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집으로 가? "
" 정장으로 하자구, 저쪽 집이 괜찮겠다.. "
매체에 광고를 많이 하는 꽤나 이름 있는 매장으로 들어섰다.
" 비쌀텐데.. "
" 그냥 골라, 내 애인이 이 정도는 입고 다녀야지.. "
" 애인? 언제 등록했대.호호.. "
" 가르쳐 줄까? "
" 응.. "
" 당신이 라면 끓여 준 날부터.후후.. "
" 피~ 그까짓 라면으로 감동 먹었어? "
그 날 아침 남자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별것 아니라고 치부할 꼴난 라면이지만, 내가 받은 느낌은 남 달랐다.
미경이가 저녁 늦게까지 밤 업소에서 노래를 하는게 내 눈에는 노동에 가까워 보였다. 거기에다 적지 않은 술까지
마시고는 새벽까지 뒤엉켜 찐한 에로 영화를 찍어댔다.
보통 늘어지게 곯아 떨어지는게 당연하지 싶었는데, 그 꼴난 라면이라도 끓여주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빈 그녀다.
바라는 댓가도 없이 부시시한 몰골을 한 채, 그 귀찮음을 당여한 듯 받아 들여준 그녀가 고마웠다.
" 그러게 말이다, 내가 싸구련가 봐.. "
" 소꼬리라도 고아주면 아주 기절하겠네.호호.. "
" 에구~ 됐네.. 음식솜씨는 꽝이면서.후후.. "
" 뭐, 이런 깍쟁이가 다 있다니.. "
" 아야 ~ "
짐짓 토라진 듯 껴안고 있던 팔을 꼬집는 미경이다.
" 어서오세요.. "
" 이 사람한테 어울릴만 한 걸로 몇개 골라줘요.. "
매장안에 있는 쇼파에 앉아 지켜보기로 했다. 제 딸 유정이보다는 작지만, 또래 여자들에 비해서는 꽤 늘씬하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올때마다, 미시인 듯 싶은 매장 직원마저 미경이의 맵시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 사모님, 너무 잘 어울리세요.. 사장님은 좋으시겠다.호호.. "
" 그쵸, 이쁘죠? 이 집 옷이 좋네요.후후.. "
입어보는 옷마다 제법 잘 어울린다. 미경이의 자태를 칭찬하는 것도 팔불출 같아, 메이커를 추겨세우는 걸로 대신했다.
" 괜찮어? "
" 응.. 블라우스는 그냥 그걸로 입고 가고, 치마하고 가죽쟈켓은 당신이 알아서 입어.. "
감색 실크로 된 블라우스는 미경이의 움직임이 있을때마다 젖가슴의 곡선을 그대로 나타내 눈요기 하기에 좋다.
" 치마하고 이 쟈켓은 한 치수 아래걸로 주세요.. "
" 어머, 사모님 이게 더 잘 어울려요.. 그건 너무 꽉 낄텐데.. "
" 그래서 그걸 입는거예요, 그 옷에다 내 몸을 맞춰야 하니까.호호.. "
살을 빼고자 하는 결심이 선 모양이다. 흔히 여자들이 몸에 끼는 옷을 가져다 놓고, 다이어트에 대한 의지를 불 태우는
것처럼 미경이도 단단히 작정을 한 듯 싶다.
" 그게 무슨.. "
" 예전 몸매를 찾겠다네요.후후.. 이 사람 말대로 그걸로 주시고 나머지는 포장해 주면 되겠네.. "
" 네, 손님.. "
" 이제 가자구 유정이 담임 만날 시간이야.. "
" 응, 알았어.. "
약속 시간인 저녁 8시가 조금 넘어 미경이와 참치 집으로 들어섰다.
" 어서오세요, 사장님.. 손님 네 분은 방에 계십니다.. "
참치 집 지배인이 반긴다. 쌍동이 자매와 유정이 담임은 이미 와 있다는 얘기다.
" 안주 들어갔어요? "
" 아직.. "
" 좋은걸로 부탁해요.. "
" 네, 사장님.. "
지배인이 안내를 해 준 골방으로 들어가니 유정이 담임과 로리 자매가 엉거주춤 일어나는 동작을 보인다.
" 로리, 그냥 앉아 있어..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조금 늦었죠? "
" 웬걸요, 바쁘신 분인데.. 저도 방금 왔습니다.후후.. "
첫 대면인 인간 관계에 있어 그 사람의 능력이 모든걸 좌우하는 법이다. 낮에 학교에서 만났을땐 담임으로서의 위엄을
내 세우던 그가 전혀 다른 태도로 바뀌어 져 있다.
장학사를 운운한 탓도 있겠지만 학부형에게 대접을 받는 자리다. 더군다나 금발의 매력적인 로리 자매와 함께 있으니
저절로 기분이 좋을것이다.
종업원 아가씨 둘이 번갈아 참치와 술을 셋팅하느라 분주하다.
" 우리 유정이가 학교 공부가 끝나고 연기 지도를 받게 됐어요, 잘 좀 부탁드립니다.. "
" 염려 마십시요, 되도록 일찍 보내겠습니다.. "
" 참, 우리 소속사의 로리하고 엘리야도 같이 한잔 하기로 했는데 괜찮으시죠.. "
" 저희야 좋죠.후후.. "
" 이런, 자리를 바꿔야겠네.. 로리가 이쪽으로 건너오고, 죄송하지만 한분은 저 쪽으로 건너가시죠..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섞여 앉읍시다.. "
" 네, 이사님.. "
바닥에 앉아있던 로리가 일어서서 테이블을 돈다. 일부러 짧은 치마를 입혔더니, 늘씬한 로리의 각선미를 훔쳐보느라
바삐 눈이 돌아가는 담임이다.
정 사각 진 테이블에 남녀 한쌍씩 붙어 앉았고, 로리와 엘리야가 술병을 들어 선생들에게 따른다.
" 저번주 TV에서 봤어요, 남미에서 온 유학생이라고 하던데 여기서 만날줄이야.후후.. "
TV 맛기행이라는 프로에 2주 전부터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로리와 엘리야다.
은근히 쌍동이 자매와 술 한잔 하고 싶다며, 방송국 정현석 PD에게 압력이 들어온다는 얘기도 들었다.
" 유학생인건 맞아요, 방송 출연땜에 내가 섭외를 했죠.. "
대외적으로는 유학생이라고 해야 이미지가 좋다. 그저 돈을 벌기위해 밤무대에서 무용을 한다면, 그만큼 상품가치가
떨어질수 밖에 없어 외국인들이 많이 다니는 대학에 청강 신청도 해 놓은 것이다.
" 선생님, 우리 유정이 학교 생활은 어때요? "
" 아, 잘하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사이도 좋은 편이니까 어머니께서 걱정 안 하셔도 될 겝니다.. "
바꿔 말하면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는 다소 등한시 한다는 말이지 싶다. 말이란게 하는 사람의 의중에 따라 적당히
포장이 될 소지가 많은지라, 듣는 사람이 제대로 알아 들어야 그 뜻을 눈치챌수 있음이다.
" 근데, 선생님께선 노래 좀 하시나요? "
" 노래요? "
" 네, 술만 마시고 맹숭맹숭하면 재미없죠.. 이차로 얘네들하고 노래방도 가셔야지.. "
슬슬 발동을 걸어 기대감을 심어줄 생각이다. 술이 취한 그네들의 진면목을 보는 재미도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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