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왔어, 오빠.. 수경이 안녕? "
" 웬일이야? "
" 웬일은 오빠가 보고 싶어서 왔지.. "
비닐하우스 안에서 수경이와 난을 돌보는 진호를 보니 제법 평화로워 보인다.
" 아줌마도 안녕, 나도 아빠 도우는거야.. "
" 그래, 수경이가 제법이네.. "
" 윤철이랑 같이 온거야? "
" 아냐, 그냥 놀러왔어.. "
비닐하우스가 제법 넓어 온갖 살림살이가 가득하다. 겉에서 보기엔 그저 비닐 천막을 쳐 놓은듯, 무덤덤하게 봤지만
안으로 들어오니 연탄 난로를 피워서 그런지 훈기가 넘친다.
입구 안쪽에는 샷시로 벽을 세워 방 한칸이 만들어 져 있고, 그 안에는 냉장고며 TV까지 놓여있다.
" 여기서 잠도 자나 봐.. "
" 아냐, 잠은 집에서 자야지.. 어머니도 오셨는데.. "
" 어머.. 어머니 뵌지도 오래됐는데.. 건강하시지? "
예전에 진호와 선영이가 동거를 했을때 몇번 뵌 적이 있다. 참으로 온화한 성격인 그 분이 갈때마다 반겨 주셨다.
" 안 좋으셔.. 워낙 젊을때부터 고생을 하셔서 그런지, 거동도 잘 못하시고.. "
" 저런.. 이따가 한번 뵙고 가야겠다.. "
" 근데, 애 엄마가 시간이 많은가 보다.. 이렇게 멀리까지 다니고.. "
" ....나 이혼했어, 오빠.. "
대학 4 년 내내 누구에게도 내 비치지 않았지만, 남몰래 진호를 짝사랑했던 성희였다.
신입생 시절부터 친구인 선영이가 그의 옆에 붙어 있었지만, 쉽게 포기를 못하고 가슴앓이를 했더랬다.
진호가 2년 선배였지만, 그 당시도 집안이 어려웠던 진호는 일찍 군에 다녀와 같은 학년이었다.
선영이가 임신을 하고 진호의 집으로 들어간 뒤에야, 집안 소개로 만난 사람과 서둘러 혼인을 했다.
" 어쩌다가.. 잘 살지 그랬누.. "
" 그러게 말야.. 할 일도 없는데 여기와서 난이나 키울까보다.호호.. "
" 에그 좋기도 하겠다.. 웃음이 나오냐? "
" 이래도 한 세상이고, 저래도 한 세상이래.. 꽃들이 이쁘니까 재밌겠네.. "
각박한 도시 생활보다는, 서로간에 잘난척 할 필요가 없는 이 곳이 더 인간미가 넘쳐 보인다.
이곳에서는 배우자의 능력을 따지지 않아도 될 것이고, 남들에게 뒤쳐질까 봐 속상하지도 않을것이다.
" 보기보다 어렵더라, 난이라는게 하도 예민해서 신경써야 할게 한두가지가 아냐.. "
" 이 묘판을 저리로 옮기나 보지? "
" 그래.. 이따가 밥이나 먹고 가.. "
마음씨가 따뜻한 진호와 함께라면 새로운 삶을 시작해도 좋을듯 싶다.
" 뭐가 이렇게 많어? "
" 밑반찬 좀 했어.. "
듣기로는 교통수단도 신톻치 못하다고 하기에, 치영이에게 승용차를 가지고 오라고 한 선영이다.
오전 내내 수경이한테 줄 밑반찬을 준비하고, 애한테 입힐 겨울옷도 몇가지 사 놨다.
" 거기 찾아가는걸 매형이 싫어할텐데.. "
" 상관없어, 몇번 다녀온 것도 알고 있어.. "
" 주소 좀 불러 봐, 네비 찍어야지.. "
" 여기.. 회보 맨 뒷장에 나와 있을거야.. "
백화점에도 다녀오고, 밑반찬을 준비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났다. 되도록이면 남편이 집에 들어오기 전에 다녀와야
할텐데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가뜩이나 외지로 빠지는 차들이 많은 토요일인지라 교통 체증이 심하다.
" 매형 성격이 차분해서 어울려 보여.. "
" 모르겠다, 그걸로 수경이를 제대로 키울런지.. "
농사일이라곤 해 보지도 않은 사람이, 어찌 난초를 키우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
더군다나 어린 수경이마저 천덕꾸러기 같은 시골 아이로 자라지 싶어 마음마저 편치가 않다.
" 누나도, 참.. 요즘엔 일부러 시골로 귀농하는 세상이야, 솔직이 나도 서울이 싫어.. "
" 수경이는 어린애야, 아직도 엄마 품에 있을 나이라고.. "
수경이를 다시 만난 날, 머리 하나 제대로 빗겨 주질 못해 가뜩이나 꼬질스러워 보였는데, 진호와 시골에서 산다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리는 중이다.
" 그냥 믿어 봐.. 매형도 생각이 있겠지.. "
" 니가 직접 보지 않아서 그래.. 더군다나 매형은 다리도 불편하잖어.. "
" 예전엔 축구도 잘 했는데.. 누나도 알지? 과대항 축구 시합에서 매형이 결승골을 넣었잖어.. "
" 그 얘기는.. 아직 멀었어? "
치영이로 인해 다시금 진호와의 그 시절이 떠 오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붙어 다니던 cc로 주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 다 왔어, 저 쪽 길로 들어가는 모양이네.. "
" 아니, 쟤가 누구야? "
" 누구.. "
" 아냐, 내가 잘못 봤나 봐.. "
소롯길로 접어 들면서 방금 차 옆으로 스치고 지나간 여자가, 예전 대학 친구였던 성희와 많이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좌우로 밭들이 있는 사이길을 지나자, 이층 양옥집 한채와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 매형.. 오랜만이네.. "
" 제대 했다며.. 좋아보인다.. "
" 수경이 잘 있었니? "
" 아줌마, 왔네.. "
하우스 앞에 있던 어린 수경이의 손에 작은 프라스틱 화분 하나가 들려 져 있다.
" 기껏 한다는게 농사일이야? "
" 얘기는 어딨어? "
" 차 안에서 코 자는 중이야.. "
" 아줌마, 이리 와 봐.. 꽃이 디게 이뻐.. "
조르듯 매달리는 수경이에게 이끌려 비닐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진호와 치영이는 오랜만에 만나 할 얘기가 많은 듯, 한쪽에서 담배를 피워물고 있다.
넓은 하우스 안에 각종 난초들의 묘종이 가득 진열돼 있다. 수경이 말대로 노란 서양란의 꽃대가 올라오는 중이다.
" 아빠가 강아지도 사 준대.. "
" 아줌마랑 같이 사러 가면 어떨까.. "
강아지라면 수경이의 정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수경이한테 해 줄수 있는거라면 뭐든지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 언제 갈건데.. "
" 음.. 이틀밤만 자고 가자.. "
" 어딜 간다는거야? "
밖에서 얘기중이던 진호와 치영이가 하우스 안으로 들어왔다.
" 수경이 강아지 사 주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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