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

반쪽을 찾아 13

바라쿠다 2011. 10. 6. 21:39

춘천에 도착한 것이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초저녁이리라.

집에 들어서니 저녁을 준비중이었는지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영애할머니가 부엌에서 나오시며 내손을 꼭 쥔다.

안방으로 들어가 두분께 큰 절을 올렸다.       한사코 절하지 말라고 버티던 두분이 성미가 눈짓을 하자, 마지못해 절을

받으시고도 그럴 자격이 없노라고 말씀하시며 미안해 하시는 노인들의 모습에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영애는 지엄마를 만난것이 좋은듯 무릎 위에 등을 대고 앉았다.   이제 아홉살이니 엄마와 떨어지고서 얼마나 그리워

했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영애 할머니가 상을들고 방으로 들어서길래 얼른 일어나 상을 받아 방에 내려놓았다.

" 뭐라고 해야할지, 너무너무 고마워서.. "    

상앞에 둘러앉아 막 수저를 뜨는데 영애할머니가 눈시울을 붉힌다.

" 별 말씀을.. 그리고 말씀 낮추세요. 제가 송구합니다. "      

어른이 눈가에 가득 눈물을 머금고 있으니 난처함에 운신하기가 어렵다.

" 어허~ 손님이 식사중인데, 경망스럽게..   젊은이 상관말고 어여 뜨시게.. "       

영애 할아버지가 나서서는 할머니를 단속하며 식사 하기를 재촉하신다.   

두 양반은 밥상 옆에서 간간이 챙겨주실뿐  셋이서 식사하는 것만 지켜보시는 중이다.

어색한 저녁상을 물리자, 할아버지가 술상이라도 보라고 하신다.    성미는 영애와 짐을 챙긴다고 작은방으로 건너갔다.

" 어찌불러야 할지 모르겠소만  아뭏튼지 고맙구려,  영애 에미는 젊은이한테 부담주는 얘기를 하지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더구먼..  우리 노인네들이야 무슨낙이 있겠소만 그저 자식들이나 고생않고 살아만 준다면 그게 행복아니겠나.. "

" 아니 웬걸 이렇게까지..  고기에다 비싼술까지.. "    

술상을 들여 오면서 할머니가 고마워 하시는 인사말이다.

" 에미한테 대충 들었네.   젊은이가 우리 영애를 살릴려고 방방곡곡을 뒤지고 다니고, 지 남동생의 곤란한 일까지 해결

해 줬다믄서.. 고맙네 젊은이.. "      

할아버지가 따라주는 술이라 두손으로 받기야 했지만, 어색한 마음에 입에 대기도 어렵다.

" 아닙니다. 어르신..  그저 운이 좋아서 그리 된것이죠. "   

성미가 내옆에 다소곳이 앉아 할아버지와 내게 술을 따른다.

" 젊은이도 알겠지만 착하고 순진하기만 한 것이 남자 하나를 잘못보는 바람에, 가뜩이나 어렵던 세간살이가 이렇게

엉망이 됐지..   본인도 사는 꼬락서니가 진창이 됐고, 더군다나 아픈 혹까지 달렸으니 전들 오죽 했겠는가.  우리들도

저것이 맘 아플까봐,  오히려 눈치를 보기만 했으이..   도움도 못주고..   그러던 차에 이런 은인을 만났으니.. "

잔잔하게 풀어내는 할아버지의 고해사에 동수까지 젖어들어 숙연한 마음이다.

" 어르신..  자신있게 약속은 못하지만 지금보다는 좋아 지겠지요.   영애 엄마가 부모님 걱정을 달고 삽니다.   어른들께

 죄를 많이 졌다고..   이제라도 심려 놓으셨으면 합니다. "       

성미가 술상 밑으로 한손을 꼭 쥐어온다.      무언의 고마움을 표하기라도 하듯, 쥔 손에서는 따뜻한 온기마저 전해진다.

" 노인네가 세상 이치를 어찌 알랴마는 젊은이는 심성이 바른사람 같으이.    어떤 쳐 죽일놈은 에미를 호강시켜

주겠노라고 허풍을 떨더니만 2년도 못돼 집안을 풍비박산 내더구먼.. "

세상을 달관한 듯한 노인의 입에서도 한이 서린 독설이 쏟아지고,  성미는 고개를 숙여 죄를 비는 모습이다.   

다시한번 분노가 끓어 오르는 동수다.    이럴때는 이뻐보이던 그녀도 한없이 밉게만 보인다.

" 딸아이 말 마따나 젊은이한테 부담을 주지는 않으려네..  이미 우리집은 젊은이한테 과분한 은혜를 입었음이야..  

에미가 또 다시 잘못된다 한들 오늘의 고마움은 죽을때까지 간직함세."

" 어르신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저 역시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괘념치 마십시요. "     

" 에미야~ 앞으로 저 젊은이에게 니 목숨을 바쳐서라도 은혜를 갚아야 하느니, 구렁텅이에서 건져준 은혜를 모르면

한낱 동물보다 못한것이다.    너 역시 죽을때까지 잊지 말거라. "

잡고있는 내 손위로 그녀의 눈물이 떨어진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소리없는 통곡을 하는중이다.

 

술상을 물리고는 바람을 쐬기위해 밖으로 나왔다.    계절도 계절이지만 춘천이라 그런지 밤바람이 차가웁다.    

밤하늘 역시 서울과는 사뭇 틀리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 중에 하늘을 덮은 은하수가 깨알같이 온 천지로 내려온다.

성미가 다가와 내 팔에 팔장을 끼고 머리를 기대온다.   부모님께서 잠자리를 봐준다고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오라 했단다.

영애가 뒤따라 나오더니 제 엄마 손을 꼭 쥐고는 놓질 않는다.     엄마를 닮아서인지 윤곽이 뚜렷하고 귀여운 아이다.

토요일이라 강원대 앞에는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친다.    번화한 사거리에서 한적한 골목쪽으로 올라가 민물매운탕 집에

자리를 잡았다.   

소주를 시켜놓고 보니 영애가 먹을것이 마땅찮다.    영애와 친해지기 위해 민물탕 집에 양해를 구하고 애들이 좋아하는

피자를 한판 시켰다.     다행히 맛있게 먹어주는 공주님이다.

" 아빠가 어릴때 한학을 공부했어. 우리 남매가 클땐 엄한 부모밑에서 자라는게 속상하기도 했지.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아빠가 살아가시는 방법도 옳치싶어.  내가 헛된 욕심만 안 부렸어도, 내 분수를 알았더라면.. "

" 내가 그랬지, 슬픈 과거는 빨리 잊으라고..  당신 혹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거 아냐?  잊어버리라는데, 또 얘길 꺼내게. "

" 알았어, 그만할께..   동수씨 말대로 그러고 싶어, 그리고 아빠 말씀대로 자기한테 최선을 다할거야. "

" 이제야 철이드네, 누나라고 벅벅 우기더니..   앞으로 또 그러면 아버님한테 일러바쳐야지.후후.. "

" 오냐 오냐 해 줬더니 또 누나한테 대드네..  그나저나 자기편이 하나 생겨서 좋긴 하겠다.호호.. "

영애가 졸고 있길래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미가 부축 한다는걸 내가 대신 업고서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앞에서 기다리던 할머니가 쫒아와 영애를 안으려 하는걸, 뿌리치고는 마루에 내려놨다.      할머니가 흐뭇해 하신다.

영애를 안방에다 누이고는 작은방으로 건너 온 성미가 츄리닝 바지를 건네준다.     팔베게를 해 주고는 잠을 청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떳다.    창문밖으로 여명이 밝아온다.    성미는 아직도 곤히 자는중이다.

부엌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이른 새벽에 할머니가 일어나 부엌일을 하는 중이리라.

깨지않게 조심스레 방을 나와서는 마당에 내려섰다.   수도물을 틀어 찬물로 머리를 감았다.   머리속이 개운하다.

할머니가 건너방으로 들어가는 기척이 난다.     아마도 성미를 깨우는듯 싶다.      쪼그린채로 씻고 일어나니 어느새

성미가 옆에 와 수건을 건네주며 하품을 해 댄다.      평소 부지런한 성미도 잠을 설쳤지 싶다.

할머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영애의 옷가지를 차에 싣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두분에게 큰절을 올렸다.     

할아버지가 영애의 손을 잡더니 아저씨한테 큰절을 올리라고 시킨다.

차에 오르기 전 할머니가 다가오더니, 내 손을 꼭 쥐고는 애절한 눈빛이 된다.    또 다시 화가 치민다.

 

서울에 도착하니 금희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가 영애를 조카 보듯이 반겨준다.  

대충 짐을 풀고 금희까지 넷이서 보라매 공원에 있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자꾸 돈을 쓴다며 미안해 하는 성미에게,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옷을 사주고 싶다고 우겨 영애한테 점수도 땃다.      

8층쯤에 있는 식당가에 들러 영애가 좋아하는 돈까스를 먹었다.

식당에서 잠시 성미를 불러내 20만원을 주며,  집에 가다가 가구점에 들릴테니 금희한테 화장대를 사주라고 했다.

내가 사주면 안 받을수도 있으니 언니 입장에서 집들이 선물을 하라고 얘기를 해 줬다. 

집에 돌아와서도 금희를 이모처럼 따르며, 지 엄마하고 같이 지낼수 있음이 좋은지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성미 역시 자신의 딸과 있어서일까, 두 모녀의 웃음소리마저 온 집안을 환히 밝힌다.

저녁무렵에 고차장이 왔기에 근처에 있는 돼지갈비 집으로 몰려갔다.    네사람 모두 편하게 술잔을 부딪쳐 갔다.

성미는 영애를 챙겨주느라 기분이 좋고,  금희는 고차장 옆에 앉아서 상추쌈을 싸 주며 연신 건배를 하고있다.

" 오빠~ 글쎄, 언니가 집들이 선물로 화장대를 사 주네.   짠순이가 영애를 보더니 개과천선을 했나봐.호호.. "

" 아이구, 고마워서 어쩌누..  영애땜에 들어갈 돈도 만만치 않을텐데..  고마워요, 제수씨.. "  

이제는 성미를 대하는 고차장의 호칭마저 자연스러워진 듯 하다.

" 난 그래요.  그전부터 금희씨나 영애엄마가 서로 의지 했듯이,  앞으로도 친자매처럼 잘 지냈으면 해요.   모르긴

해도 선배도 그러길 원하실거고,  나 역시도 그래요.   그런 의미에서 건배한번 할까요. "

" 맞는말이다.  나중에 서로 떨어져 살더라도 오늘처럼 자주 만나고, 자주 안부도 묻고 그랬으면 좋겠다.

" 너도 들었지,  앞으로도 언니한테 잘해라. 호호..  그래야 언니가 이뻐해주지.. "

" 언니가 뭘 잘 모르는 모양인데,  앞으로는 언니가 나한테 형님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몰라. "

" 그건 금희씨 말이 맞아, 두사람이 결혼하면 내가 형수님이라고 부르는게 맞지.. "   

본전도 못찾은 성미의 얼굴이 곤혹스럽다.    여지껏 동생으로 대했는데 갑자기 촌수가 바뀌는 듯 싶자 억울한 표정이다.

" 언니는 참 이상해,  나한테 형님이라고 부르는게 힘드나봐,   형님소리 들으면 나도 징그러워.호호.. "

 

한참을 서로간의 위계질서를 따지며 웃고 떠들다가 고차장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성미의 입은 댓발이나

나와있고,  금희는 콧노래를 부르며 언니의 약을 올리는중이다.    참으로 어울리는 한쌍이지 싶다.

영애가 피곤해 보여 작은방에 이불을 깔아주고 잠자리를 돌봐준 성미가,  거실로 나와 우리들을 보고는 한마디 꺼낸다.

" 자기야~  진짜로 저 지지배한테 형님이라고 해야 되는거야? "    

아직도 억울하다는 듯 울상이다.

" 형님이라고 부르기 싫으면 나랑 헤어지면 되지.. "      

철없는 성미가 귀여우면서도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 그래, 언니야.  형부랑 찢어지면 영원히 언니로 남는거야.호호..  잘 생각해봐. "

내일을 위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하고,  교대로 씻고서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로 오른 성미가  자리에

눕질않고  머리맡에 앉아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 아까  한말 진짜야?  금희한테 형님이라고 해야 되는거야? "     

성미가 이 정도로 순진하리라고는 전혀 몰랐다.

" 이것봐요, 나이만 많은 누나야~  내일 영애 병원에 입원시킬때 당신도 뇌파검사 한번 받지 그래..  진짜로 너무한다.

나랑 같이 사는거와 금희한테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 중에 어떤게 중요하냐?  그냥 형님으로 대우하는게 쉽지..

그리고 금희가 당신을 놀리느라고 그러는건데..  선배와 내가 친형제 지간도 아니고,  무슨 형님,동생이 있냐구..

그렇게 순진하니까 당하고 살지.   큰일이다,큰일..   철부지하고 영애까지 어린애 둘을 모시고 살게 생겼으니.. "

" 히히~ 그럼 그렇지..  고년이 날 놀리는 줄은 알았지, 깜짝 놀랬네. "      

내가슴을 파고 들어오는 철부지다.

" 빨리 잠이나 자.  내일 영애 데리고 병원 갈려면.. "    

등을 돌리고 잠을 청했다.   뒤에서 껴안아 오며 아양을 떠는 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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