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삶의 무게 24

바라쿠다 2012. 12. 3. 10:15

백천이를 만날 생각에 하루종일 기분이 들떠 있었다.    학원에서도 그의 생각만 했더랬다.

핸폰도 받지 않는 백천이에게 무슨 사고라도 났을까 싶어 조바심까지 났다.

백천이와 만나던 퓨전 포차로 윤수를 이끌었다.    주변 손님들이 윤수와 나의 조합에 관심을 보이는 눈길을 보냈지만,

모른척 무시를 했다.

" 기분이 왜 그래, 나한테 털어놓기 싫어? "

" 그냥 술이나 마셔, 안 그래도 꿀꿀한데.. "

오랜만에 윤수와 같이 술을 마시다 보니, 몸과 마음이 느긋해 진 탓인지 제법 얼큰해 진다.    하지만 윤수와 있으면서도

백천이가 궁금할 뿐인 수진이다. 

" 내가 얘기했지, 수진이의 멘토가 되고 싶다고..   무슨 일인지 알아야 도와주든지 말든지 하지.. "

가뜩이나 연락이 안 되는 백천이로 인해, 심사가 배배 꼬인 판에 윤수까지 끼여드는게 맘이 편할리 없다.

" 됐어,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그리고 너 같은 노땅이 어떻게 내 맘을 아니?    웃기고 있어, 진짜.. "

" ....그래, 미안하다..   그냥, 니가 힘들어 보여서.. "

윤수에게 매몰차게 독설을 내 뱉고는 아차 싶었다.     잔뜩 주눅이 든채 앞에 놓인 소주잔을 들어 마시는 윤수를 보자니 

미안한 맘도 생긴다.    어쨋거나 제 딴에는 위로를 한답시고 한 짓일게다.

" ....사실 좀 그래..   크리스마스가 낼 모랜데, 같이 보내자는 소리도 없고 툭하면 통화도 안되고.. "

나이 어린 날 좋아하면서도, 나름 진심이 있음을 보여준 그다.     그런 그를 막 대할 자격은 없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백천이에 대해 알고 있는 그에게, 내 속내를 토로한들 작금의 속상함이 뒤 바뀔리는 없다.

그렇지만 내가 잘 되기만을 바라는 그의 진심을 알기에, 백천이와의 근황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 우체국에서 근무한다며?    한번 찾아가 봐, 크리스마스 선물이래도 사 들고..   남자만 선물하라는 법은 없는거야..

내가 목도리라도 하나 사 줘? " 

" 아냐, 내가 할께.. "

" 나를 어찌 생각하든지 니 맘이겠지만, 이럴때는 니 아빠 노릇을 하고 싶어서 그래.. "

" 알았어..   짜증내서 미안해.. "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백천이와 사귄다는게 마음이 좋을리가 없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내색조차 감추고,

내가 잘 되기만을 바라는 그에게 너무 모질게 한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 괜찮어..   그 친구한테 질투는 나지만 어쩌겠냐, 니가 잘 돼야지.. "

" ....고마워..  담배나 하나 줘 봐.. "

" 이제 그만 얼굴 좀 펴라, 너 답지 않게.후후.. "

담배에 불을 붙여 한모금 빨더니 내게 건넨다.    가슴 깊이 빨아 장난스레 그에게 내 뿜으니, 갑자기 덮쳐오는 연기에

눈을 찡그리며 손까지 휘젓는다.    그에게라도 심술을 부린 탓인지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진다.

" 술이나 따라..  그건 그렇고 무슨 선물 받고 싶어? "

" 왜, 나도 있어? "

" 당연하지..  너만 안 사주면 삐질거잖어.호호.. "   

생각해 보니 여지껏 그에게는 작은 선물하나 해 준 기억이 없다.      급부적으로 그에게서 받은 선물은 이루 헤아릴수가

없을만큼 많다.    

번듯하게 살수있는 아파트까지 마련해 준 사람이다.     작으나마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하고 싶다.

" 니 자체가 나한텐 선물이야, 신경쓰지 마.. "

" 에구~ 말은 이쁘게도 하지.. "

" 이쁘냐?   그럼, 이뻐해 주라.. "

이런 시점에서는 윤수의 눈이 반짝이며 빛이 난다.     나이값을 못하는 철부지로 변하는 시간이다.

" 어떻게 해 주는게 이뻐해 주는걸까? "

" 다 알면서 뭘 그러냐, 또 놀리는거지.. "

" 그렇잖어, 아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누나라면서 재롱을 떠니까.호호.. "

요즘 들어 누나,동생 역할에 재미가 들린 윤수다.     아무리 짖궃은걸 시켜도 그렇게 좋아할수가 없다.

 

" 이 넓은 집에 혼자 있으려면 심심하겠다.. "

" 할수없지, 뭐.. "

얼추 취기가 오른 뒤에 윤수네 집으로 왔다.     아파트 앞 마트에서 캔 맥주를 사 왔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겠다고 윤수가 안방으로 들어간 사이, 거실의 TV를 켜고 쇼파에 앉아 캔 맥주의 꼭지를 땃다. 

안방에서 나온 그가 안주와 재떨이를 바닥에 내려놓더니, 내게로 다가와 몸에 걸친 옷을 몽땅 벗긴다.

그가 하는 양을 가만히 내려다 봤다.     문득 방이 4개씩이나 되는 아파트에 달랑 혼자 지내고 있는 그가 외로워 보인다.

" 아들이 결혼하면 같이 데리고 살어.. "

TV에서는 애기꽃을 피우며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 장면이 비쳐지고 있었다.

내 무릎께 바닥에 앉아 TV에 눈을 두고 있는 윤수의 목을 두 다리로 감싸고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 안 그래도 며느리 감을 보여준다고 만나재..   그치만 그 놈하고 같이 못 살어, 어찌나 뺀질거리는지.. "

윤수의 아들이 어느정도 버릇이 없는지는 수진이 자신이 더 잘 알고있다.     얼마나 느물거리고 경우가 없는 또라인지

몸소 겪은바가 있기에 윤수의 말이 이해가 된다.

" 계속 혼자 살거야? "

" 할수없지, 뭐..   너처럼 맘에 드는 여자를 찾기도 힘들텐데.. "

" 그거야 니가 눈이 낮아서 그런거지, 나보다 이쁜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저 여자 좀 봐. 얼마나 이뻐.. "

나이야 많지만 윤수처럼 능력도 있는 사람이, 굳이 나에게 집착을 하는게 궁금했던 참이다.

" 니가 모르는게 있어.. "

" 그건 또 무슨 소리래.. "

" 얼굴이 이쁘다고 무조건 다 좋은건 아냐..   여자한테는 풍기는 분위기란게 있어, 너한테 누나같은 푸근함이 있는것처럼..

모든 여자가 그렇진 않거든.. "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진 않지만, 다른 여자한테는 없는 매력이 나에게만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눈에 보이는 그의 뒤통수마저 쓸쓸해 보인다.     오죽 마음을 둘 곳이 없으면 딸 같은 나에게 목을 매는지, 그의 마음이

읽혀 지는듯도 하다.

" 내가 시집이라도 가면 어쩔건데.. "

" 다 정리하고 시골에나 내려 갈거야.. "

" 시골? "

" 응, 한적한 곳에서 텃밭이나 가꾸고, 낚시나 다니게.. "

그런 생각까지 품고 있는줄은 몰랐다.    경치가 좋은 곳이라면 시간 날때마다 한번씩 다녀와도 좋을듯 싶다.

" 윤수야.. "

" 응.. "

" 내가 궁금해서 그러는건데.. "

" 무슨 얘긴데.. "

" 너랑 나랑 이렇게 있는걸 니 아들이 본다면 뭐라고 그럴까 ? "

나보다도 여섯살이나 많은 아들까지 있는 윤수와 다른 인연으로 맺어질리야 없겠지만, 지금의 이 모습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어찌 비쳐질지가 궁금하다. 

" 글쎄, 아마도 난리치겠지..  그 놈이 애비의 순정을 이해하겠어? "

앞 가슴께에 걸쳐진 내 발을 쥐더니 자신의 입으로 가져간다.    발가락을 물어 빨아댐에 간지럼을 참기가 힘들다.

" 그렇게나 잘 아는 사람이 날 욕심을 낸다니.. "

" 그게 내 맘대로 안되니 문제지.후후.. "

그의 웃음소리가 공허하게 들리는 것처럼, 나 역시 마음이 편치는 못하다.    

그의 일방적인 구애로 인해 불륜 비슷하게 맺어진 사이지만, 한결같은 그의 배려로 인해 많은 정이 쌓인듯 하다.   

남들 눈에 떳떳할수 없는 입장인지라, 항상 숨어 지내는 기분으로 그를 만나야 하는게 맘에 들지 않는다.

" 윤수야.. "

" 응.. "

" 나, 오줌마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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