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유

살아가는 이유 4

바라쿠다 2012. 11. 16. 10:21

" 왔어?   힘들었지.. "

" 당연하지, 그럼.. "

진호의 집으로 가는 길을 오르면서 별로 기분이 좋지 못한 선영이다.    

그도 그럴것이 어른도 걷기 힘든 언덕길 꼭대기에 진호의 집이 있었고, 그 길을 수경이가 오르내릴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할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어린 우혁이까지 등에 들쳐 업고 걸었더니 온 몸에 땀이 흐를 지경이다.   

" 밖에서 만날걸 그랬나? "

" 됐어, 물이나 한잔 줘.. "

서울에도 이런 동네가 있나 싶어 궁금했던 참인데, 막상 진호가 살고있는 집은 더욱 가관이다.

다 쓰러져감직 한 낡아버린 구조도 그러했지만, 집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나 창문들도 얼기설기 얽어논 듯한 형상이다.

뭐라고 한마디 쏟아붓고 싶었지만, 이제 막 사지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그에게 할말이 아니지 싶어 꾹 눌러 참았다.

" 수경이는? "

" 유아원에, 올 시간 됐어.. "

" 걔가 매일 이곳을 오르내리는 거야? "

" 바로 앞에까지 봉고차가 데려다 줘..   걱정할 정도는 아냐.. "

우혁이를 방바닥에 눕혀 놓고 대충 걸레를 빨아 방을 닦았다.    딸아이가 이런 곳에서 산다는게 기가 막히다.

" 아빠 ~ "

다 부서져 가는 출입문이 열리더니 수경이가 들어선다.     만 3년이 지나 만난 딸아이가 신기해 보인다.

머리를 길러 제법 여자애 티가 나고, 내 자신 어릴적 사진하고도 많이 닮았다.

" 아줌마, 누구야? "

" 응, 아빠 친구야..  인사해.. "

" 안녕하세요.. "

" 그래, 니가 수경이구나..  이쁘게 컸네.. "

가슴 깊은곳에서 설움이 북받친다.     내 귀한 자식을 이런식으로 대면해야 하는 현실이 마땅찮다.

" 어머, 애기네.. "

곤히 잠들어 있는 우혁이를 발견한 수경이가 바짝 다가앉아 눈을 떼지 못한다.

" 애기가 이뻐? "

" 응, 천사같애.. "

두 아이 모두 내 배를 아파 낳은 자식들이다.     이렇듯 자기 형제도 몰라보는 이 상황이 견딜수가 없다.

" 아빠, 배고파.. "

" 그래, 밥 먹어야지.. "

" 반찬이 뭐야? "

앉은 몸을 일으키는 진호를 올려다 봤다.    집안 행색으로 미루어 가당치 않은 식사가 나올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 김치찌개.. "

" 매일 그것만 먹이는건 아니고? "

" ........................ "

" 다시 언덕을 내려가는건 그렇고..  배달은 되지?   짜장면이라도 시켜, 탕수육하고.. "

보나마나 뻔한 내 짐작이 맞아 떨어져 심기가 불편하다.     진호가 음식을 주문하는 사이 다시 한번 수경이를 찬찬히

살펴볼수 있었다.

" 수경이 머리 누가 빗겨줬니? "

" 울 아빠가.. "

" 내가 다시 빗겨줄께.. "

남자의 손이 오죽하겠는가 싶다.    양쪽으로 빗은 가르마도 엉성하고, 매끈하게 빗질을 못해 고무줄마저 느슨하다.

내 자식의 머리를 처음 만진다는 감동이 밀려온다.    무릎위에 앉힌 수경이의 몸무게가 너무나도 가볍게 느껴진다.

눈물이 앞을 가려 빗질이 제대로 되는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수경이의 머리와 씨름을 한 덕에 그나마 깔끔해 보인다.

 

" 아빠, 나 졸려.. "

배불리 먹었음인지 연신 하품을 해 대는 수경이다.

" 수경이, 애기하고 같이 잘래? "

" 응.. "

붙임성 있는 수경이를 안아 든 사이, 진호가 삐걱거리는 옷장 안에서 때에 쩔은 이불을 꺼내 든다.

" 그 옆에 이불 깔어, 수경이가 잠들때까지 안고 있을께.. "

" ...................... "

" 앞으로 어떻게 할거야? "

" 몇가지 생각해 둔 건 있는데, 아직 결정은 못했어.. "

그새 잠이 들어버린 수경이를 우혁이 옆에 뉘였다.    둘이 나란히 자는 모습만 봐도 흐뭇해 진다.

" 이렇게 살면 안되지..  한창 잘 먹고, 뛰어 놀아야 할 나이에 이게 무슨 꼴이야..  제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

" 말이 좀 심하다..  나 한국에 온지 이제 겨우 한달이야, 그 전에는 죽고 싶었어도 못 죽었고.. "

" ..................... "

" 내가 왜 모진 목숨을 이어왔는지 아니?   너를 보고 싶은 그 일념 때문이었어..  니가 걱정 안해도 될 만큼 수경이를

키워 낼테니까 그만 신경 꺼.. "

꾀죄죄한 수경이를 보니 아무것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진호의 잘못만도 아닐진대. 그에게 상처가 될

말을 한 폭이다.

" 미안해..  수경이를 보니까 예민해 졌나 봐.. "

" 모든걸 뺏긴 기분이야..  너도, 내 인생도..  그렇다고 너한테까지 이런 수모를 받기는 싫어.. "

" 알아,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

그의 말이 구구절절이 옳을것이다.    제 딴에는 행복을 찾아 먼길을 떠났다가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온 그다.

어찌보면 나와 수경이를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보듬어 주지는 못할망정, 뼈아픈 말을 꺼내 참고있던

그의 아픔을 되새기게 한 꼴이다.

" 너만 생각하면서 그 세월을 견뎠어..  그런데도 넌 딴 사람의 여자가 됐고, 그것만으로도 힘들어..  그만 괴롭혀.. "

" 그래, 난 이기적인 년이야..  진호씨가 욕한다 해도 할말은 없지, 정말 미안해.. "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를 꾸중할 자격도 없거니와, 오히려 가난이 싫어 핏줄까지 떼어놓고 도망간 당사자는

바로 내 자신이다.    그의 서운함이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다.

 

" 부탁하나 하자.. "

" .... 무슨? "

" 너랑 자고싶어.. "

" ........................ "

" 몇년간 너만을 그리며 애를 태웠어..  지금도 니 몸 이곳저곳이 선명하게 기억이 날만큼 그렇게 견뎠어..  비록 남의

여자가 돼 버렸지만 한번 안고싶어..  안 되겠니? "

그가 겪었을 모진 시간속에서 나라는 여자가 한줄기 희망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죽은줄 알고 까맣게 잊고 지내는 동안,

그는 나를 보려고 머나 먼 사막땅에서 억울한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 줄께..  가져..  이까짓 몸뚱아리가 무에 아깝겠어..   원래가 진호씨거잖어.. "

" 저 방으로 가자.. "

수경이가 잠자는 방인듯, 안 방에 붙어있는 그 방은 사람 하나가 겨우 누울 정도로 비좁다.

주춤대며 서 있는 진호를 외면하고는 쉐타와 치마를 벗고서 천정을 바라보고 누웠다.      발 끝에 벽이 닿는다.

조심스럽게 내 위에 엎딘 진호가 젖가슴을 물어온다.     천정에 작은 전구 하나가 매달린게 보인다.

그와 처음 살을 섞었던 청평의 잔디밭에서 그를 받아 들였을때는 하늘의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처녀의 몸으로 처음 문을 열었지만, 그때는 밤하늘에 온통 폭죽이 터졌더랬다.

진호의 입 속에 젖을 물리고도 슬픔이 밀려온다.    아름다운 별을 보며 한껏 달아올라 날개짓을 했던 그때와는 달리

우중충한 천정의 도배지가 슬퍼 보인다.

그의 입 속에서 까불려지는 유두에서 희미하게 불꽃이 타기 시작하더니, 그의 손이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 민감한

그곳을 휘저음에 온 몸으로 불길이 번져간다.

" 하 ~~ 아 ~ 어~떠 ~케 ~~ "

과거의 기억대로 내 몸이 반응을 한다.    그의 머리를 감싸안고는 이어질 그의 몸짓을 애타게 기다렸다.

잠시 후,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그의 물건이 뻐근하게 밀고 들어온다.     잊은줄만 알았던 그때 그 느낌 그대로다.

" 아 ~~ 진 ~호 ~몰 ~라 ~ "

엎드린 자세로 힘차게 밀고 들어오는 그의 목을 껴안고, 두 다리를 들어 그의 엉덩이를 감은채 매달려야 했다.

그 곳에서 활활 타기 시작한 불이, 척추를 거쳐 머리까지 번지는 순간 하얗게 폭죽이 터지기 시작한다.

" 허 ~~~ 엉 ~ 자 ~갸 ~~ 흐 ~~ 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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