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삶의 무게 15

바라쿠다 2012. 11. 19. 10:18

" 어때? "

" 제법 쓸만하네..  언제 오픈할거야? "

PC방을 인수했다며 가게를 보러가자는 정호를 따라 온 미영이다.

별 기대없이 그저 그러려니 와 본 턱인데, 제법 평수도 크고 손님들도 많다.

" 일단 인테리어부터 해야지, 한 보름 정도면 되지 싶어.. "

" 인테리어를 왜 하는데.. "

" 좀 산뜻하게 분위기를 바꿔야지..  너무 우중충하잖어.. "

" 너, 미쳤구나? "

" 미치다니, 내가 왜? "

" 배고파..  밥이나 먹으러 가자.. "

이 정도 크기면 쓸만하지 싶다.     어줍잖게 PC 몇개 없는 규모일까 봐 심드렁 했었는데, 족히 100여평이 넘어 보이는

크기에 휴게실까지 갖춘 만큼 다른 곳과 비교해 꿀릴정도는 아닌지라 은근 욕심이 난다.

" 뭐 먹을래? "

" 그냥 아무거나 시켜, 국물 있는걸로.. "

근처 시장통 입구에 있는 한식집으로 들어섰다.     점심 시간이라 손님들로 만원이다.

" 속이 쓰린 모양이지?  하기야 그렇게 빨아댔으니.. " 

" 이제 늙었나 봐, 술 빨이 안 받네.호호.. "

저 정도 크기면 당분간 정호의 하는 양을 지켜보면서 수지타산을 저울질 해 봐도 좋음직 하다.    

처음 만난날부터 돈 귀한줄 모르고, 멋대로 써 대는 정호를 그대로 나 둬선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 에구~ 나이가 많아 좋으시겠어요..  쬐그만게 벌써부터.. "

" 가게 세가 얼마야? "

" 200, 왜? "

" 지금 매상이 얼마래? "

" 평균 3 ~40 된다지, 아마.. "

" 한달 수입 1,000만원이면 가게세 200에다 전기료하고 이것저것 제하면 한 4 ~500 남겠네.. "

" 야~ 어찌 그걸 단박에 안다니..  지금 주인도 그 정도는 떨어 질거라던데.. "

친구인 영숙이가 제 신랑하고 PC방을 하고 있기에 눈여겨 본 탓도 있지만, 소소하게 이자 놀이를 하는 엄마를 보고

자란덕에 어릴때부터 돈에 대한 계산은 남들보다 빠른 편이다.

더군다나 영숙이네 가게보다 규모가 큰 만큼, 평소 우쭐대던 그 년한테 과시할수도 있을 것이다.

" 가게 수리하지 말고 그냥 영업 해.. "

" 왜.. 가게가 너무 후지잖어.. "

" 보름동안 수리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겠지만, 그동안 가게 수입은 한푼도 못 건지잖어..  지금도 잘 되고 있는데 뭣하러

돈을 버리냐?    영업하면서 조금씩 수리하면 되지.. "

돈에 대한 개념이 없는 정호를 손아귀에 쥐고 관리를 할 작정이다.    나이만 4살이 많을 뿐 철닥서니 없는 정호를,

단단히 고삐를 죄어 내 맘대로 흔들어야만 한다.

" 그런가? "

" 당근이지.. "

" 근데, 미영아..  너, 우리 엄마 만나볼래? "

" 니네 엄마는 왜? "

 

" 너무 썰렁해 보인다.. "

" 원래 아무것도 없었잖어.. "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윤수인지라, 이곳저곳 알아 본 덕에 마침 이사를 간다는 임대 아파트가 있어 서둘러 이사를 했다.

할머니와 둘 뿐인지라 구청에 기초생활 수급자로 등록이 돼 있는 만큼, 윤수가 내 이름으로 아파트에 입주를 할수 있게끔

모든 서류를 준비 해 줬다.   

그 덕분에 30년간 이 곳에서 걱정없이 살수 있다고 했고, 부담없는 월세도 맘에 든다.

" 같이 나가자.. "

" 어딜? "

" 잠깐 기다려 봐.. "

거실이며 베란다를 오가면서 줄자로 치수를 재더니 메모지에 옮긴다.

" 우선 몇가지만이라도 사자구.. "

윤수가 뭘 하려는지 짐작이 되기에 고마운 마음으로 따라 나섰다.

" 어때? "

" 글쎄.. 너무 크지 않나? "

전자 제품 매장에 들려 거실에 놓을 TV와 세탁기, 지금껏 쓰던 작은 냉장고도 버리라면서 큰 것으로 바꿨다.

집안 살림을 전부 마련하다시피 하는 윤수에게 미안해 하던 참에, 가구 매장으로 와서는 주방에 놓을 작은 식탁도 사고

침대까지 고르는 중이다.

" 이게 뭐가 커, 더블 싸이즌데..  그냥 이걸로 사.. "

" 알아서 해.. "

그가 하는대로 그저 지켜볼수 밖에 없었다.    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그토록 부러워 했던, 침대와 전자 제품을 모두 장만해

주는 윤수가 고마울 뿐이다.

" 저리로 가 보자.. "

" 또? "

" 창문에 커튼은 달아야지, 변변한 이불도 없고.. "

" 아파트로 이사를 한다고 좋아했더니 돈 들어갈 일이 많네.. "

" 아직도 세세하게 살게 많어..  두고 봐, 자주 와야 할테니까.. "

딸보다 어린 나에게 빠져 마치 애들처럼 재롱도 떨고, 내 가랑이 사이에 코를 박고 좋아라 하는걸 볼때면 영락없는

철부지 같다가도, 오늘처럼 꼼꼼하게 챙겨 줄때는 마치 돌아가신 아빠같아 든든하다.

" 가만있자, 벌써 4시가 넘었네..  빨리 가자, 물건 배달 올 시간이야.. "

 

비록 방이 두개뿐인 임대 아파트지만 전에 살던 집과는 비교가 안 된다.

현관을 들어서면 난생 처음으로 접하는 거실이란 것이 훤하니 아늑해 보이고, 그 전 집에는 없던 화장실 겸 욕실이

깔끔스러워 뿌듯하다.

아파트가 12층인지라, 베란다로 나서면 저 멀리 여의도 63빌딩까지 보인다.

" 윤수야, 나 배고파.. "

" 오늘은 그냥 시켜 먹자구.. "

" 뭐 먹을까? "

" 밥 없지? "

" 응.. "

" 갈비찜 시켜먹자, 소주도 가져 오라 하고.. "

저녁이 되어 거실이며 주방에 전등을 켜니 분위기는 아늑하다.

그 전처럼 연탄불을 피워 방바닥을 덥힐 필요없이, 보일러 온도를 올리는 것 만으로 집안에 훈기가 돈다. 

" 할머니 퇴원이 언제지? "

" 일주일 뒤.. "

" 그 동안 같이 지내도 되겠네.후후.. "

" 그렇게 좋아? "

" 당근이지, 수진이랑 단 둘이 있는데.. "

아빠처럼 의지가 되던 그가 철부지 애들로 돌아 올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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