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삶의 무게 22

바라쿠다 2012. 11. 28. 17:37

" 그래, 재미는 있어? "

" 응, 신기한 것도 많더라.. "

윤수가 가르쳐 준대로 바리스타 학원에 다니게 됐다.     학원이 끝난 뒤 윤수가 보자고 해서 그의 부동산에 들린 길이다.

처음 접해 보는거라 다소 생소하긴 했지만, 모르는걸 배워 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더구나 난생 처음으로 전문 직업을 갖게

된다는 설레임도 좋았다.

" 그만 가자.. "

" 괜찮다니까 그러네.. "

" 수진이 생일인데 그냥 넘어갈순 없지.. "

나를 만난 뒤 첫 생일이라면서 굳이 밍크로 된 쟈켓을 사 주겠다는 윤수다.

이미 그에게서 선물받은 옷이며 신발이 만만치 않아 미안한 감도 있었지만, 역시 생일을 축하 해 주겠다는 백천이와도

약속을 잡아 놨기에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다.

이쁜 쟈켓을 봐 뒀다며 부동산 가게문까지 걸어 잠그는 윤수에게 다른 약속이 있다는 소리까지는 차마 할수가 없다. 

" 늦어? "

" 왜, 약속있어? "

" 아니, 그냥.. "

그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는 예전에 갔던 백화점으로 향했다.

" 저거야..   아가씨, 저걸로 줘 봐요.. "

" 네, 손님..  따님이 미인이시다.호호.. "

" 이런건 나이 많은 아줌마가 입어야 어울릴텐데.. "

" 코트나 그렇지, 쟈켓은 젊은 여자가 입어야 이뻐.. "

검은 점이 알알이 박힌 호피무늬의 쟈켓이다.      전신 거울에 비쳐 진 내 모습이 일견 보기에도 이뻐 보인다.

" 어때? "

" 어머, 진짜 이뻐요.호호.. "

" 어울린다, 그걸로 하자.. "

옷이 날개라더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지만 사람이 틀려 보인다.     텍에 붙은 가격이 240만원이다.

" 수진이, 꽃등심 좋아하지..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

주차장으로 내려와 시동을 건 윤수가 고개를 돌려 내 의향을 묻는다.

" 저녁?   배 안 고픈데.. "

" 너 약속있구나, 아까부터 핸폰만 들여다 보더니.. "

" 아니, 배 안 고프니까.. "

" 약속 있으면 가 봐..   니 생일 선물 했으니 됐어..   어디쯤이야, 데려다 줄께.. "

" ....부동산 앞에 내려 줘.. "

딴 남자를 만나러 가는걸 이미 짐작하고, 이해까지 해 주는 윤수에게 더 이상 꾸며 댈 이유가 없다.

다만 비싼 생일 선물까지 안기고는, 그냥 돌아가는 윤수를 보니 마음 한 구석이 개운치는 못하다.

 

" 늦었네.. "

" 미안, 일이 많았어.. "

약속 시간에서 20여분이나 늦어 걱정을 했는데, 그로부터 10여분을 더 기다려서야 우체국 유니폼을 입은 백천이가

포차로 들어선다.

" 좋은 일이네, 돈 많이 벌었겠다..   비싼거 먹어도 돼? "

" 그래, 오늘은 내가 살께.. "

" 당연하지.호호.. "

" 비싼걸로 시켜.. "

" 간단한 걸로 먹자, 밥 먹은지 얼마 안돼.. "

하루종일 운전하면서 힘들게 번 돈을 아껴주고 싶었다.     허기도 채울 겸, 가격이 만만한 떡볶이를 안주로 시켰다.

" 그 쇼핑백은 뭐야? "

" 아, 이거..  밍크쟈켓이야.. "

" 그거 굉장히 비쌀텐데.. "

" 응, 엄마가 사 줬어.. "

백천이한테 거짓말을 해야 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내연의 관계인 윤수의 존재를 알려 줄수는 없음이다.

" 엄마가 잘 사시는 모양이네.. "

" 가끔씩 만나서 잘 몰라, 별로 만나고 싶지도 않고..  술이나 마시자.. "

" 그래도 엄마한테 잘 해야지, 너한테 아파트도 사 준 모양인데.. "

" 술이나 마시자니까.. "

어쩔수 없어 거짓말을 했더니, 마음에도 없는 쓸데없는 상황이 자꾸만 늘어난다.

" 한병 더 할까? "

" 아냐, 됐어..   취하는것 같애.. "

이런저런 얘기로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얼큰해 진다.    백천이와 산뜻한 밤을 보내기 위해서라면 절제를 해야지 싶다.

" 그래?    한병 더 하고 싶었는데..   할수없지, 뭐..  그만 집에 가자 "

" 집에 가게? "

" 응, 내일은 일이 많아서 일찍 나가야 돼.. "

백천이와 같이 지낼 생각에 오전에 싸우나까지 다녀 온 수진이다.     괜시리 서운해 진다.

" 그래, 그럼..  언제 만날까? "

" 한가한 날 봐야지.. "

 

" 왜 이리 늦어..   전화라도 받던가.. "

" 소장하고 술 마셨지, 도망 나올수도 없잖어.. "

다방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오던 영철이가, 요즘 들어 계속 술 냄새를 풍기며 12시가 다 된 시간에야 들어온다.

" 술 값은 누가 냈는데.. "

" 당연히 내가 내야지, 소장한테 덤태기 씌울수는 없잖어.. "

" 한달에 300정도 밖에 못 번다며..   그렇게 술이나 사 주다간 남는 것도 없겠다.. "

" 근데, 이 여자가 바가지를 다 긁네..   나 그런거 디지게 싫어하거든.. "

" 바가지는..  걱정돼서 그러지, 저녁은 먹은거야? "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서 뿔 난다고 적반하장인 영철이에게 짜증이 났지만 속으로 삭혀야 했다.     그 전처럼 배알이

뒤 틀린다며 며칠씩 핸폰도 받지 않고 집에 오지도 않는다면 미숙이 자신만 애가 탈 뿐이다.

" 먹었어, 그만 자자.. "

씻지도 않고 안방으로 들어간 영철이에게 잠옷을 내 밀었다.     옷을 갈아입더니 침대로 올라가 벽을 향해 등을 돌린다.

" 그냥 자게? "

" 건드리지 마, 피곤해.. "

그의 등에 붙어 누워, 어깨에 손을 올렸더니 싸늘한 반응이 돌아온다.

아무리 영철이가 좋기로 이런 식으로 그의 기분까지 살피며 살아야 하는지 고민스럽다.

" 그럼 자, 내일 아침에 일찍 깨워줄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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