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부스럭 거리는 바람에 눈을 뜬 선영이다.
" 벌써 일어났어? "
" 응.. 너무 마셨나 봐.. 머리가 깨질것 같애.. "
옆자리에 앉은 민수가 숙취 때문에 자신의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 하고 있다.
" 그것 봐, 아침에 고생하면서.. 기다려.."
침대 밑에 널브러 져 있는 옷들 중에 민수가 입었던 흰색 와이셔츠를 집어 알몸에다 걸치고는 주방으로 나갔다.
간 밤에 잔뜩 술이 취한 민수가 우격다짐으로 덤벼드는 탓에, 마지못해 그의 분신을 받아주긴 했지만 내내 찝찝했다.
진호를 만나고 들어온 남편이 홈 드레스를 찢어 버리기라도 하듯 거칠게 벗기고는, 온 몸 곳곳 혀를 내밀어 씻으며 일방적인
섹스를 했지만, 기실 내 몸에서 진호의 흔적을 찾고자 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 이거 마셔.. "
냉장고에서 꺼내온 홍삼 다린 물을 건네고 침대에 걸터 앉았다.
" 내가 많이 취했지? "
" 기억 안 나? "
" 집에 들어와서 당신을 껴안은거 같은데.. "
술에 취해 필림이 끊긴 탓인지, 자신이 밀쳐 져 서운한 감정을 표했던 것도 기억이 없는듯 하다.
" 그 시간까지 진호랑 같이 있었어? "
" 아냐.. 헤어지고 나서 더 마셨어.. "
" 혼자? "
" 응.. "
" 그렇게 술 마신다고 해결이 날것도 아니잖어.. "
남편이 혼자서 술을 마셔야 했던 이유야 뻔했기에 그저 안스러울 뿐이다. 진호와 내가 만났음에 갖은 추측을 하며
괴로워 했을것이다.
그의 그런 마음을 짐작하기에 미안한 감이 없지 않은 참이다.
" 많이 취했어, 그 정신에 룸싸롱까지 갔었으니까.. 미안해.. "
" ....됐어, 그렇게 해서라도 풀린다면.. "
민수에게 다가가 앉아 그의 머리를 가슴에 끌어 안았다. 아가씨들을 끼고 술을 마신다고 기분이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밖에 할수 없었던 남편의 마음이 들여다 보였고, 나 역시 개운치가 못하다.
" 아가씨들하고는 아무일 없었어.. "
내 허리를 끌어 안더니 가슴골 사이에 머리를 묻는다. 그의 머리를 쓰다 듬었다.
" 됐다니까, 몸 생각이나 해.. 어저께 어머니한테서 전화왔었어, 희수 아가씨 날 잡았다고 오늘 같이 들어오래.. "
" 내가 희수 결혼에 보탬이 되는것도 아닌데.. "
"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잖어.. 당연히 가 봐야지.. "
"어머.. 진짜 오랜만이다, 오빠.. "
" 그러네, 잘 지내지? "
" 윤철 선배한테 듣고도 긴가,민가 했는데.. "
" 야, 박성희.. 진호는 오빠고 나는 선배냐? "
" 또 그런다, 툭하면 시비래.. 그러니까 선배한테 여자가 안 붙는거야.. "
대학 동기인 윤철이랑 만나 사업차 의논을 하기로 했는데, 선영이랑 친하게 지내던 성희도 같이 나왔다.
" 그래, 생각 좀 해 봤냐? "
" 생각이야 수도 없이 했지, 내가 잘 할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게 문제야.. "
써클 활동도 같이 했을만큼 유달리 친했던 윤철이의 작은 삼촌께서 양평에 난을 키우는 비닐하우스를 갖고 있다고 했다.
평소 앓던 지병이 있어 시골 생활을 고집했던 것인데 그나마 버틸 체력이 되질 않아 처분을 한다는 것이다.
" 이런.. 예전의 패기는 다 어쩌구..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라니까.. 그 가격이면 언제 되 팔아도 그 시세는 받을테고,
키우던 난하고 분재 가격만 해도 3천만원은 족히 된다더라.. "
" 키우기만 하면 뭐하냐, 팔 자신이 없는데.. "
" 그것도 걱정할게 없는거야, 거래하던 꽃시장의 기존 거래처만 가지고도 먹고 산다더라.. 그리고 우리 동창들한테
넌, 이미 유명인사야.. 그 사지에서 죽었다던 놈이 살아왔으니 얼마나 소문이 빠르겠냐, 모르긴 해도 널 모르는 동창은
없을걸.. 동창회에 니 명함만 뿌려도 난하고 분재를 파는건 일도 아냐.. 너도 생각해 봐, 결혼식이나 인사 이동철에
난이며 분재가 엄청 쌓이잖어.. "
답답하다며 열변을 토하는 윤철이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제대로 할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중이다.
" 글쎄.. "
" 그냥 하라니까.. 이런 조건은 없어, 그리고 몸이 불편한 너한테는 딱이야.. "
" 내 생각에도 괜찮을것 같네, 진호 오빠가 원래 꼼꼼하잖어.. "
" ....그래, 한번 가보자.. "
윤철이 말마따나 불편한 이 몸으로 할만한게 없었다. 무려 한달간이나 이곳저곳 알아 봤지만 마땅한 걸 찾지 못했다.
" 근데, 선영이는 만나 봤냐? "
" 뭐하러 만나, 이미 남의 여자가 됐는데.. "
선영이를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 했다. 나로 인해 동창들간에 선영이를 두고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 그래도 그러면 안되지, 수경이까지 있는데.. 그렇게 안 봤는데 독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네.. "
" 그 얘긴 그만하자, 좋은 얘기도 아닌데.. "
" 그래, 선배.. 진호 오빠 맘 상하게.. "
" 알았어, 미안하다.. 그치만 괜히 괘씸해 지네.. "
" 어여들 와라.. 우리 우혁이가 많이 컸구나.호호.. "
" 일찍 왔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
어제 마신 술로 인해 속이 편치못한 민수때문에 느즈막히 시댁으로 온 선영이다.
" 죄송할게 무에 있누.. 음식을 차리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도우미 아줌마까지 있는데.. "
" 너, 얼굴이 까칠해 보인다.. 밤새 술 마신 얼굴인데.. "
아버님과 거실에 앉아있던 아주버니가 민수의 초췌한 얼굴을 보고는 트집을 잡고자 한다.
" ....좀 마셨어.. "
" 좋겠다, 누군 회사일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팔자좋게 술타령이나 하고.. "
" 이제 그만 합시다, 형.. 아니, 그러지 말고 한번 들어나 봅시다.. 그렇게 내가 못마땅한 이유가 뭐요? "
" 이 자식이 근데.. 아직도 지 잘못을 모르고설랑.. "
" 그만들 못하겠냐 ~ 이런 좋은날에 꼭 이래야 되겠어? "
두 형제간의 다툼으로 혈압때문에 조심을 해야 하는 시아버지의 노여움이 터지고야 말았다.
모든 식구들의 눈이 시아버지와 두 형제에게 모여 져 눈치를 살펴야 했다. 예전에도 갑자기 쓰러지신 아버님으로 인해
집안이 난리가 났더랬다.
" 뭐야, 오빠들.. 오늘 꼭 이래야겠어? "
" 미안하다, 희수야.. 아버지 죄송해요.. "
결국 민수가 한발 물러나는 바람에 다시 조용해 진 집안이다. 회사를 다 물려 받고도 민수를 견제하는 아주버니 때문에
가끔씩 시끄러운 일이 벌어지곤 했다. 민수와 달리 성격이 괄괄한 아주버니가 발단이 되곤 한다.
" 넌, 벌써부터 애기를 가지면 어쩌자는거야.. 기집애가 몸 간수도 못하고.. "
" 결혼하기로 했는데, 뭐 어때.. 내 나이가 벌써 29 이야, 새언니랑 동갑이라고.. "
" 그래 잘났다, 꼭 무슨 자랑거리라도 되는듯이 기집애가.. "
이번엔 화살이 시누이 희수에게 돌려진다. 도대체가 개념도 없고 자기 멋대로인 아주버니 때문에 시댁 어른들조차
그의 눈치를 살피곤 한다.
" 날을 잡았으니 흉이 될 일은 아니다, 희수 말대로 빨리 애가 들어선 것도 다행이야.. "
" 그래도 그건 아녜요,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지만 지킬건 지켜야지.. 그쵸, 제수씨.. "
" ......................... "
" 당신, 대답 안해도 돼.. 그저 내 뱉는 말이라는게, 조심성도 없고.. "
" 뭐야, 이 자식이 근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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