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장난이 아냐

사는게 장난이 아냐 34

바라쿠다 2012. 12. 1. 03:05

" 삼촌, 괜찮을까? "

" 냅 둬라..  누가 그렇게 퍼 마시랬나, 흥 ~ "

기본 메이크 업을 받는걸 보겠다며 미장원까지 쫒아 와서는 한쪽 쇼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웬만큼 마셔도 끄떡이 없는 사람인데, 저토록 맥을 못 추는걸 보자니 조금은 안쓰럽다.

" 술이 세던데.. "

" 쬐그만게 뭘 안다고, 술까지 들먹여.. "

" 삼촌이 괜찮다고 그랬잖어.. "

" 시끄러..  자꾸 움직이면 손질하기 나뻐.. "

미용실을 몇십년이나 다닌 나도 원장의 써비스를 받게 되면 몸 자세를 바로 하곤 했는데, 아직 어린것이 꼬박꼬박 말 대꾸를

하고 있다.    그만큼 세상이 바뀐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동훈이에게 홍삼이라도 달여 먹여야 할 듯 싶다.

일요일도 없이 밤무대에 올라 노래를 했어도, 유정이와 함께 겨우 입에 풀칠을 할 정도였다.

동훈이가 프라임으로 온지 불과 몇달만에 모든것이 뒤바뀌어 졌다.   

술 마시는 손님들의 짖궃은 시선을 받지 않아 좋았고, 비록 단역이긴 하지만 탈랜트가 되어 TV에 얼굴까지 알리게 됐다.   

내가 받는 출연료만 해도 그 전보다 훨씬 나은 조건이라 감지덕지 중인데, 애물단지 딸 년까지 이 계통으로 끌어 들여

희망을 갖게 해 준 사람이다.

손님 테이블에 이리저리 불려 다니던 그 때와는 달리, 연하의 동훈이게만 신경을 쓰게 됨이 나름 흡족하다.

요즘에 와서는 그의 다정다감한 보살핌으로 애뜻한 감정까지 생긴 탓에, 마냥 즐겁기까지 한 나날이다.

" 어때요, 이쁘게 잘 된것 같은데.. "

" 네, 그러네요..  수고비는 얼마나 드리면 되죠? "

기본적인 색조만 깔았을 뿐인데도 제법 이쁘다.     그나마 딸년에게 미모나마 물려 줬지 싶어 뿌듯한 마음이다.

" 그냥 알아서 주세요, 신부 화장한 것도 아닌데요, 뭐.. "

" 5만원 드리면 적을래나? "

" 됐어요..  자주 찾아주시면 되죠.호호.. "

" 그럴께요, 수고하셨습니다..   유정아, 삼촌 좀 깨워라.. "

" 응, 엄마.. "

 

" 그냥 택시타고 가자니까.. "

" 됐어, 충분히 잤어.. "

" 삼촌 눈이 퉁퉁 불었어.호호.. "

승용차를 가지고 간다니까 미경이가 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나 마음이 풀어지다 보니 과음을

하게 됐고, 민식이 놈과 엄미리 사이에 채홍사 역할까지 하느라 양주를 스트레이트로 들이켰으니 결코 적은 양은 아니다.

거기에 가볍게 치뤄야 할 미경이와의 섹스에, 과한 욕심을 부려 끝장을 보고자 했으니 탈이 안 난것만도 다행이다.

" 유정이 화장이 제대로 먹었네, 앞으로도 거기서 하면 되겠다.. "

" 워낙 기본이 받쳐 주잖아, 삼촌.. "

" 기집애가 또 버릇없이..  니 얼굴은 다 내 덕이야.. "

이제 피기 시작한 유정이야 당연히 싱싱하고 이쁘지만, 미경이 역시 사뭇 달라 보인다.    

며칠전에 백화점까지 가서 사 입은 옷태가 제법 어우러 져, 룸 밀러에 비쳐 진 모습이 한결 이쁘다.

" 이번에는 니 엄마 얘기가 정답이야..   바탕이 엄마를 닮았어.. "

" 그것 봐, 이 년아..   앞으로 엄마한테 잘 해.. "

" 피~ 누가 한쌍의 바퀴벌레 아니랄까 봐.. "

구로 디지탈 단지 내에 위치한 중앙 프로덕션은, 12층짜리 건물에서 두개층이나 쓰고 있다.

연속극이나 단막극을 만들어 방송국과 계약을 하고, 나름 작품성 있는 단편 영화를 만들기도 한단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연출부로 가다 보니 제법 인원도 많고 회사 분위기가 활기차 보인다.

" 장PD님 반갑습니다.. "

" 어서오세요, 김이사님.. "

복도 끝, 맨 안쪽에 자리잡은 회의실에서 그를 다시 만날수 있었다.    비슷한 또래의 직원과 같이였다.

" 이쪽은 연출부 책임자 박차장입니다..  우리 중앙 프로덕션의 실셉니다.후후.. "

" 에이~  형님, 왜 그래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박치수라고 합니다.. "

" 반갑습니다..  잘 좀 봐 주세요.후후.. "

아마도 작품의 향방을 결정짓는 브레인이지 싶다.     오너의 믿음 없이는 그 자리에 앉을수도 없음이다.

" 유정양의 카메라 테스트 좀 할께요..   잠시 빌려도 되겠죠, 이사님.. "

" 그럼요..  이쁘게 잘 해라, 유정아.. "

" 네, 삼촌.. "

장 PD와 유정이가 카메라 테스트를 받기 위해 회의실을 나가고, 박차장과 미경이까지 셋이 남겨졌다.

" 이사님이 오시고 프라임이 바쁘게 돌아간다고 들었습니다..   발이 넓으신가 봐요.. "

" 웬걸요, 중앙에 비하면 구멍가겐데..   이미 아시겠지만, 모든게 낯설 뿐입니다, 많이 가르쳐 주세요.. "

프로덕션의 간부쯤 되면, 벌써 나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 정도는 방송국 PD들을 통해 들었을 것이다.

이 계통의 경험 역시,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터다.    어줍잖게 아는척을 했다간

창피만 당하기 십상이다.   

차라리 배 째라는 식으로 솔직하게 까 발리는게 맞지 싶다.

" 탑 기획의 천수용이사 아시죠?    제 직속 선뱁니다, 그 형님이 그러더군요..   뚝심이 있으시다고.후후.. "

" 에이, 아니죠..  그 분이야 듣기 좋은 말씀만 하신게고, 이제 시작인데요.. "

" 이것도 인연이겠죠, 앞으로 이사님하고 자주 뵜으면 좋겠습니다.. "

몇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눈치도 빠르고 정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더 두고봐야 알겠지만 그의 말대로 하나의 인연이

늘었음이다.

" 제가 부탁을 드릴 일이죠.. "

" 그럼,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

" 네, 반가웠습니다.. "

 

" 어때 보여? "

" 뭐가? "

" 방금 그사람..  야무져 보이지.. "

" 글쎄..  나야 잘 모르지.. "

어찌 보면 총만 안 들었을 뿐이지, 이 계통은 전쟁터와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누가 빨리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황금의 주인이 되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날 것이다.     황금의 주인까진 못 될지언정 누가

아군이냐, 적군이냐를 따질 눈치 정도는 있어야 할 것이다.

" 참, 내..   당신 말이야, 얼굴이라도 이쁘기 잘 했어..  그 눈도 이쁘면 뭐하냐, 사람 볼줄도 모르는데.. "

" 에구~ 그래 잘났다, 그런 사람이 나 하나도 못 이기고 그렇게 비실대냐.. "

" 원래는 안 이랬는데, 당신이 워낙 밝히잖어.후후.. "

" 그래, 내가 색녀다..  오늘밤에도 각오해, 완전히 보내 버릴테니까.. "

같이 있을수록 자꾸만 정이 쌓이는 여자다.    이성을 좋아하는 기준이야 각각 틀리겠지만, 이토록 편안한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녀가 탈바꿈하게 된 것도 이유가 된다.    프라임의 대표인 남선배와 미스최가 같이 모인 자리에서, 미경이 그녀를 처음

본 느낌이, 뭐랄까..   세파에 찌들대로 찌들어 허덕이는 느낌을 받았더랬다.

그러던 그녀가 모든 찌꺼기를 벗어 버린듯 그렇게 밝아 보일수가 없다.     거기에다 툭툭 내 뱉는 말 한마디, 움직이는

작은 동작마다에 정감이 묻어 난다.

일반적으로 따져야 하는 배필의 조건이란걸 무시할수만 있다면, 평생을 같이 하고 싶을만큼 꽤나 훌륭한 여자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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