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삶의 무게 23

바라쿠다 2012. 11. 29. 20:10

" 안녕하세요.. "

" 우리 정호가 빠진 이유가 있네, 이쁘게 생겼다.. "

" 내가 뭐랬어, 이쁘다고 했잖어.후후.. "

부득이 제 엄마를 만나 보자는 정호의 성화를 견디기도 어려웠지만, 일단 만나 보는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벌써부터 결혼 운운하는 정호가 내심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이왕에 정호 집안의 능력을 

감지할 요량이면 그의 엄마와 얘기를 나눠 보는게 옳지 싶어 점심 약속을 한 것이다.

" 고맙습니다, 어머니도 젊어 보이세요.호호.. "

" 가게는.. "

" 응, 알바 있어.. "

우리 엄마랑 비슷한 나이지 싶은데 피부 샵에서 관리라도 받는지 얼굴에 주름하나 없다.

" 미영이라고 했나, 가게를 알뜰하게 꾸려간다며? "

" 보통 야무진게 아냐, 쓰레기 봉투도 끝까지 채우라면서 잔소리를 한다니까.. "

" 제가 잘하는건 아니구여, 워낙 정호가 돈 귀한줄 모르고 써 대니까 그러지 못하게 말리는거예요.. "

" 얼굴도 이쁜데다 겸손까지 하네.호호..   미영이 어머니는 좋으시겠다, 어쩜 이리도 암팡지게 교육을 시켰을꼬.. "

어려서부터 학교 선생님이나 주변 어른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    그네들이 뭘 좋아하는지 눈치로 알아 차렸기

때문이다.

" 애 말대로 하다보니까 4백이나 떨어지더라구.후후.. "

" 에그 ~ 이쁜 여자 좋아하는건 꼭 지 애비라니까.. "

" 아버님이 부동산 하신다면서요.. "

" 글쎄 말이야..  그냥 집에 있어도 되는데 굳이 욕심을 부리는지 몰라.. "

얼핏 정호에게 듣기론 그의 아빠가 짠돌이라고 했다.     재산이야 당연히 남자가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게 어른들의 사고

방식인만큼 정호 아빠의 능력이 궁금한 참이다.

" 좋은 일이죠, 뭐..   벌써부터 집에만 계시면 답답도 하실테구.. "

" 니 아빠가 들으면 좋아하시겠다..   근데, 우리 정호랑 결혼할 생각은 있는거지? "

" 전 아직 준비가..   아빠도 말단 공무원이고, 제가 모아 놓은것도 없어서.. "

정호와 결혼이란걸 추진하게 된다면, 그의 집에서 어느 정도까지 밀어줄수 있는지도 알아봐야 했다.

" 그거야 부모들이 다 하는게지, 젊은 사람이 무슨 돈이 있겠어..  신혼집이야 남자쪽에서 준비를 하면 되고, 여자쪽에서는

시부모 한복이나 맞춰주면 되지 뭐..  우린 친척도 별로 없어.. "

" 그래도..  우리 부모님이 정호를 어찌 보실지도 모르고.. "

" 아무 걱정도 마시라고 말씀드려..  얘 아빠가 다 해 주시게끔 말씀 드릴테니까..   미영이가 할 일은 우리 정호가 엇 나가지

않게 감시만 잘 하면 돼.. "

" 엄마는, 내가 무슨 문제아도 아니고.. "

" 말이 나왔으니 얘기지만, 니가 말썽을 좀 많이 부렸니?   진작에 이런 야무진 아가씨를 만났어야 했는데.. "

 

" 어때, 우리 엄마.. "

" 좋으신 분 같애..  편해 보여.. "

점심을 먹고 가게를 구경하고 싶다는 어머니를, 젊은 손님들이 싫어한다며 정호가 오시지 못하게 말렸다.   

내심 서운해 하는 표정이었지만, 자식의 뜻을 꺽지 못하는 어머니를 택시에 태워드려 배웅을 하고는 가게로 돌아왔다.

" 그렇다니까..   이제는 너네 부모님 뵈러 가자.후후.. "

" 이런..  우물에서 숭늉찾기는.. "

" 왜, 그러기로 했잖어.. "

" 며칠 더 생각해 보고.. "

그의 엄마를 만나서 타진한 바로는 어느 정도의 소득은 있다고 보여진다.    정호네 집에서 살 집을 마련해 준다면, 앞으로의

생활은 순탄할 것이다.     

정호를 잘 구슬리기만 한다면 편안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자신은 있다.

" 빨리 결정해..  기식아, 그 봉투 어딨냐? "

" 책상 서랍에 있어요.. "

" 나, 전자상가에 다녀올께.. "

" 그래, 다녀와.. "

고장난 PC 부품을 챙겨 들더니 가게를 나선다.    일이 손에 익었는지 제법 열심히 하려는 정호가 기특해 보인다.

" 시어머니 만난 소감은 어때? "

" 너, 까불래?   누가 시어머니야.. "

" 부모한테 선 보였으면 그리 되는거지, 뭐.. "

" 아직 몰라.. "

정호와의 앞날을 결심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려해 볼 일이다.     얼추 조건은 맘에 드는데, 한 남자의 소속이 되기에는

뭔가 손해를 보는 느낌이다.

" 내일 쉬는 날인데 술 한잔 하자구.. "

" 당분간 안돼, 조심해야지.. "

" 나 영장 나왔어.. "

" 언제야.. "

" 한달후.. "

쓸만한 장난감이 곁을 떠난다니 아쉬워진다.     가끔씩 섹스가 하고플때 제법 만족감을 선사하던 기식이다.

 

" 웬일이래, 수진이가 연락을 다 주고.. "

" 왜, 싫어?   싫으면 그냥 들어가든지.. "

내일이 일요일이라 백천이와 만나고자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속이 상한 참이다.    며칠후면 크리스마스라 가는곳마다

캐롤이 흘러 나온다.

학원이 끝나고 그냥 집으로 들어가자니, 억울한 생각이 들어 그동안 뜸했던 윤수를 불러낸 것이다.

" 누가 싫다고 했나, 나야 고맙지.. "

" 까불고 있어, 정말..   안 그래도 복습할게 많아서 그냥 집에 가려다가 시간을 냈구만.. "

언제부터인지 윤수만 만나게 되면 만만한 탓에 투정을 부리게 된다.    그가 나를 이뻐해 주는 속내를 알기 때문이다.

" 참, 언제 수료지? "

" 아직..  두달은 더 배워야 돼.. "

" 잘 배워 둬, 내년 구정 쯤에는 니 이름으로 커피 전문점을 오픈하는 거니까.. "

" 나도 알어..   누가 꼰대 아니랄까봐 잔소리는.. " 

" 남자 친구하고 싸웠냐?    오늘 예민해 보인다.. "

" 싸우긴 누가..  술이나 사.. "

나이가 많은 탓인지 눈치 하나는 귀신이다.     어차피 남자 친구가 있는걸 알고는 있으니 맘은 편하다.

" 남자들은 어린애 같애서 삐지지 않게 잘 해줘야 해..   무뚝뚝하게 굴지 말고.. "

" 너한테만 그러지 걔한테는 안 그래, 별걸 다 참견이라니까.. "

" 알았어.후후..  단단히 토라졌네, 어느 녀석인지 혼구멍을 내 줄까.. "

" 술 안마실거야? "

" 그래, 마시자..   오늘은 같이 있자구.. "

어차피 이대로 집에 들어가 봐야 속만 터질것이다.    오랜만에 윤수의 기분이나 맞춰줘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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