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까지 이럴건데요? "
" 그걸 나한테 묻는거야? 뻔뻔하기는.. "
엊저녁부터 침대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방 바닥에 이불을 깔고 그 곳에서 자게 한 것이다.
" 너무 심하네요, 선우라도 보면 어쩌라구.. "
" 누구는.. 당장 쫒아내고 싶어도 선우땜에 참는거야.. "
워낙에 사람이 착한 탓에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쉽게 용서를 해 주기 싫은 정희다. 자신한테 맞는 아가씨를
만났다면 참견할 여지도 없었을 것이다.
무려 10살이나 많은 여자를 좋아한 그의 정신세계가 궁금할 지경이다.
그런 여자에게 임신까지 시켜놓고 감추려 한 준호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해서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 정희씨랑 헤어진 다음의 일인데.. "
" 무릎 꿇어.. "
" 네? "
" 나랑 같이 살고 싶다면서.. 싫으면 말던가.. "
한 동안 망설이던 준호가 침대 밑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런 그에게 종이 한장을 내 밀었다.
" 여기에다 각서 써.. "
" 뭐라고 써요? "
" 내가 부르는대로 받아 써.. "
준호를 잡아 두고자 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대신 그에게 확답을 받아 둘 필요는 있다.
" 나 김준호는 이 집에 들어 와 살면서, 지켜야 할 몇가지 사항을 준수하기로 약속한다. 첫째, 정희의 허락없이는 다른
여자를 넘보지 않는다. 둘째, 정희가 시키는 일은 무조건 따른다. 셋째, 이곳에 있는 동안 선우의 아빠 노릇을
성실히 한다. 넷째, 만약에 아기가 생길시 결혼을 한다. "
" 다 썼으면 지장 찍어.. "
준호가 내민 각서를 살펴 봤다. 적어 내려간 글씨들도 조목조목 마음에 들고, 맨 밑 준호의 이름 위에 찍힌 지장이
무슨 언약이라도 한 듯 싶어 신기하기까지 하다. 이제부터는 준호가 내 소유가 된 듯 뿌듯하다.
" 이제 올라가도 돼요? "
" 올라와.. "
침대위로 올라 오더니 베개를 베고는 등을 보인다. 내 사람이 된 기념으로 찐하게 안아 주려던 참이다.
" 왜 돌아 누워? "
" 그냥 잘래요.. "
" 왜? "
" 이틀이나 밑에서 재웠잖아요.. "
" 그래서 삐졌어? "
" ....................... "
" 맘대로 해.. "
" 넌 복도 많다, 어쩜 저리도 꼼꼼하니? "
" 말도 마, 언니.. 어찌나 고집불통인지.. "
장사가 제법 쏠쏠하게 되는 편이다. 언니 말처럼 초저녁부터 9시경까지는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그나마 준호가 일을 도와주는 바람에 조금은 수월한 편이다. 지금도 한차례 바쁜시간이 지나고, 언니와 함께 손님들이
앉았던 테이블과 주변을 청소하는 중이다.
준호가 모아 둔 맥주잔과 소주컵, 그릇들을 씽크대에 담고는 설거지를 하고 있다.
" 아직도 등을 돌리고 자는거야? "
" 그렇다니까.. "
" 어머, 웃긴다.. 생기긴 멀쩡한 사람이 애들처럼.. 준호씨~ "
" 왜 그래, 언니.. "
" 가만 있어 봐, 재밌잖어.호호.. "
설거지를 끝낸 준호가 젖은 손을 청바지에 문지르며 홀로 나왔다.
" 뭐 도와드려요? "
" 아니, 그게 아니고 잠깐 앉아 봐.. "
" 언니, 왜 그래? "
" 준호씨, 각서 썻다면서? "
" ....정희씨.. "
서운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준호다. 묻어둬야 할 얘기를 언니한테까지 전했다는 원망이 섞여 있다.
" 언니.. "
" 남자가 그러면 안되지.. 준호씨가 나이는 어려도 가장 노릇을 해야지, 그렇다고 삐지면 어쩌누.. "
" ........................ "
" 정희는 준호씨를 믿고 산부인과에도 다녀 왔는데.. "
" 산부인과요? "
" 그래.. 준호씨가 애기를 갖고 싶다고 졸랐다며? 복원 시술했어.. "
" 언니.. "
준호에게 알리기란 양심이 허락치 않았다. 이 나이에 무슨 주책인 듯 싶어 창피스럽기도 하고, 그를 붙잡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것처럼 보일까 봐 내심 꺼릴수 밖에 없었다.
" 진짜에요? "
" ........................ "
" 왜 진작 얘기를 안했어요? "
" 등 돌리고 자는 사람한테 얘기하고 싶은 기분이 들겠어? "
" 에그~ 천생연분이다.. 누가 신랑,각시 아니랄까 봐 사랑 싸움은.. "
" 늦었네.. "
" 응, 선우는.. "
" 벌써 자요.. "
9시까지 일을 도와주고 먼저 집으로 들어와야 했다. 누군가는 어린 선우를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 나, 잘래.. "
" 안 씻어요? "
" 응, 다리도 아프고 피곤해.. "
" 이리 누워요.. "
11시나 돼서야 가게문을 닫고 집으로 온 정희가 파김치가 됐다. 장사라곤 경험이 없는 탓이기도 할 것이다.
정희를 침대에 눕게 하고는,옷장에서 잠옷을 꺼내 옷을 갈아 입히기로 했다.
목덜미를 받치고 쉐타를 벗기는 중에도, 피곤해서 그런지 움직임이 없는 그녀의 몸무게가 그대로 팔에 실린다.
잠옷 윗도리를 입히고 단추를 채웠다. 면바지도 벗기고 잠옷 바지를 양 발에 꿰어 밀어올리자, 마지못해 잠깐 엉덩이를
들 뿐이다.
" 여기 아파요? "
" 아야 ~ 아퍼.. "
한쪽 발목을 받쳐 들고 종아리를 감싸가자 그녀의 입에서 실팍한 비명이 터진다.
" 내일부턴 일찍 끝내요.. "
그녀의 발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종아리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 그게 마음대로 돼? 손님은 계속 들어오는데.. "
" 사람을 하나 더 쓰든가.. "
" 요즘 인건비가 장난이 아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