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선배의 도움으로 곧 철거가 될 이곳에서 당분간 지내기로 했다.
수경이를 이모 집에서 데려오고는, 며칠동안 앞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했다.
이미 민수 선배의 여자가 되어버린 선영이가 야속하긴 했지만, 그럴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군다나 시설에 계신 어머니는 선영이가 자의로 집을 나간것이 아니라, 친정 어머니한테 끌려 간 것이고 그 후로도
수경이를 잊지 못해 몇번인가 친정을 도망쳐 나왔다는 얘기를 해 주면서 그녀의 행복을 위해 잊으라고까지 하셨다.
다만 사지에서도 잊지 못하고 그리워 했던 선영이를 한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처럼 수경이로 인해 선영이가 자주 찾게 될 줄은 몰랐고, 그로 인해 민수 선배까지 얽힐줄은 생각도 못했다.
" 자꾸 이러면 모두가 힘들어.. 수경이가 보고 싶어도 참아야지.. "
" 몰라, 그런 소리 그만해.. 내 자식을 보겠다는거야, 말리지 마.. "
이미 둘이 만난 사실까지 알고있는 민수의 오해라도 사게 되면 선영이가 힘들어 질게 뻔했다.
선영이를 보고싶은 욕심이야 그녀보다도 자신이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모자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다독이고자 했건만, 수경이 핑계까지 대며 버팅기자 난감할 뿐이다.
" 나도 모르겠다, 너만 피해 입을텐데.. "
" 난, 그런거 모른다니까.. 수경이를 떼 놓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다시는 그러기 싫어.. "
어떻게든 선영이를 달래보려고 하던 중에 그녀의 핸폰이 울린다.
" 응.. 그래.. 같이 있어.. 응.. 알았어.. "
그녀가 통화하는걸 묵묵히 지켜봐야 했다. 통화하는 내용으로 봐서는 민수 선배지 싶다.
" 민수씨야.. "
" 뭐래.. "
" 자기하고 얘기하고 싶대, 6시에 만나재.. "
" 이 일을 어쩌냐.. "
" 일찍 왔네, 멀리까지 오라고 해서 미안해.. "
" 지하철 타니까 금방이더라구.. "
진호가 살아 돌아왔다는 얘기를 듣고는, 선영이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던 민수다.
우혁이를 맡겨놓고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는 장모의 얘기를 듣고서는, 와이프가 진호를 만나러 나간걸 확신했다.
진호와의 사이에 딸이 있기에 두 사람이 만날 명분이야 있겠지만, 마냥 두고 볼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 다리를 다쳤네.. "
" 이제 견딜만 해요.. "
" 한국에 와서 많이 놀랬겠다.. "
" 처음엔 깜깜했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배였으니까.. "
교대역 근처에 있는 조용한 호프집을 약속 장소로 잡았다.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였다.
" 일단 미안하다, 여기선 다 니가 죽은줄만 알았어.. "
" 그랬겠지.. 포로처럼 잡혀 있었으니까.. "
" 한잔하자, 니가 살아온걸 축하는 해야지.. "
" 글쎄.. 축하를 받아야 되는데, 그것만도 아닌게 돼 버렸어.. "
" 어쩌다 너하고 이렇게까지 됐는지 모르겠다, 이럴 작정은 아니였는데.. "
" 마찬가지유.. 나도 선배하고 선영이 사이에 낀 이물질이 된 기분이야.. "
" 어떤식으로든 결말은 봐야지.. 넌 어쨌으면 좋겠냐? "
"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다 잊고 떠나려고 했는데, 선영이가 자꾸만 애한테 집착을 하네.. "
와이프인 선영이를 처음 만나게 된건 진호의 옆자리였다. 워낙 이쁘기도 했지만 입가에 알듯 모를듯한 미소가 번질때면,
숨이 막힐만큼 그녀에게 대책없이 빠져 들었었다. 하지만 그녀는 친한 후배의 여자였다.
진호가 술을 사 달라며 그녀와 함께 나온 날에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그 감정을 혼자서 삭혀야 했다.
주위에 있는 여자들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을만큼, 그녀를 향한 마음의 병은 깊어만 갔다.
그러던 차에 돈을 벌겠다며 이라크로 떠난 진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고, 슬픔에 빠져있는 그녀에게 접근을 할수
있었다.
위로를 한다는 핑계로 접근했지만, 실상 그녀에게 품었던 욕심 때문이었다.
꾸준히 선영이의 집을 찾게 되었고, 그런 나를 좋게 봐준 지금의 장모님으로 인해 선영이를 와이프로 삼을수 있었다.
집에다는 선영이가 애를 낳은 미혼모라는 사실을 숨기고 그녀를 취할수가 있었던 것이다.
" 나도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다, 자기 핏줄을 보겠다는데 말릴수도 없고.. "
" 고집이 보통이 아냐.. 예전에도 한번 고집을 피우면 말릴수가 없었어.. "
" 지금도 마찬가지야, 평소땐 얌전하던 사람이 왜 그러는지.. 우리집에서 알게 될까 봐 큰일이야.. "
" 나도 그래요, 선영이가 또 다시 안 좋은 일이라도 겪을까 봐 조심스러워.. "
결국 진호와는 아무런 소득도 없이 헤어져야만 했다. 그가 선영이를 붙잡으려 하는것도 아닌만큼, 더 이상 의논을 해
본들 뾰족한 수가 있을리도 없다.
답답한 마음에 술만 잔뜩 마신 꼴이 됐다. 가뜩이나 형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 이번 일로 더 심란스럽다.
" 술 마셨어? "
" 마셨지, 안 마시고는 못 배기겠더라.. "
진호와 6시에 만난다는 걸 알고 있는데 12시가 가까워 집으로 들어온 남편이다.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는지 한걸음 떨어져 있는데도 독한 술내가 진동을 한다.
" 적당히 마셔, 그러다 몸 상해.. "
" 이 까짓 몸뚱아리 망가지는게 대수냐..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지.. "
" ....얼른 씻고 자.. "
괴로워 하는 그를 지켜 보는것도 고역이다.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닌 일에 여러사람이 휘둘리고 있다.
" 선영아 ~ "
" 비켜.. 술냄새 나.. "
갑자기 쓰러지듯 껴안아 온 그에게서 역한 술 냄새가 나기에 그의 가슴을 밀쳐냈다.
" 선영아.. "
" 양치부터 해.. "
느닷없이 떠밀리고는 멍한 표정이 된 그를 보고 아차 싶었으나, 의미없는 거부였노라고 애써 모른척 해야 했다.
" 이제는 내가 싫은가 보네.. "
" 자기 술 주정 하는거야? "
" 단지 술 냄새 때문이라는 거지.. 양치질 하고 올께.. "
몸을 돌려 욕실로 향하는 남편의 뒷 모습에 서운한 감정이 가득 담긴듯 하다. 진호와의 만남으로 그의 맘도 편하지
못 했을텐데 쓸데없는 오해까지 생겼다.
" 들어가 자자구.. "
욕실에서 나온 남편이 말없이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의 뒤를 그저 묵묵히 따라야 했다.
침대에 누운 그의 곁에 누워야 했고, 내 옷을 벗기는 그를 말릴수도 없었다.
진호와의 만남에 상처를 입고 속상해 할 그에게 아무런 위로도 주지 못함이 안쓰러울 뿐이다.
진호와의 섹스 뒤에 덤벼오는 남편을 맞이하는게 벌써 두번째다. 일말의 가책은 있었으나 그를 거부할수도 없는
노릇이다.
팬티까지 벗기고는 온 몸을 돌아다니는 그의 혀놀림이 그 무엇을 탐색하고자 하는 느낌마저 든다.
그런 그의 행동을 거부감 없이 받아 줘야 했다. 죄인 아닌 죄인이 된 심정으로 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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