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가 수경이구나.. 너 이쁘게 생겼다, 얘.. "
" 아줌만 누구야? "
" 아빠 친구야, 아줌마하고 아저씨한테 인사해야지.. "
" 안녕하세요.. "
비닐하우스를 보기위해 수경이를 데려왔더니, 윤철이와 성희가 미리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 야~ 디지게 이쁘다.. "
" 이쁘니? "
" 응.. 이거 가질래, 아빠.. "
" 그래, 이거 전부 수경이꺼야.. "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왔더니 이쁘게 핀 서양란을 본 수경이가 감탄을 하는 중이다.
먼 길을 따라 흐르던 한강이 넓은 터를 만나, 제대로 된 강줄기를 이룬 곳이라 주변 경관이 평화뤄워 보인다.
갈대가 자라는 소롯길을 따라 얕으막한 언덕위에 조성된 비닐하우스와 소박한 이층 양옥이 그림인양 아름답다.
" 진짜? "
" 수경아, 우리 여기서 살까? "
" 응, 좋아.. "
이런 곳이라면 복잡한 서울에서처럼 아둥바둥 세파에 휩쓸리지 않아 좋을듯 싶다. 시설에 계신 어머니까지 모셔올수
있을것이다.
" 그 봐라, 수경이도 좋대지.. 여기서 자리잡아라, 동창회보에는 내가 광고를 해 줄테니까.. "
" 삼촌은 언제까지 계신다디? "
" 염려 마.. 워낙 이곳에다 애착이 많았던 양반이라 니가 익숙해 질때까지는 자주 들리실거야.. "
" 한번도 키워보지 못했는데 걱정이다.. "
" 하여간에.. 그렇게 씩씩했던 놈이 아예 걱정을 달고 사네.. 삼촌이 좋아하시더라, 니 인상이 맘에 든다고 말이야..
당신 자식같은 난들을 맡겨도 되겠단다.. "
" 그래, 해보자.. 잘 되겠지.. "
" 잘 생각했어.. 내가 볼땐 너한테 딱이야, 나중에 내 공 잊으면 안된다.. "
" 나도 광고 많이 해 줄께, 오빠.호호.. "
윤철이 말대로 손해를 볼 일은 없지 싶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리기도 여기 이상 가는 곳은 없으리란 생각이다.
" 공치사는.. 저 집이나 둘러보자, 손 댈데가 있는지는 봐야지.. "
" 별로 고칠데는 없을거야.. 삼촌이 워낙 깔끔한 양반이라.. "
비닐하우스 3동 모두가 깔끔하게 정리가 된걸로 봐서는 집안도 대동소이하다고 보여지지만, 어머니와 수경이가 거처할
곳인지라 꼼꼼하게 살펴 볼 요량이다.
아담한 이층 양옥 안마당에는 넓은 잔디가 손질 돼 있었으나, 겨울로 가는 길목이라 그런지 하얗게 변색이 되는 중이다.
현관 입구 한쪽에는 아담한 테라스가 꾸며 져, 어머니와 수경이가 햇빛을 쬐고 앉아 있어도 좋을듯 하다.
" 수경아, 우리 여기서 강아지 키울까? "
" 강아지? 내가 밥 줄래.. "
그 테라스 옆에 작은 개 집을 놓고는, 수경이를 강아지와 함께 뛰놀게 해도 안성맞춤일 듯 보인다.
현관 안으로 들어서니 제법 집 안이 넓다. 마루가 깔린 거실을 둘러싸고 안방과 주방, 뒤 뜰이 보이는 작은 방도 있다.
이층에 올랐더니 또 다른 풍경이 눈을 즐겁게 한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소롯길이 보였고 그 뒤 멀리 한강까지 보인다.
방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이 넓은 베란다인지라, 따뜻한 날에는 이곳에 머물러도 좋을만큼 아늑하다.
" 아빠, 저건 뭐야? "
탐스럽게 가지마다 열린 감이 고혹스러울만치 아름다운 색채를 자랑하고 있다.
" 응, 감나무야.. 이뻐? "
" 응, 이뻐.. "
비닐하우스를 품고 있는 얕으막한 산자락에 많은 수목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곳의 주인인 삼촌이 일부러 심어 놓은듯 어우러진 풍광이 제법 아름답다.
" 당신 요즘에 진호 안 만났어? "
" 만난지 일주일쯤 됐을걸, 왜? "
퇴근한 남편이 느닷없이 진호 얘기를 꺼내자 가슴이 철렁한 선영이다.
은연중 진호와의 만남에 의심하는 눈치를 보이곤 했던 남편이, 또 무슨 말로 들이댈까 싶어 마음을 졸이고 사는 요즘이다.
저번 토요일에 수경이를 위해 밑반찬을 싸 들고 갔었지만 진호에게서 별다른 느낌은 받지 못했었다.
" 그때 아무말 없었니?
" 뭔데 그래.. "
" 이것 좀 봐, 진호가 사업을 시작했네.. "
남편이 내민건 대학 동창회보였다. 동창회의 동향과 몇가지 활동 영역이 있는 페이지를 넘기니, 사업을 하는 동창의
광고가 있는 란에 진호의 사진과 더불어 그의 아이템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열과 성을 다 해 난과 분재를 키우고 있으니, 많은 이용을 해 달라는 요지의 광고다.
전혀 뜻하지 않은 소식을 접한 민수나 나나 생각하는 바는 틀렸을지 몰라도, 최소한 나로서는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뭔가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누누히 쪼아댄 사람이 누군데, 일언반구 의논도 없이 수경이를 데리고 떠난 폭이다.
" 다행이네, 놀고 있을수는 없겠지.. "
" 도와주고 싶었거든.. 아무런 힌트도 없이 시작할 줄은 몰랐지.. "
" 글쎄.. 진호씨가 도움을 받겠대? "
진호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무지한 남편이다. 도움을 주겠다는 이유가 뭔지는 알 필요도 없겠지만, 진호가 넙죽 도움을
받을 사람이 아님을 모르고 있다.
비록 학창시절에 몇번인가 술 값을 구걸하긴 했지만, 그 때와 지금의 현실은 전혀 별개인 것이다.
가뜩이나 나라는 여자를, 민수한테 도둑 맞은걸로 생각하는 진호에게 도움 운운하는 자체가 말도 안되는 노릇이다.
" 서로 도우면 좋잖어, 뭘 그런걸 따진데.. "
" 참, 그렇게도 눈치가 없을까.. 입장을 바꿔 봐, 당신같으면 도움을 받겠어? 날 당신한테 뺏겼다고 생각할텐데.. "
" 그런가.. 난 그냥 좋은뜻으로 돕고 싶었을 뿐인데.. "
" 그러니까 그게 말이 안된다구, 괜히 불쌍한 사람 자존심이나 건드리는 꼴이지.. "
" 어렵다, 어려워.. "
" 우리 세사람 입장이 모두 어렵게 된거야.. "
" 글쎄 말이다, 도움이 됐으면 했는데.. "
" 그냥 놔 두는게 돕는건지도 몰라.. 괜히 들쑤시지 말고.. "
그나마 멀지 않은 탓에 수경이 얼굴을 자주 볼수가 있었는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먼 곳으로 이사를 간 진호가 야속하다.
그가 타지에서 죽었다는 비보를 듣고는, 많은 시간 눈물과 회한으로 보내야 했다.
젖을 물려야 하는 어린 자식을 떼어놓고, 한시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했던 지난 날이다.
이제서야 그 아픔을 조금씩이나마 가라앉히고 있었는데, 무심한 진호는 멀리 떠나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동생 치영이를 앞세워서라도 새로 이사간 그 곳을 찾아 볼 작정이다.
그 전처럼 자주 갈수도 없는 먼 거리인지라, 수경이에게 먹일 밑반찬을 많이 준비할 생각까지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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