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남자

숨겨진 남자 35

바라쿠다 2012. 11. 4. 16:36

" 오늘부터 가게 내부수리 들어가.. "

" 벌써, 그렇게 됐나? "

정희네 집으로 들어 온지도 벌써 한달이 지났다.     그동안 선우와 자전거를 타러 가기도 하고, 같이 장난감을 조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정희도 별다른 내색없이 회사로 출근할때마다 아침밥을 차려 줬고, 난 나름대로 그녀의 틀 안에 섞이고자 눈치껏 지냈다.

매일 밤 정희와 같은 이불속에서 지냈으며, 선우에게는 지나친 애정 행각을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해야 했다.

" 언제 끝나요? "

" 크게 손 댈건 없다고 일주일이면 끝난대.. "

그토록 나를 멀리하고자 했던 정희도, 내 눈치를 살피는듯 했고 믿고 의지하려는 태도도 보였다.

" 내가 나가 볼께요.. "

" 괜찮겠어? "

" 그러는게 좋겠어요..   여자 혼자서 장사하는줄 알면 우습게 보이기도 쉽고.. "

" 난, 뭘 하지? "

" 그냥 집에 있어요..   개업하기 전에 도우미 아줌마랑 안주 만드는거나 의논하고.. "

" 괜히 준호한테 미안해지네.. "

모든 일을 나하고 의논하게끔 된 정희다.     그런 그녀의 변화가 반가운 반면, 언제 또 마음이 변할지 몰라 촉각을 세웠다.

" 대신 저녁에 잘 해 줘요.. "

" 잘 해 주는게 뭐야? "

"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    뻔히 알면서.. "

" 매일 밤 괴롭혀 놓고, 또 바라는게 있어?.. "

그녀와 동거를 시작하고서 새록새록 재미가 붙었다.      방해하는 이 없는 그녀와의 새로운 생활이 꿀물처럼 달콤했다.

다락방에 숨어서 그녀가 혼자 되기만을 기다리던 그때와는 달리, 하루종일 옆에 붙어 있을수 있음에 행복한 나날이었다.

선우가 유치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자 마자 그녀를 끌어안고 욕심을 채운 적도 여러번이다.

서로가 알몸인채로 식탁에 앉아 식사를 했고, 청소며 빨래같은 집안일을 하기도 했다.

선우가 유치원에서 올 시간을 잊고 있다가, 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허둥지둥 안방으로 뛰어 들어간 적도 있었다.

 

" 잘 돼 가? "

" 네..  거의 다 됐어요..  왜 나왔어요? "

유치원에서 돌아온 선우가 아저씨한테 가자고 조르기도 했지만, 준호에게 꽃게탕이라도 끓여주고 싶어 겸사겸사 내부

수리중인 가게로 나온 정희다.    

먼지를 허옇게 뒤집어 쓴채 가게를 정리하는 준호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 응, 선우랑 저녁 찬거리나 사려고.. "

" 잠깐 기다려요, 같이 가게.. "

" 아저씨~ 나도 할래.. "

" 그래, 맞어..  선우가 도와주면 빨리 끝나겠다.후후.. "

가게 바닥에 널린 쓰레기들을, 큰 비닐 봉지에 담는 준호에게 다가간 선우가 조막같은 손으로 쓰레기들을 줏어 든다.

" 뭘 살건대요? "

좁은 시장 골목에서 선우의 손을 잡고는 뒤를 졸래졸래 따라오던 준호가 궁금함을 내 비친다.

" 아직 몰라, 생각중이야.. "

" 그럼, 꽃게 사요.. "

" 뭔 이쁜짓을 한다고 그 비싼 꽃게까지 산다니?     안 그래도 가게 수리하느라고 들어간 돈이 얼만데.. "

준호에게 꽃게탕을 끓여주고 싶어 나온 폭이지만, 아닌척 일부러 야채가게 근처에서만 서성댔다. 

" 치사하게..  그 까짓게 얼마나 한다고 그러냐..   에구~ 지독해서 돈 많이 벌겠네요.. "

" 당연하지, 돈 벌려고 하는 장산데.. "

" 엄마~  꽃게 사자..  나도 먹고 싶어.. "

자신과 눈높이를 맞춰 놀아주는 준호편이 된 선우다.      남는 시간마다 선우에게 잘 보이려던 준호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 다른것부터 사자.. "

알타리 무를 다섯단이나 사고, 선우가 좋아하는 메추리알도 샀다.     까만 비닐봉지를 하나씩 나눠 든, 준호와 선우가 뒤를

따름에 흐뭇해 지는 정희다.

 

" 이거 맞아요? "

" 너무 커..  그것보다 작은게 있을텐데.. "

주방 바닥에 사 가지고 온 알타리를 늘어놓고 김치를 담글 준비를 했다.     창고에 있는 고무 그릇을 가져 오랬더니, 제일

큰 다라를 가져 온 준호다.     선우도 재밌어 보이는지 둘이서 번갈아 가며 심부름을 하고 있다.

" 이거요? "

" 응, 여기다 놓고 멸치액 젖 좀 꺼내 줘.. "

양 손에 잔뜩 묻은 고추가루 땜에, 여러가지 양념을 꺼내기가 번거롭기도 했지만 준호를 부려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 그 옆에 내려놓고 내 코 좀 긁어, 가려워 죽겠네.. "

" 여기? "

" 그 위..  눈 옆에.. "

" 여기? "

" 응.. 에고, 시원해라..  저 위에 프라스틱 그릇 좀 가져와, 김치 담게.. "

" 아저씨는 완전 엄마 꼬붕이네.히히..   불쌍해라.. "

어린 선우의 눈에도 내 옆에만 붙어 있으려는 준호가 우습게 보였지 싶다.     준호도 내 옆에 있고자 하겠지만, 정작 그가

옆에 없으면 나 역시 허전한 탓에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겨우 일주일에 하루만 출근을 하는 폭인데도, 준호의 퇴근만을 기다리며 조바심이 나곤 했다.

내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될만큼, 너무 그에게 기대는게 아닌가 싶어 실소가 터지기도 여러번이다.

" 빨리들 와.. "

꽃게탕을 식탁에 올리고는, 마루에서 장난감을 조립중이던 둘을 불렀다.

" 꽃게탕 하나는 기가 막히다니까.후후.. "

" 다른건 맛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아 ~   기껏 만들어 바쳤더니.. "

" 에이, 그렇다고 눈까지 흘긴대요..  눈 돌아 가겠네.. " 

" 사람 성의를 무시하니까 그렇지..  맨밥에 간장만 줄까부다.. "

" 아냐, 엄마..  아저씨가 다 맛있다고 그랬어.. "

" 진짜? "

" 응..  엄마가 만든건 다 맜있대.. "

" 흠~ 이번 한번은 봐 준다, 또 그랬다간 국물도 없어.. "

" 근데, 점점 사나워 지는지 몰라..  그 전에는 순했는데.. "

" 뭐야?   버릇없이 누나한테 사납다니..   다시한번 말해 봐.. "

나도 모르게 준호한테 투정이 늘었다.     그만큼 만만하기도 하지만, 은연중에 그를 놀려먹고 싶은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 또 싸운다..  어른들이.. "

" 선우야..  니가 보기에도 엄마가 사납지? "

" 피, 몰라..   엄마..  난, 왜 동생이 없어? "

" ........................ "

" ........................ "

" 갑자기 동생은..  왜,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니? "

" 응..  철수는 맨날 동생이랑만 놀아..   나하고 놀아 줄 시간이 없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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