" 내가 그랬나? 후후.. "
" 또 그랬다간 국물도 없어.. 아예 옆에 오지도 못하게 할거니까.. "
" 보약이라도 먹든가 해야지, 안되겠네.. "
요즘 들어 점점 기력이 딸리지 싶다. 친구들 말마따나 마누라가 샤워하는 소리만 들어도 겁이 난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이 돼 버렸다.
약사 친구놈한테 부탁해서 비아그라라도 사둬야 할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