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삶의 무게 25

바라쿠다 2012. 12. 4. 18:55

윤수가 백화점에서 사 준 목도리를 이쁘게 포장까지 해서는 우체국으로 온 수진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지만, 평일보다 택배일이 많아 어찌 될지 모르겠다는 백천이와 통화를 한 뒤다.

모든 연인들이 일년중 가장 뜻 깊게 생각하는 이브인지라, 거리에 팔짱을 낀 그네들의 모습이 유난히 밝아 보여 부럽기까지

하다.

우체국 안으로 택배 차량들이 바쁘게 들어가고 있다.     그들도 맡은 바 일을 끝내고 이브를 만끽하고 싶을것이다.

나처럼 그네들을 기다리는 애인이나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체국 앞에 여럿 보인다.

일을 마친 택배 기사들이 수위실을 거쳐 애인이나 가족들과 재회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백천이가 나오길 기다렸다.

이윽고 건물 모퉁이에서 백천이의 모습이 나타나, 반가운 마음에 길을 건너는데 먼저 그의 앞을 막아 서는 이가 있었다.

아장아장 걷는 어린애와 그의 엄마인듯 한 여자인데, 백천이도 이내 그들을 알아보고는 만면 가득 미소를 짓는다.

" 백천씨, 누구야? "

그들 앞으로 다가 선 나를 알아 본 백천이의 눈이 커진다.

" 여기는 어쩐일로.. "

" 늦게 끝난다고 해서 마중 나왔지.. "

" 잠깐 이리와.. "

그들 모녀와 내 사이를 가로막은 백천이가, 손목을 잡더니 우체국 담벼락으로 끌고 간다.

그 여자 역시, 이 상황이 탐탁치 않은지 멀거니 이쪽을 바라만 볼 뿐이다.

" 왜 이래, 저 여자는 누구고.. "

" ....얘기 하려고 했어.. "

" 무슨 얘기? "

" ....나, 유부남이야..   집사람하고 딸이야.. "

" 그게 무슨 소리야, 자기가 몇살인데 벌써 저런 큰 애가 있어.. "

" ....나중에 얘기하자..   나, 가봐야 돼.. "

" 혼자 살았잖어.. "

" 사정이 있었어, 나중에 핸폰할께.. "

잠시 내 눈을 들여다 보던 백천이가 등을 돌려 그들에게 가더니 서둘러 걸음걸이를 옮긴다.

멀어져 가는 그네들을 멍하니 지켜봐야 했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수가 없음이다.

 

" 야 ~ 너, 그러면 안되지.. "

" 그럼, 어쩌라구..  약속도 깨고 이 지하실에서 너랑 같이 있잔 얘기야? "

크리스마스 이브라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불타는 밤을 보내고자 했는데 정호가 딴지를 건다.

"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이걸 왜 시작했는데.. "

" 그게 나 때문이란 말이야? "

" 그럼 누구 때문이야..   나야말로 여기 쳐 박혀 있을 놈이냐구.. "

" 몰라..  놀다 올거야.. "

" 맘대로 해, 그냥 문 닫아 버릴테니까.. "

완전히 떼쟁이한테 발목을 잡힌 기분이다.    모르는척 나가고 싶지만, 능히 간판불을 내리고도 남을 인간이다.

가뜩이나 정호 엄마한테 선까지 보였는데, 오늘처럼 장사가 잘 되는 날에 문을 닫았다는 얘기가 전해 져서는 곤란하다.

" 이게 내꺼야?    왜, 나한테 덤태기를 씌우냐.. "

" 너 때문에 시작한거잖어.. "

" 넌, 돈이나 벌지..   난, 뭐야..   이 까짓 알바나 뛰라구? "

" 어차피 결혼하면 다 니께 될건데, 뭘 따지냐.. "

뚜렷하게 언약을 한 적은 없건만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진다.     성질 같아선 그냥 짤라버리고 싶은데, 머뭇거리게 된다.

" 기가 막혀, 정말.. "

" 이제는 클럽도 그만 끊어..   나를 두고 헌팅을 간다는게 말이 되냐? "

이런 대접을 받고도 계속 참아야 하는지가 고민이다.     그렇지만 정호 정도의 능력 있는 놈을 새로 만들기도 쉽지 않기에

망설여 지는 것이다.

" 야 ~ 기식아..  너, 밖에 나가서 소주 안주 좀 사 와라.. "

" 양념 반,후라이드 반이면 되지? "

" 근데, 니가 미영이 식성을 어찌 아냐.. "

마지 못해 지하실에서 썩을 생각을 하니 부아가 치민다.     기식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더니 그 놈까지 실수를 한다.

 

" 무슨 일이야, 천천히 마셔.. "

" 좋은 말 할때 그냥 놔 둬, 나 열불나면 아무것도 안 보여.. "

수진이 남자친구한테 선물할 목도리를 백화점에서 사서 들려 보내고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집에서 홀로 보내리라 소주와

안주거리를 챙긴 윤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애인이긴 하지만, 자식보다도 어린 수진이를 언제까지 붙잡아 둘수는 없는 노릇이다. 

딸 자식을 시집 보낸다는 느낌이 이러 하리라, 자위하는 심정으로 TV를 켜 놓고 애꿎은 소주만 축내고 있었다.

느닷없이 술을 사 달라며 수진이한테서 핸폰이 왔기에 집으로 불러 들였다.

현관문을 열어 주었더니, 조금전에 포장까지 해서 손에 들려 보냈던 선물꾸러미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거실에 올라 와서는, 내가 마시고 있던 소주병을 냉큼 들어서 입으로 가져가더니 나발까지 분다.

" 내가 따라 줄께.. "

소주병을 뺏어 내가 마시던 잔에 술을 채워 수진이 앞에 내밀었다.

" 나쁜 새끼.. "

그 잔을 입 안에 털어 넣더니, 화를 삭히려는 듯 숨을 크게 내 쉰다.

" 얘기나 해 봐.. "

" 너도 똑같애..  도둑놈.. "

한동안 씩씩대는 수진이의 잔에 술을 따라주면서 다독거려야 했다.   그 술병을 몽땅 비우고서야, 비로서 연유를 들을수

있었다.

" 그 놈이 애 아빠라는걸 눈치 못 챘어? "

" 이제 26이라 전혀 생각도 못했지.. "

" 허, 참..  그런 몹쓸 놈이.. "

" 너도 마찬가지야..   지는 뭐 다른줄 아는 모양이네.. "

" 난 속이진 않았잖어.. "

마음에 상처가 생기기야 했겠지만 엉뚱하게 내게로 화살이 돌아온다.    그녀가 겪은 아픔이 안쓰럽기에 위로해 주고자

했지만, 그 놈과 똑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 시끄러, 담배나 내 놔.. "

" 나만 제일 만만하지.. "

담배에 불을 붙여 수진이의 입에 물려 줬다.    대신 투정을 받아서라도 틀어진 심사를 풀어주고 싶다.

" 니가 그러라고 했잖어..  왜, 다시 무르고 싶어? "

" 누가 그렇대, 잘못은 엉뚱한 놈이 했는데 내가 뒤집어 쓰니까 그렇지.. "

" 그 놈이나 너나 거기서 거기야..   나쁜 새끼들.. "

" 난 좀 억울하다, 뭐..  욕 먹는거야 상관없지만, 그래도 니가 잘 되기만 바랬는데.. "

" 그러셔~ 잘났어, 정말.. "

그 놈에 대한 배신감이 견딜수가 없는지 좀처럼 평상심을 찾지 못하는 수진이다.     아직 어린 그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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