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리.. 여진아, 빨리 의사 좀 불러와.. "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잠시 조는중에, 성희의 다급한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 철수씨가 깨어났어, 빨리.. "
" 그래, 알았어.. "
나중에서야 침대 옆에 호출단추가 있다는걸 들었지만 그럴 경황마저 없었다.
부리나케 간호원에게 의사를 불러 달라는 얘기를 전하고는 병실로 돌아왔다.
" 얼마나 잔거야.. "
어눌하지만 또렷하게 철수가 말문이 트였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더 감격했지 싶다.
성희는 철수의 뺨을 쓰다 듬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뿐이다.
" 조금 물러나세요.. "
간호원과 함께 들어선 의사가 철수의 눈에 불빛을 비추며 살핀다.
" 제대로 보이시나요? "
" 네.. 아퍼.. "
온통 붕대로 감싼 철수의 입이 씰룩이며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
한참을 청진기를 들이대고 붕대가 감겨진 곳을 눌러가며 통증이 있는지를 확인한 의사가 몸을 세운다.
" 진통제를 투여하고 좀 더 지켜봅시다.. 아니,그러지 말고 보호자가 옆에 있는게 좋겠네, 일반 병실로 옮겨요.. "
" 네, 선생님.. "
" 나, 보여? "
의사와 간호사가 물러서서 응급실을 나가자 성희가 철수에게 다가갔다.
" 응.. 여진씨도 왔네.. "
" 고마워, 철수씨.. "
철수가 깨어남에 안심이 되는지 성희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중이다.
조금후에 간호사와 조무사들이 들어와서는, 철수를 일반 병실로 옮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 넌, 이제 가.. "
2 인실의 병실에 철수를 옮기고 간호사들이 돌아가자 성희가 비로소 나를 돌아본다.
" 됐어, 오늘은 같이 있을께.. 너야말로 옆에서 잠 좀 자둬, 삼일간이나 눈도 못 붙이고선.. "
성희가 어찌 버티는지 신기할 뿐이다. 나라도 옆에 있어 줘야지 싶었다.
" 깨어났다면서요? "
" 어서오세요.. "
아침 10시가 못 돼 윤식씨와 정미언니가 병실로 들어섰다.
" 좀 어떠냐.. "
" 어서와요.. "
침대 곁으로 다가간 윤식씨가 철수와 대면을 했다. 사고가 난 뒤 처음으로 마주한 것이다.
"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그 미친놈이 음주 운전을 했다는구나.. "
" 네.. "
" 많이 놀랬지? "
정미 언니가 다가 와 내 손을 부여 잡는다.
" 언니.. "
" 그래, 다 알어.. 성희가 제일 속상하겠지.. 너무 마음쓰지 마, 금방 일어날거야.. "
" 네, 언니.. "
그전까지는 그저 철수의 직장 상사였던 사람이 옆에 살고 있노라며 단순하게 여겼다. 철수가 사고를 당한 지금 그네들이
가까이 있음도 큰 위로가 된다.
" 오늘 무슨 요일이야? "
" 토요일.. 왜? "
철수가 기운없는 목소리로 윤식씨를 올려다 본다.
" 거기 가야 하는데.. "
" 어디를? "
윤식씨가 의아한 눈으로 철수의 말을 기다리는 중이다.
" 부탁이 있어요.. "
" ....................... "
" 성희씨랑 파주 좀 다녀와요.. "
" 철수씨 ~ 지금 제 정신이야? 자기 몸이나 추스려.. 거긴 나중에 가도 되잖어.. "
기가 막혔다. 제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 마당에 엄마까지 신경쓰려는 철수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아냐, 기다리실거야.. 선배랑 같이 다녀와.. "
말하기도 고통스러운지 이마가 찌푸려진다. 저렇듯 힘들어 하면서도 엄마를 챙기려는 철수의 맘이 아로 새겨진다.
" 여진아.. 니가 수고좀 해 줘.. "
" 그래, 다녀와.. 내가 지키고 있을께.. "
결국 철수의 고집을 꺽지 못하고 그의 말에 따를수 밖에 없었다.
" 괜찮아요? "
" 응.. "
성희와 윤식씨가 파주를 가기 위해 병실을 나서고 잠시 지켜보던 정미 언니도 돌아가고 난 뒤, 간호원이 들어와서 붕대를
갈아주고는 링겔에 새 진통제를 찔러주고 나갔다.
" 아주 열부 났어.. 몸도 아픈 사람이 성희 엄마까지 챙기고.. "
" 그 양반이 기다리고 있거든.. "
" 철수씨가 그걸 어찌 아누? "
" 눈빛이 그랬어.. 말씀은 못해도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따뜻했거든.. "
처음부터 느낀게지만 성희를 바라보는 철수의 눈길이 그러했다. 그렇듯 성희에게 일편단심 따뜻한 마음을 담고 있었다.
" 그런 못된 년이 뭐가 이쁘다고.. 철수씨, 시력도 별로지? 호호.. "
" 못된 년이라도 이쁘더라.후후.. 아야 ~ "
기분이라도 풀어주고 싶어 농담을 했더니, 장단을 맞춘다고 따라 웃다가 통증 때문에 힘들어 한다.
" 쌤통이다, 나같이 이쁜 여자를 몰라보고.호호.. "
" 성희씨 얼굴이 안돼 보이던데.. "
그 와중에도 성희를 눈여겨 본 모양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성희를 향한 그의 지극한 맘이 다시금 와 닿는다.
" 성희 임신했어.. "
" ....................... "
" 그 동안 성희가 많이 속상해 했어.. 철수씨가 잘못될까봐 한숨도 못자고 식사도 못하고.. "
" 진짜야? 임신.. "
" 그럼.. 아무렴 그런걸로 농담할까.. "
성희가 직접 얘기하는게 옳겠지만, 아픈 철수에게 좋은 소식이 도움을 주리라 생각됐다.
" 얼마나? "
" 어제 알았어.. 철수씨한테 알려줘야 한다면서 많이 울었어.. "
" 애기를 가졌단 말이지.. 아야, 아이고 ~ "
" 그만 좀 좋아해라, 에그 ~ 그러다 꿰맨자리 다 터져.. "
" 여진씨.. 고마워.. "
" 피 ~ 내가 애기를 가졌나? 왜 나한테 고맙대니.. "
" 고마워, 여진씨.. "
성희가 애기를 가졌음에 감동이 밀려오는 표정이다. 그의 살가운 속이 들여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