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남자

숨겨진 남자 31

바라쿠다 2012. 10. 29. 11:43

" 그게, 무슨 소리야?  나보다 나이가 많다니.. "

" .................... "

" 자세히 얘기 좀 해 봐, 어서.. "

많이 놀란듯 다그치는 정희다.     그녀가 궁금해 하는 아가씨란 존재에 대해, 불쑥 꺼내 놓고는 후회하는 중이다.

" 어, 아저씨 진짜 왔네.. "

대문으로 들어서던 선우가 나를 알아보고 반긴다.

" 이따가 얘기 좀 해.. "

" 선우, 유치원 갔다 오는구나.. "

" 네, 아저씨.헤헤.. "

선우의 출현으로 잠시 숨을 돌릴 시간은 벌었지만, 방정맞은 입을 탓해야 했다.

현관에서 올라서야 하는 마루가 있었고, 그 마루를 중심으로 정희가 침실로 쓰는 안방과 선우의 방이 붙어 있다.

그 반대편으로는 창고 비슷하게 쓰는 작은방과 주방이 맞 닿아 있다.     그 주방에는 밖의 마당으로 통하는 문까지 있었다.

" 아저씨, 선영이 누나 결혼한대요.. "

" 그래..  누나는 좋겠네.. "

워낙 주방이 협소해서 놓여진 식탁도 2인용이다.     한달전에 먹고 싶다고 얘기했던 꽃게탕이 식탁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그나마 얼굴을 익혔다고 제 딴에는 선영이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선우다.

" 선우야..  아저씨한테 누나 얘기는 하지 마.. "

" 하면 안돼? "

" 하면 어때서, 나도 알고 있었는데.. "

처음에는 내 쪽에서 선영이 얘기를 꺼내는걸 싫어 했지만, 지금은 그녀쪽에서 선영이가 거론하는걸 싫어한다.

비록 선영이와의 맞선 자리에서 그녀를 만난셈이지만, 내가 조카의 맞선 상대였다는게 부담이 된다고도 했다.   

" 반주도 해야지? "

" 주세요.. "

선우도 있는 자리에서 술을 마시려는 그녀의 의도가 궁금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선우를 재촉해서 자기 방으로 밀어 넣는 정희다.

" 우리 바람이나 쐴까? "

" 지금? "

" 응..  위 쪽으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한강이 보여.. "

앞서서 집을 나서는 그녀를 따라,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다다랐다.

그녀의 말마따나 이미 어두워 진 한강대교 위로 헤트라이트를 켠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있고, 저 멀리 용산이며 남산의

타워까지 휘황한 조명을 밝히며 형형색색 즐거움을 주고 있다.

" 다시 얘기해 봐.. "

" 뭘요? "

드디어 고문이 시작되려 한다.    방정맞은 입 때문에, 어찌 돌파구를 찾아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 시치미 뗄 생각하지 말고..   사귀는 여자가 나보다 나이가 많다며? "

" 그런데요.. "

끝까지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만의 하나 그녀가 임신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모르긴 해도 나는 비정상적인

놈이 될 여지가 많을 것이다.

" 그게 말이 돼?    내가 왜 준호를 포기했는데.. "

" 내가 싫다면서요?    제 갈길을 가라고 한 사람이 누군데.. "

" 그거야 준호한테 어울리는 짝을 찾으라고 그런거지,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할머니를 만나라고 보내준게 아니잖어.. "

자신한테서 떨어지라고 나를 밀어 낸 사람이, 제대로 된 길을 가지 않는다며 핍박을 해 대는 중이다.

" 정희씨도 말이 안되긴 마찬가지죠, 날 좋아하는 여자가 나이가 어려야 된다는 법도 없잖아요.. "

" 법이 왜 없어?    있어.. "

" ..................... "

"준호한테 나는 첫 여자야..   맞아, 틀려? "

" 그거야 맞죠.. "

" 난 준호한테 모든걸 가르친 여자야..   그런 준호를 잡지도 못하고 떠나 보냈을땐, 자기한테 걸맞는 여자와 만나길 원했기

때문이고..    그런 할머니한테 봉사나 하라고 보내 준게 아니란 말이야.. "

도대체가 여자들의 복잡한 심리는 짐작조차도 힘들다.     떠나라는 이유도 그랬지만, 자기 맘에 안드는 여자를 만난다고

마치 내가 자신의 소유물이라도 되는 양 몰아 세운다.

" 좀 심하지 않아요, 할머니란 표현..   이제 42인데.. "

" 당장 헤어져..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다신 날 못 볼테니까.. "

" ..................... "

" 어디서 감히, 늙은 여자가 지 분수도 모르고.. "

 

이유도 모른채 한참동안 설교를 들어야 했다.     바래다 준다며 버스 종점까지 내려온 그녀다.

" 한잔 더 할래? "

" ..................... "

" 한잔 더 해..  오랜만에 만났는데.. "

버스 종점 근처에 적당한 호프집이 있었다.     저녁을 먹었기에 마른 안주를 시켰다.

무슨 할말이 남았는지 뜸을 들이는 그녀였다.     소주 몇잔을 마시면서 망설이는듯 한 인상을 받았다.

" 나, 장사할거야.. "

" 장사요? "

" 응, 이런 호프집.. "

" 경험도 없잖아요.. "

듣기로는 한번도 궂은 일이라고는 해 본적이 없는 그녀였기에, 잘 해 내리란 믿음이 생기질 않는다.

" 저녁에 도와줄 아주머니도 구했어.. "

" 거기가 어딘데요? "

" 저기 대학교 앞..  그래서 이쪽으로 이사온거야.. "

" 선우는 어떡하고.. "

" 저녁에만 장사할거야..   뭘 해서라도 먹고는 살아야지.. "

만삭이 된 미스홍이 혼인빙자로 고소를 했기에, 경찰서 유치장에서 몸이 단 남편이 이혼을 해 달라고 했단다.

남편에게 주눅이 들어 있던 정희는 변호사를 앞세워 그와 합의를 했고, 위자료로 받은 돈으로 다소 집 값이 싼 이곳에

거처를 구했으며, 며칠동안 고심을 한 끝에 경험 없이도 하기 쉬워보이는 호프집을 택했단다.

" 그리 만만하지 않을거예요.. "

" 욕심내지 않을거야,

" 그래도.. "

아무리 호프집이라지만, 술을 팔아야 하는 장사이기에 정희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 사실 나도 불안하기는 해, 그래서 준호가 보고싶었어.. "

" 내가 도와줄수 있는것도 없는데.. "

" 오늘밤 자고 갈래? "

또 한번 선희에게 혼자 자라고 메시지를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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