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유

살아가는 이유 6

바라쿠다 2012. 11. 18. 16:46

" 다음부터 이런짓 하지마.. "

" 내 딸이기도 해..   수경이한테 이 정도는 할 권리도 있고.. "

남편인 민수가 출근을 한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애를 들쳐업고는 집을 나섰다.    

수경이가 자꾸 눈에 밟혀 막연히 집에만 있을수가 없었다.    백화점에 가서 수경이가 입을 옷 몇가지와 덮고 잘 이부자리,

수경이에게 만들어 줄 불고기하고 밑반찬도 샀다.

날씨도 쌀쌀해 져 가는데 입고 있는 옷들이 시원찮아 보였고, 집안 살림도 궁색해 보여 그냥 두고 볼수만은 없었다.

한번 집에 와 봤던 터라 모범 택시를 대절해서는, 트렁크와 뒷 좌석에 쇼핑한 품목들을 싣고 왔다.

" 미련갖지 마, 민수 선배라도 알면 어쩌려구 그러냐.. "

" 자기가 수경이를 반듯하게 뒷 바라지만 한다면 내가 이러지도 않아..  자꾸 눈에 밟히는데 그럼 어쩌라구.. "

" 너한테 연락을 하지 말걸 그랬나 봐.. "

" 쓸데없는 소리 말고 수경이가 덮었던 이불이나 꺼내..  새까맣게  때가 쩔은걸 그냥 덮어주면 어떡해.. "

가뜩이나 좁은 부엌에 큼직한 고무 다라를 놓고 가루세재를 풀어 더운 물에 담궜다.

" 그건 그냥 놔 둬, 내가 빨아줄께.. "

" 그래, 그럼..  난 수경이 줄 반찬이나 만들어야겠다.. "

츄리닝으로 갈아입더니 무릎께까지 바지를 둘둘 말고는 시원스레 이불을 밟아 대지만, 절룩이는 그의 불편한 다리가 눈길을

끈다.

백화점에서 사 온 밑반찬들을 냉장고에 담고는, 수경이가 오면 먹이기 위해 불고기를 꺼내 양념을 섞어 재 놨다.

" 옛날 생각이 나네..  그 때도 힘든 빨래는 자기가 다 해 줬는데.. "

문 틀에 기대어 진호가 이불 빨래를 하는걸 보자니 옛날 기억이 떠 오른다.

" 빨래 뿐이냐, 김장도 엄마랑 내가 해 줬잖어..  니가 좀 굼뜬 편이라서.. "

" 그래, 맞어..  당신 엄마가 참 잘해 주셨어, 차가운 물 만지면 이쁜 손 다 튼다고 그러고.. "

참으로 따뜻한 분이셨다.    집안이 궁핍하고 홀어머니와 단둘이 산다며, 진호와 사귀는걸 친정 엄마가 극구 말렸지만

오히려 시어머니가 정이 많은 분이라 동거를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 지금 시댁에서는 잘 해 주지? "

" 거기랑은 틀려, 민수씨 아니었으면 결혼은 꿈도 못 꿨을거야.. "

" 왜, 시댁이 불편해? "

" 불편하다기 보다 뭐랄까..  사는 수준이 우리집이랑은 좀 틀리잖어.. "

돈이 많아 여유가 있다는건 분명 나쁜 조건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친정과는 격차가 심한 편이라, 가뜩이나 조심을 하고

사는 마당에, 엄마가 사위인 민수에게 용돈까지 욕심을 냄에 마음이 편치 못하다.

" 민수 선배만 잘하면 되지, 뭐..   애를 낳은것도 숨겨 줬다며.. "

" 그래서 더 눈치가 보여.. "

이불 빨래를 마친 진호가 물이 덜 빠진 이불을 들고는, 한쪽 다리를 쩔룩이며 마당으로 나간다.

비좁은 부엌에 있던 고무다라를 마당으로 내 놓고는, 가스렌지에 물을 끓여 우혁이에게 먹일 우유병을 끓였다.

 

" 아줌마 ~ "

마당을 가로 질러 수경이가 달려온다.

" 수경이 왔구나.. "

" 아기 왔어? "

" 응, 방에서 자고있어.. "

" 아기 구경해야지.. "

" 그래, 들어가..  내가 점심 차려줄께.. "

" 응.. "

쪼르르 방으로 들어가는 수경이의 뒷 모습을 지켜보다 고개를 돌렸다.    

물에 적셔진 이불 하나를 빨래줄에 너는 것도 힘겨워 하는 진호를 보자니 가슴이 아리다.

" 도와줄까? "

" 아냐, 다 했어.. "

" 얼른 들어와, 밥 차려줄께.. "

불고기를 후라이 팬에 지지고 냉장고에서 밑반찬들을 꺼내 점심상을 차렸다.

" 수경이, 맛있어? "

" 응, 맛있어.. "

" 뭐가 제일 맜있는데? "

" 다..  고기도 맛있고, 전부 맛있어.. "

앙증 맞은 입을 오물거리며, 이것저것 수저에 올려 주는대로 맛있게 먹는다.

먹는 모습을 보니 괜시리 짠해지는 수경이다.    어린것이 얼마나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으면, 저리도 먹는 것에 집착까지

할까 싶어 마음이 편치가 않은 것이다. 

" 큰일이다, 내가 해 줄수도 없는데.. "

" 내가 자주 올께.. "

진호로서야 수경이가 반찬 투정이라도 할까 봐 걱정을 하는게지만, 내 뱃 속에서 나온 아이가 저렇듯 맛있게 먹는걸 보는

엄마로서 또 해주고 싶은 욕심이 드는건 당연하다.

" 모르겠다, 난.. "

" 으 ~앙.. 으 ~앙.. "

곤히 자던 우혁이가 선 잠이 깨어 잠 투정을 한다.

" 아기 왜 울어? "

" 글쎄, 왜 울까.. 응가 했나 한번 볼까?   괜찮은데, 배가 고파서 우는가 보다..  수경이가 애기 우유 좀 줄래? "

" 응, 내가 줄래.. "

울고있는 우혁이를 얼러주고, 덮고있던 이불을 들추어 기저귀를 봤다.    신기한 듯 수경이가 옆에 붙어 모든걸 지켜본다.

우유병에 우유를 타서 수경이 손에 쥐어줬더니, 우혁이 입에 우유병을 물리고는 뿌둣한 표정이다.

 

" 보기는 좋다..   닮았어, 둘이.. "

우혁이 입에 젖 병을 물려주던 수경이가 졸고 있다.     진호의 눈에도 수경이가 우혁이를 이뻐하는게 흐뭇한 모양이다.

" 내가 돈 좀 마련해 볼까? "

" 돈이라니? "

" 뭐래도 해야지, 수경이를 키우려면.. "

내 손으로 거두지 못하는 수경이를 위해서라면 힘이 닿는데까지 도와주고 싶다.

" 그래서..  민수 선배한테 돈이라도 울궈내게? "

" 못할 것도 없지..  수경이를 위해서라면.. "

" 나 돈 있어..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도 있고, 내가 억류당한걸 인정해 준 정부에서 보상금도 나왔구.. "

" 근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좀 더 나은곳으로 이사가지.. "

" 뭘 해야 할지 생각중이야..   그것마저 다 써 버리면 당장 이 몸으로 할것도 없을게고.. "

"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만 수경이한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줘.. "

" 알았어..  우리 저 쪽 방으로 가자.. "

진호의 손에 이끌려 또 다시 비좁은 방으로 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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