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남자

숨겨진 남자 43

바라쿠다 2012. 11. 19. 14:51

인큐베에터에 있는 애기 때문이라도 며칠 더 병원에 있어야 했지만, 둘이 있는 꼴은 못 보겠다는 정희의 말에 따라 선희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와야 했다.

창고로 쓰는 방을 대충 치우고, 선희가 머물수 있게끔 작은 옷장 하나와 이불을 들여다 놨다.

선희의 건강을 위해 옆에서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았지만, 정희가 옆에서 감시아닌 감시를 했기에 그마저 용이치

못했다.

일찍 가게로 나가 장사준비를 하던 패턴이 바뀌어, 나를 대신 가게로 내 보내고는 자신이 선희를 돌보는 역할을 자청했다.

어느덧 한달이 지나서야 애기를 병원에서 데려올수 있었다.    집에 온 이후 처음으로 선희가 밝은 미소를 보인 날이다.

처음엔 의아해 하던 선우도 갓난 애기를 본 뒤부터는 호기심이 생겨서인지 선희의 방을 기웃거리곤 했다.

" 준호씨, 안녕.. "

" 네, 일찍 오셨네요.. "

선희가 집에 온 뒤, 며칠이 지나 연숙이 언니까지도 그 간의 사정을 알게 됐다.    

" 준호씨는 좋겠다, 나 같으면 어림도 없을텐데.. "

" 뭐가요? "

가끔씩 쳐다보는 눈길에서 장난스런 느낌을 받았더랬다.     그런 느낌이 싫었지만 달리 대처할 방안도 없다.

" 몰라서 물어?    정희가 대신 산받이까지 하잖어..   걔 속이 어떻겠어? "

" 누가 하라고 했나, 같이 있는게 보기 싫으니까 그러는거지.. "

" 당연하지, 그런 꼴을 보고싶은 여자가 어딨겠어..   그나마 정희가 애를 가졌으니까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는 거야.. "

" 몸만 추스리면 떠난다고 했어요.. "

" 그렇게 안 봤는데 준호씨도 보통 응큼한게 아닌가 봐.. "

닭을 손질하느라 바쁜데 자꾸 말을 시키는 통에 여간 성가신게 아니다.

" 또 뭐가요? "

" 그렇잖어, 정희뿐이라고 할땐 언제고, 다른 여자를 꼬신걸 보면.. "

" 그게 아니라니까요.. "

그 간의 사정을 설명하기가 귀찮기도 하려니와, 그녀의 호기심 어린 댓거리마저 부담스럽다.

" 솔직하게 얘기해 봐.. "

" 뭘요.. "

" 누가 더 좋았어? "

" 몰라요.. "

눈치없이 궁금해 하는 그녀의 짓거리에 점점 부아가 치민다.    손질하던 닭을 내팽개치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 준호씨 팔짜도, 참..  만나는 여자마다 연상이냐.호호.. "

" 그만 놀려요.. "

 

모든 장사 준비가 끝이 나자 정희가 가게로 들어선다.    

요즘 들어 정희와 준호간의 감정 변화를 읽는 것에 재미가 붙은 연숙이다.

" 왔니? "

" 응, 언니..  이제 그만하고 들어가, 작은방엔 얼씬도 말고.. "

" 네.. "

" 선우한테 다 물어볼거야.. "

" 알았다니까요.. "

서슬이 퍼런 정희의 눈치를 살피는 준호가 귀엽게 보인다.   엄마한테 혼이 난 아들처럼 입이 댓발이나 나와 가게를 나선다.

" 웃긴다, 얘..  남자라고 할건 다 하네.호호.. "

" 언니도 참, 이게 웃을 일이유? "

" 그럼, 웃어야지 울까.. "

" 심란해 죽겠어, 못되게 굴고 싶은데 막상 그 여자를 보면 안됐단 생각도 들고.. "

어쩌다 어린 남자에게 마음을 주게 된 정희도, 평범한 삶을 살기에는 타고난 팔자가 허락치 않는지도 모른다.

" 같이 살면 되겠네.. 큰 마누라, 작은 마누라.호호.. "

" 언니 ~ "

속이 타는거야 당사자인 정희를 따라갈 사람은 없을것이다.     준호나, 집에 들어와 몸을 풀고 있는 그 여자도 힘들기야

하겠지만, 씨앗을 본 두 남녀를 지켜봐야 하는 고통은 이해조차 어려울 것이다.

" 그 여자가 몸만 풀면 떠나겠다고 했다지만, 준호씨 마음이 불편할 거라는건 뻔한 이치 아니니..   그래서 니가 그 여자를

데리고 들어온거잖어..   갓난애기하고 그 여자를 생이별 시키는 일도 힘들겠지만, 니가 대신 키울수도 없는 노릇이고.. " 

" 언니도 참,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것도 아니고.. "

 

" 선우야 밥먹자.. "

" 응, 삼촌..  애기가 되게 이쁘더라.. "

" 그래.. "

정희가 미리 만들어 놓은 미역국과 된장찌게를 식탁에 올렸다.

" 우리 애기보러 가자.. "

" 안돼, 엄마가 저 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잖아.. "

" 에이~ 엄마 모르게 하면 되지, 삼촌은.. "

안 그래도 선희와 애기를 보고싶은 생각이 굴뚝같던 준호다.    어린 선우의 사탕발림에 은근히 마음이 기운다.

"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

" 내가 어린앤가,약속 하나는 잘 지켜.. "

" 그러자, 그럼..  잠깐만 보고 나오기다.. "

선우를 앞세우고 선희가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기면서도 두 모녀를 볼 마음에 조바심마저 인다.

 

" 뭐 필요한거 없어요? "

한집에 살면서도 준호의 얼굴을 오랜만에 마주하는 선희다.   

가끔씩이나마 흘깃거렸을 뿐, 준호 역시도 마음대로 이 방에 드나들지 못하는 눈치다.

" 빨리나가, 애 엄마한테 경을 치려구.. "

" 얘가 비밀을 지켜준대요.. "

" 맞아요, 아줌마..  우리 엄마 절대 몰라요.. "

" 그래도.. "

준호를 보고싶은 마음이야 이루 말로 다 할수 없었다.    

나 홀로 이 세상에 던져 진 것처럼 그렇게 막연하게 의미없는 세월을 보낼 즈음, 애뜻하게 감싸주는 준호를 만나 잠시나마

여자로서의 행복마저 느꼈다.    여지껏 그토록 감미로운 감정은 처음이었다.

그래서는 안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의 분신을 뱃 속에 담아두고 기실 준호를 그리워 했었다.

어쩔수 없이 준호에게 연락을 한 꼴이 됐지만, 그의 얼굴을 보는순간 알수없는 그리움에 목이 메었다.

" 먹고 싶은거 있으면 얘기해요, 내가 만들어 줄께.. "

" 아냐, 괜찮어.. "

" 에이~ 해 주고 싶은데.. "

준호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벌써 배가 부르다.    몸을 추스려 이 집을 나가게 되면,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그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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