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남자

숨겨진 남자 33

바라쿠다 2012. 11. 1. 13:12

" 아저씨~ 빨리 가자.. "

녹슨 대문이 부서져라 부닥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선우가 뛰어 들어온다.

" 또 조른다, 아저씨한테 버릇없이 굴지 말라니까.. "

" 씨~ 아저씨가 먼저 약속했단 말이야.. "

" 왜 그래요?   선우랑 약속한건데..  가자, 선우야.. "

" 응.. "

" 나는..  나 혼자만 집에 있으라구? "

느닷없는 정희의 투정이다.     선우가 버릇없어 진다고 툴툴거리던 그녀였다.

" 선우야..  어쩌지?   엄마도 끼워줄까? "

" 응..  집에 혼자 있으면 무서울거야.. "

버스 종점까지 걸어 내려오는 동안 내 손을 꼭 쥐고 있는 선우다.      그 곳에서 택시를 타고 방배동으로 왔다.

회사로 출근하면서 눈여겨 보던 햄버거 집이다.     외국 체인점이라 애들이 많이 찾는다고 들었었다.

" 아저씨~ 우리 번호야.. "

우리네처럼 외식을 하러 나온 사람들로 가게안이 붐빈다.     카운터에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중에, 전광판에 우리 차례를

알리는 번호가 켜진 것이다. 

" 아저씨랑 같이 가져오자.. "

" 응..  빨리 가.. "

선우가 한껏 신이 난 표정이라 나까지 흐뭇해 진다.

" 아빠가 젊어 보여요.. "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내 주던 아가씨가, 딴에는 친절을 베푼다며 아는척을 한다.

" 저 아줌마 되게 웃겨..  아저씨가 우리 아빠래.. "

테이블로 돌아온 선우가 재잘댄다.      처음 선우를 대공원에서 만났을때부터 남 같지가 않았다.

" 아저씨가 아빠라서 싫어? "

" 그건 아닌데, 웃기잖어.. "

정희가 선우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말을 건넨다.

 

유달리 준호를 따르는 선우를 보며 가슴이 미어지는 정희다.

어릴때부터 자신의 아빠라고 믿고있던 사람에게서조차, 따뜻한 정을 받아보지 못한 선우였다.

선우가 준호의 손을 꼭 쥐고 놓치지 않겠다는듯 걸어가는 뒷 모습을 지켜봤다.

내 자식이지만 저렇듯 밝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것 같다.     그런 선우를 마냥 받아주고자 하는 준호가 고마웠다.

" 아저씨가 아빠 해 줄까? "

" ....몰라..  나, 햄버거 먹을래.. "

준호의 짖궃은 질문을 모른척 하며 햄버거를 입으로 가져가는 선우다.     이렇게 살아도 좋을듯 싶다.

말도 안 되는 희망이겠지만 준호를 붙잡고 싶은 욕심도 났었다.     저렇듯 자상한 사람과 살아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는 없다.     비록 사랑하고픈 사람이지만, 나이 어린 그에게 선우까지 딸린 내가 짐이 될순 없는 노릇이다.

" 애한테 쓸데없는 소리를.. "

" 어때서요?    난 그러고 싶은데.. "

" 자꾸 그러지 마, 애한테 상처가 된다구.. "

저렇듯 졸라대는 그를 모른척 받아들이고 싶다.    온전한 내 사람으로 점 찍어 두고 싶다.    자꾸만 욕심이 난다.

" 아우~ 배불러.. "

" 벌써?   아직도 많이 남았네.. "

" 아저씨가 너무 많이 시킨거야, 엄마는 먹지도 않고..   내 배 좀 봐.. "

선우가 제 배를 두드리며 더 이상 못 먹겠다며 엄살을 부린다.     유치원에서도 점심을 먹었을 것이다.

햄버거를 핑계삼아, 준호를 붙잡아 두고 싶었는지도 모를는 일이다.      준호를 따르는 선우의 감정을 눈치챌수 있었다.

" 정말..  배가 빵빵하네.후후..   선우, 자전거 탈 줄 아니? "

" 아니..  안 배웠는데.. "

여지껏 선우에게 그런 관심을 기울여 준 사람은 없었다.    하다못해 남자 목욕탕에도 가 본적이 없는 아이다.

" 우리 자전거 타러가자..   아저씨가 가르쳐 줄께, 소화도 시켜야지.. "

" 진짜? "

 

햄버거 집에서 나와 한강 고수부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걸어가는 내내 준호의 손을 쥐고 떨어지지 않는 선우다.     몇 걸음 뒤에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이 짠해지는 정희다.

어린것이 얼마나 정에 굶주렸으면 제 엄마까지 안중에 없을만큼, 만난지 얼마 안된 준호에게 저리도 매달리는가 싶다.

" 이게 좋겠다..   한번 타 봐.. "

고수부지 공원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었다.     늘어서 있는 자전거 중에서 준호가 하나를 골라 선우에게 내민다.

" 에이..  저게 더 멋있는데.. "

" 그건 너무 커, 페달에 선우 발이 닿지도 않을걸..  한번 타 볼래? "

둘이서 티격태격 하며 의견이 분분하다.    선우가 보채는걸 귀찮아 하지도 않고, 다 받아 주려는 준호의 정신세계가 의심이

될 정도다.

결국 준호가 처음에 골라 준, 보조 바퀴가 달린 자전거에 올라 탄 선우가 신나게 페달을 밟아댄다.

" 선우야~  천천히 가야지.. "

신이 나서 내 달리는 선우의 자전거를 쫒는 준호의 뒷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저 멀리 멀어져 가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자니, 불현듯 준호와의 지난날이 떠 오른다.

이제 막 콧수염이 뽀송이던 준호의 학창시절, 수줍어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주변을 맴돌던 그였다. 

당시 자신의 팬티를 훔쳐 민망한 짓을 하다가 들키는 바람에, 온 집안이 벌집을 쑤셔 놓은듯 시끄러웠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의 그러한 엉뚱한 치기가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신선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15년이란 세월이 흘러, 불현듯 그가 내 앞에 나타나서는 다시 예전의 그 풋풋함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그저 지나간 젊음이 아쉬워, 그의 소꿉놀음에 못 이기는척 응하며 나름 살가운 그의 마음을 즐기기도 했지만

차츰 그와 있는 시간이 많아짐에 점점 부담이 되어갔다.    

이미 정신이나 육체마저 망가져 있는 나같은 여자를, 반려자 쯤으로 여기려는 그의 바램이 버거울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나한테도 있다.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만남인데도 불구하고, 정감어린 그의 눈을 마주치게 되면 자꾸만 욕심이

생기는게 문제였다.

 

" 무슨 생각을 하느라고 부르는데도 대답을 못해요? "

" 나 혼자서 타고 왔는데, 씨~ "

선우가 볼맨 소리를 해 댄다.     자전거를 뒤에서 잡아주지도 않았는데, 예까지 혼자 타고 온 것을 자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 아냐, 엄마도 봤어..  정말 잘 타더라.. "

" 거짓말, 딴 데 보고 있었으면서.. "

" 그러지 말고 한바퀴 더 돌아 봐, 선우야..   엄마한테 자랑해야지.. "

준호가 자전거를 밀어주자,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 선우가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간다.

그런 선우의 뒤를 쫒으며, 혹시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준호가 돌봐주는 중이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같은 집안 식구인 양 다정스런 모습이다.     그의 따뜻한 배려가 새삼 고마운 정희다.

" 이제 그만 가자.. "

어느덧 해가 기울어 간다.    더 놀고 싶어하는 선우에게 자전거를 돌려 주라고 했다.

" 준호씨도 가 봐야지.. "

" 아저씨는 우리 집에 안 가? "

나만의 욕심으로, 일해야 한다는 준호를 이틀간이나 잡아 놨었다.     보내긴 싫지만 내 욕심만 부릴수는 없는 노릇이다.

눈치가 빠른 선우도 벌써부터 아쉬워 하는 기색이다.    어린것조차 따뜻하게 챙겨주는 준호에게 마음이 열렸지 싶다.

" 며칠 있으면 또 올거야..  그때 또 자전거 타러오자.. "

" 정말이지?    아저씨 나랑 약속한거다.. "

" 그래, 진짜 올거야.. "

" 여기 새끼 손가락 걸어..  지장도 찍고, 복사.히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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