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삶의 무게 17

바라쿠다 2012. 11. 21. 13:15

" 무슨 맛이야? "

아직도 욕실 바닥에 누워있는 윤수를 내려다 봤다.    더러운 오줌을 맛있게도 받아 마시는 그 느낌이 궁금하다.

" 맛있어, 냄새도 안 나고.. "

" 나까지 이상해, 에이~ 변태.. "

" 뭐가?  수진이가 이뻐서 그러는건데.후후.. "

" 빨리 양치나 해, 나 하고 싶어.. "

세면대 거울을 들여다보며 양치질하는 윤수를 놔 두고는 안방의 침대에 몸을 눕힌 수진이다.

불과 두어달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루하루 편의점 알바를 하며 근근히 버티던 때가 엊그제 같건만, 비록

임대이긴 하더라도 내 이름으로 된 아파트의 번듯한 침대에 누워있다.

새삼 윤수가 고마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인데, 자꾸 엉뚱한 짓만 시키는 그의 정신세계가 궁금한 참이다.

" 자기는 안 씻어? "

" 술이 취해서 그런지 다 귀찮어, 옷이나 벗겨 줘.. "

이렇듯 당연하게 부려먹게 되는것도 따지고 보면 윤수의 잘못이다.   

많은 도움을 준 윤수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지어 먹이고, 그의 어깨라도 주물러 주고 싶은데 한사코 짖궃은 짓만 시키려

든다.

" 윤수야.. "

" 응? "

" 진짜로 궁금해서 그러는건데..  내가 자기를 무시하는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어? "

츄리닝 바지를 벗기고 팬티를 끌어 내리는 그를 위해 엉덩이까지 들어줘야 했다.

" 왜, 이상해? "

" 이상한 정도가 아니지..  나이 많은 너랑 친구로 지내는 것도 미안해 죽겠는데, 동생도 모자라 노예 노릇까지 하니까

자꾸만 니가 만만하잖어.. "

" 내가 좋아서 그러는거야..  그냥 수진이를 안는것보다 그런게 더 짜릿하니 어쩌겠어, 편하게 생각해.. "

" 나중에 딴소리 하기 없기야..  그렇게 안 봤는데 버릇이 없다는 둥, 지 멋대로 군다는 둥.. "

" 그런일 없어, 맘 놔도 돼.. "

윤수가 너무 편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막 대하는 것도 문제다.    완전히 나만의 소유물인양, 그의 기분은 상관할 바 없이 

진짜 하인처럼 부려먹게 된다.

" 저기, 근데.. "

" 왜, 또.. "

" 요즘 자꾸 귀찮게 하는 애가 있는데.. "

" 누가, 남자애가? "

" 응..  시간 좀 내 달라네.. "

요 근래 백천이에게서 몇번인가 핸폰이 와서는, 편의점에서 얼굴을 볼수 없다며 한번만 만나 달란다.    

내가 먼저 만나고는 싶었지만, 할머니가 병원에 있었고 윤수랑 이사하는 문제로 바빠 시간을 낼 틈이 없었다.

" 뭐하는 친군데.. "

" 그냥 우체국 임시직이래.. "

" 잘 생겼어? "

" 응, 쪼끔.. "

그 전에도 남자가 생기면 만나라고 했던 기억이 있어, 윤수에게 털어놓기로 했다.

" 그럼, 만나 봐야지..  우리 수진이가 맘에 든다는데.. "

" 진짜? "

" 응, 진짜.. "

" 그러다 걔가 좋아지면.. "

" 할수없지, 뭐..  너랑 나랑은 거기까지니까..  대신 좋은 놈으로 골라.. "

" 나, 시집가도 괜찮어? "

" 그럼, 시집가야지..  내 욕심땜에 니 앞길을 막으면 되겠어? "

" 진짜 만난다~  질투하면 안 돼.. "

" 질투야 당연히 나지, 나보다 젊고 잘 생겼을테니까..  하지만 수진이 앞날이 걸린거니까 참아야지, 별수있나.. "

윤수의 마음이 들여다 보인다.    별로 이쁘지도 않은 나를 아끼려는 그의 진심이 속속들이 보인다.

" 윤수야.. "

" 응? "

" 해 줘..  나, 하고 싶어.. "

 

" 여기야? "

" 응, 지금은 이래도 25층 건물이 들어설거야.. "

건설 현장을 직접 보여 주겠다는 영철이와 함께 당산동에 온 미숙이다.

제법 넓은 대지 주위에 펜스를 쳐 놓고, 그 안쪽에서는 땅을 파낸 흙을 실은 덤프 트럭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 25층이나? "

" 그렇다니까, 건물 짓는데만 2년이 걸려..  이따가 현장 소장하고 만나기로 했으니까 옆에서 얘기나 들어보라구.. "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돈벌이라 여겨진다.    3,000만원을 투자해서 월 300만원이 나오면, 그걸 절반씩 나누자고

했다.   

확실하기만 하다면 지게차 하나를 더 사도 되지 싶다.

" 또 다른건 없어? "

" 욕심은..  있기야 하지만 나한테 떨어진건 지게차 뿐이야, 그것만 제대로 잘하면 다른 현장도 소개를 시켜준다고 했어.. "

" 열심히 해 봐..  자기만 잘하면 내가 또 밀어줄테니까.. "

사촌 동생이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어 그에게도 자문을 구했더랬다.     영철이만을 믿기에는 미덥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현장인지 동생이 알아 봐 주겠다고까지 했으니 돈을 떼일 염려는 없을것이다.

영철이의 말대로 정기적인 수입이 생긴다면, 그의 바램대로 새 살림을 차려도 무방하지 싶다.

" 믿어, 나도 다시 일어나야지.. "

" 그래, 자긴 아직 젊으니까 될거야.. "

" 그만 가자..  약속 시간 다 됐어.. "

활기차게 돌아가는 현장을 지켜보자니, 은근히 배가 부른듯 뿌듯해 진다.

 

" 언제 온대? "

" 금방 올거야, 월급은 얼마나 줄건데.. "

" 하는거 봐서.. "

이틀후에 PC방 영업을 시작하기에, 알바 하나를 정호에게 소개시키기로 했다.

그와 더불어 같이 장사를 하기로 했지만, 워낙 가게가 넓은탓에 일손이 딸리는 것이다.

" 한 170은 줘야 할거야.. "

" 나이가  21라며? "

" 응, 엄마 친구 아들이야.. "

정호에게는 거짓말로 둘러대야만 했다.    어릴때부터 이웃에 살긴 했지만, 죽자고 내 꽁무니를 따라 다녔던 녀석이다.

두살이나 어린 기식이가, 누나를 좋아한다며 고백을 했을때는 코웃음을 쳤더랬다.

여고에 입학해서 상급생 남자애들만 눈에 들어올때인지라,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기식이는 코흘리개로 보일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여고를 졸업하고, 기식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때 몰라보게 성장한 그를 다시금 보게 됐다.

그만큼 훤칠하고 남자답게 변한 그녀석 주위로는, 꽤 괜찮아 보이는 여자애들이 주변에 서성거리기도 했다.

집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던 기식이를 모르는 척 누나로 받아주다가, 같이 술을 마신 어느날 녀석의 총각 딱지를 떼 준

기억까지 있는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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