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남자

숨겨진 남자 40

바라쿠다 2012. 11. 14. 10:59

" 오늘 또 혼자야? "

" 병원 갔어요.. "

연숙씨가 출근하자마자 입을 삐죽인다.     정희가 임신 3개월째라 산부인과에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간 것이다.

" 잘한다~  벌써 3개월인데 오죽이나 잘 있을까 봐, 툭하면 빠지냐.. "

" 금방 온다고 했어요.. "

" 제부, 제발 좀 적당히 해..  피곤해 보인다고 나오지 못하게 하질 않나, 산부인과에 간다고 빠지질 않나..  왜 나만 고생을

해야 하는데.. "

" 닭 손질은 다 해 놨어요.후후.. "

" 하이고~ 저렇게나 좋을까..  아주 입이 다물어 지질 않네.. "

" 당근 좋죠.후후..   얼마나 이쁜지 몰라요.. "

" 준호씨 애기를 가져서겠지.호호.. "

두어달 전 임신이 됐다는 그녀의 얘기를 듣고는 구름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어릴적 철이 없는 시절부터 맘 속에 담았던

여인이다.    남녀간의 애정조차 모르던 시절이었다.   

우연히 재회를 하고,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할만큼 그녀에게 빠져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선우와 셋이서 같이 지낼수 있는 행운까지 찾아왔다.     더불어 임신까지 했으니 그 기분이야 무엇과도

바꿀수 없을만큼 소중할수 밖에 없다.

" 근데, 저기..  언제부터 배가 불러요? "

" 아직 멀었어..  5개월은 넘어야 조금씩 태가 나지..  왜, 벌써부터 부른 배가 보고싶어? "

" 네, 이쁠것 같아요.. "

" 에구~ 요즘엔 딸바보란 말이 유행이라더니, 준호는 완죤히 색시바보야.호호.. "

" 바보래도 좋아요.후후.. "

" 에이그, 저런.. "

그녀의 모든것이 신기해 보인다.    걸음걸이며 밥을 먹을때 오물거리는 거라든지, 심지어 양치를 하는 모습까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앞으로 불러가는 그녀의 배를 관찰하는 것도 재밌을 성 싶다.

오고가며 유아용품을 파는 가게를 기웃거리게 된다.    앙증맞은 신발과 나비 모양의 모빌이 눈길을 끈다.

 

" 이제 그만 들어가야지.. "

" 응, 삼촌..  엄마는 늦는가보다.. "

선우에게 저녁을 챙겨주고 같이 장난감을 조립했다.    

" 그래, 그렇겠지.. "

" 참, 오늘이 금요일이잖어, 손님이 많을거야.. "

호프집을 차린지 오래 지나지 않아 어린 선우까지 가게일을 궤뚫고 있다.

" 별걸 다 아네.후후.. "

" 나 먼저 잘거야..  삼촌도 잘 자.. "

" 응, 들어가.. "

선우를 볼때마다 가슴이 먹먹하곤 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것이 뭘 안다고, 못 마땅한 정희한테 쏟아야 할 불만을

어린 선우에게 대신 퍼 붓는 전 남편이란 작자를 지켜보면서 울분을 삭혀야 했다.

물론 정희가 끔찍이 끼고 돌긴 했지만, 어른들의 틈바구니에서 어찌 처신을 해야할지 몰라 주눅이 들어있는 선우를 보면

안타깝기만 했다.

정희가 이쁘면 그 자식인 선우도 당연히 이뻐야 하거늘, 다른 남자의 자식이란 이유로 그토록 홀대를 하는지 같은 남자의

입장에선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얼굴에 항시 그늘이 졌던 선우가, 다행히 자신을 많이 따르는것 같아 저으기 안심이 되는중이다.

앞으로 태어날 애기와도 정을 붙이게 되면, 메말랐던 선우의 정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제 엄마외엔 정을 붙이지 못했던 선우에게 좀 더 살갑게 굴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 누구? "

주방에서 선우와 같이 저녁을 먹은 잔해를 정리중인데 핸폰이 울렸다.

~ 김준호씨? ~~

" 네, 맞습니다.. "

모르는 여자 목소리였다.     잠시 갸우뚱 했지만 처음 듣는 목소리다.

~ 여기 병원인데요, 이선희씨 아시죠? ~~

" ....네.. "

~ 이선희씨가 많이 아파요..  애기는 인큐베이터에 있고.. ~~

" 거기 어디죠? "

허겁지겁 집을 나서야 했다.    그 여리고 여린 사람이 애기를 낳을 생각으로 자신을 떠났을거란 짐작이 들 뿐이다.

산부인과 전문의 개인 병원이었다.    병원이 서울대 근처인걸 보면, 예전에 혼자 살던 고시촌 부근이다.

자신의 친구한테 간다며 안심하라고 했건만,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으리라 보여진다.

" 상태가 좋지 않아요..  산모나 애기나.. "

" 얼마나..  어디가.. "

50은 족히 넘어보이는 여의사가 뿔테 안경을 밀어 올리며 신경질적인 반응이다.

" 그렇게 몸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를 했는데.. "

" 얼마나 아프냐고요? "

순간적으로 목소리가 커졌던 모양이다.    놀란 표정의 의사가 다시금 안경을 만지작 거린다.

의사로서는 혹, 있을지도 모르는 의료사고 때문에 걱정도 되겠지만, 선희의 안위가 궁금한 나로서는 구차한 그간의

경위보다는, 지금의 상황이 듣고 싶을 뿐이다.

" 9개월만에 애가 나왔으니 당연히 힘들수밖에..  영양 상태도 엉망이고, 애기도 2kg가 안되니.. "

" 지금 봐도 되겠죠? "

" 링겔 꽂고 자니까 조용히 지켜만 봐요.. "

 

쪽방보다는 조금 큰 방에서 링겔을 꽂은채 잠들어 있다.   가뜩이나 몸이 왜소한 사람이 몇달사이에 더 못쓰게 변했다.

참으로 미련한 짓이 아닐수 없다.    가지고 있는 돈도 없을텐데, 임신한 몸으로 계속 써빙을 했을것이다.

당연히 영양 상태도 엉망인채로, 무엇때문에 애를 낳으려고 그 힘든 시간을 버텼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좋아서 만난 사이도 아니고, 단지 정희 남편의 뒤를 캐려다가 어찌 인연이 됐을뿐인데, 내 애를 낳아서 어쩌려고 했는지

답답할 뿐이다.

" 뿌~우.. 뿌~우.. "

핸폰이 울어댄다.     정희의 번호다.

~ 어디야, 이 밤중에.. ~~

" 오늘 못 들어가요.. "

~ 어딘데? ~~

" 이만 끊어요.. "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야 했다.    정희한테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음이다.

" 뿌~우.. 뿌~우.. "

핸폰의 밧데리를 빼 버렸다.    애를 낳느라고 초죽음이 되어있는 선희곁을 떠날수는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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