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유

살아가는 이유 3

바라쿠다 2012. 11. 15. 09:32

" 너, 술 마셨니? "

" 응, 한잔.. "

진호와 헤어지고, 우혁이를 찾기위해 친정에 들린 선영이다.

" 근데, 얘가..  가정주부가 조신하지 못하게시리 대낮부터 술 냄새를 풍긴다니.. "

" 나, 조신해 엄마..  그리고 그 잔소리만 그만해요.. "

그때 만약 친정 엄마가 날 끌고오지 않았더라면 진호와 이런식의 해후는 없었을 것이다.     괜한 짜증이 뱉어졌다.

" 어머나, 얘 좀 봐..  이렇게 사는게 누구 덕인데..  에구~ 자식 키워놔야 좋은소리 못 듣는다더니, 내가 딱 그 짝일세.. "

" 미안해, 엄마..   내가 요즘 예민한가 봐.. "

서둘러 엄마의 입을 막아야 했다.    저대로 방치했다간 언제까지 물고 늘어질지도 알수 없거니와, 당신의 공치사와

더불어 종내에는 눈물까지 보이고야 마는 버릇이 있다.

" 혹시, 애 들어선거야? "

" 아냐, 그런거..  그냥 피곤해서.. "

" 젊디 젊은게 피곤하기는..   그건 그렇고, 내일 모레 치영이 제대한다는데 그날 김서방이랑 같이 올거지? "

" 네, 그럴께요.. "

남매뿐인지라 어릴때부터 유독 정이 깊었다.     좀 전에 헤어진 진호와도 각별하게 지냈던 치영이다.

아빠를 닮아선지 웬만해서는 친해지기 힘들지만, 한번 마음을 준 사람과는 오래토록 돈독하게 지내는 타입이다.

졸지에 진호라는 매형을 잃고, 새로 매형이 된 민수에게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 나, 그만 갈래.. "

" 그래라..  김서방한테 고맙다고 전하구.. "

" 또 용돈 받은거유? "

" 그럼, 어쩌니..  통장으로 부쳐왔던데..  도로 돌려 보낸다는 것도 어른이 할 짓은 아니지.. "

어릴때부터 유복하게 자라온 남편이다.     시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일궈놓은 회사는 눈부신 성장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큰 아들인 아주버님이 그 회사를 맡았고 남편인 민수도 그 곳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엄마는 아니라고 하지만, 은연중 사위 덕을 보기 위한 욕심에 끔찍할 정도로 사위를 살갑게 챙긴다.

 

집으로 돌아 와 우혁이를 재우고는, 잠시 생각에 잠길 여유가 생겼다.

직접 진호를 만났는데도 아직도 어리벙벙한 기분이다.    4년여를 죽자고 사랑했고, 그의 분신까지 낳았다.

멀쩡히 살아있는 그를 죽은 사람으로 치부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은, 나름 이해가 안 될것은 아니지만 그의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일 것이다.

언제 처형을 당할지도 모르는 사막에서 나 하나만을 그리며 그 모진 고통을 견뎠다는 그 사람에게, 과연 나라는 여자는

당연히 떳떳하지 못하게 비쳐 질 것이다.

무사히 한국땅으로 돌아온 후에, 눈 앞에 펼쳐진 믿지 못할 현실에 많이 괴로워 했을 터이다.

더욱이 그 사람은 내가 낳은 딸 수경이와 함께 어렵게 살기로 작정하고, 자기를 배신한 날 위해 모든 인연을 끝내자며

오히려 나와 민수의 행복까지 빌고 갔다.

이렇듯 파렴치 한 여자가 되어 행복하게 살고자 한들 마음이 편할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다리까지 저는 불구의 몸으로, 어린 수경이까지 맡아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갈지가 걱정이다.

한참동안을 그와 수경이를 떠 올리며 고심을 한 끝에 핸폰을 집어 들었다.

~ 웬일로? ~~

" 수경이가 보고싶어.. "

~ ....그러지 마, 그냥 잊고 살어.. ~~

" 내 딸이야..  그만한 권리는 있다고 봐.. "

~ 어린애야..  걔한테 뭐라고 할건데.. ~~

" 다른 뜻은 없어..  그냥 보게만 해 줘.. "

추수가 끝난 들녘에서 짚 더미를 태우듯, 수경이를 보고싶은 마음이 활활 타 오른다.    

열달 동안 내 뱃속에서 자라 태어난 딸아이가 어찌 사는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 엄마란 소리는 하지마..  안 그래도 엄마를 많이 찾아.. ~~

" 고마워, 내일 갈께.. "

 

" 정신차려, 임마..  30억이 어디 적은 돈이냐? "

" 왜 그래, 잠시 압류중인데.. "

본가로 불려가서는 부모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형 영수한테 호된 질책을 당하는 민수다.

" 얘가 그래도..  그딴 식으로 사업을 하는게 아냐, 그 기계가 하루만 놀아도 손해가 얼만데.. "

" 곧 풀어준다고 그랬어, 내가 일부러 그런것도 아니고..  형은 왜 나만 들볶는지 모르겠네 "

20층짜리 건물을 짓는데 필요한 타워 크레인을 임대 해 줬는데, 그만 낙마 사고가 발생해 인부 하나가 죽고 말았다.

검찰의 조사가 끝날때까지 우리 회사의 중기가 압류를 당한 것이다.    사업이라는 것이 가끔 곤란에 처해 지기도 하는것

임에도 불구하고, 필요 이상으로 나를 견제하는 형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 그만들 해, 애비 앞에서 뭣들 하는 짓이냐..  형제가 다투면 되겠어?    서로가 수습책을 의논해야지.. "

" 이 녀석이 제 잘못을 모르잖아요..  아직도 우기는것 좀 보세요.. "

" 큰 애야..  아빠 말까지 안 들을 참이냐?    그만 하시라잖어..  제발 조용히 좀 살자.. "

" 오빠들 진짜 너무한다, 부모님 앞에서.. "

" 글쎄, 엄마도 민수만 끼고 돌지 마세요..  그게 쟤한테 좋은게 아닙니다.. "

아빠에 이어 엄마까지 말렸고 집안의 외동딸인 희수까지 걱정을 하고 나섰지만, 한번 울화를 터뜨린 형의 기세는 수그러 들

기미가 없다.

" 형~ 이제 그만 합시다, 이게 뭐요?    부모님 앞에서 꼭 이래야겠어? "

" 근데, 저 자식이 아직도 뉘우치지를 못하고.. "

" 엄마, 아빠..   죄송해요, 난 먼저 일어날께요..  그리고, 형..  내일 회사에서 얘기하십시다.. "

더 이상 시끄럽기 전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했다.    가뜩이나 고혈압으로 힘들어 하시는 아버지 앞이라 조심스러웠다.

 

" 오늘은 늦었네.. "

" 응, 집에 다녀오는 길이야.. "

" 왜, 형이랑 다퉜어? "

" 아냐, 저녁이나 먹자..  술도 한잔하자구.. "

가끔이지만 아주버니인 형과 다툴때가 있었다.     그런 날엔 꼭 술을 찾곤 했다.

" 또 어리광 부리려고 그러지.. "

" 어찌 알았다니.후후..  우리 색시가 이제 쪽집게가 다 됐다니까.. "

머리 회전도 빠르고, 참을성이라든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오늘처럼 밖에서 화가 난 일이 있으면, 저녁상에 반주를 올리라 하고는 나와 함께 술을 마시며 막힌 속을 풀곤 했다.

별로 재미난 얘기를 해 준 적도 없건만 깔깔거리며 즐거워 한다.    얼추 술기운이 오르면 내 무릎을 베고 싶다며 졸라댄다.

술기운 탓이겠지만 무릎을 베고 누워 이름모를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만지기도 한다.

취기가 많을때는 내 팬티까지 벗겨 내고는 그 곳에 코를 박고 잠이 들때도 있다.

신혼초에는 그런 민수에게 계면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평안한 표정으로 수면을 취하는 그를 보노라면 문득

귀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 무슨 술을 그렇게 빨리 마셔?    천천히 해, 그러다 취할라.. "

" 취하려고 마시는 술이잖어..  빨리 취해야 우리 색시 잠지 냄새도 맡지.후후.. "

취미라고 할것까지야 없겠지만, 그 곳에 코를 박고 자는 남편의 콧바람이 뜨거워 참지 못할만큼 이상해 질 때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니 점잖게 생긴 사람이 애들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는게 이상해서, 시어머니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게 아닌지 의심스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일이 여러번 계속되다 보니, 여자로서 감추고 싶은 그 곳을 유별나게 집착하려는 남편에게 아예 주도권을 줘 버린 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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