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남자

숨겨진 남자 34

바라쿠다 2012. 11. 2. 15:38

" 선우는 아저씨가 좋아? "

" ....응.. "

준호와 헤어진 후에, 선우와 함께 버스를 타고는 종점에서 내렸다.

" 왜 좋은데? "

" 나랑 생각이 비슷해.. "

여지껏 제 눈 높이에 맞춰 같이 놀아줄 어른이 없었음이다.     아직 애들이지만 제 속은 있을터이다.

허울뿐인 아빠가 자신을 이뻐하지 않는걸 눈치챘을 것이고, 딱히 정 붙일 곳이 없었기에 준호의 살가움이 반가웠을 것이다.

" 아저씨가 우리집에서 같이 살고 싶다던데.. "

" 진짜? "

" 응..  선우가 마음에 든대.. "

" 아저씨도 참, 나한테 얘기하지..  남자끼린데.. "

은연중에 준호가 제 편이라도 되는 양, 호감을 가지고 있는게 뻔히 보인다.     아직 어린애지만 사내 녀석이라, 남자 어른을

대하는 방식도 여자 아이랑은 다르지 싶다.

" 선우도 아저씨가 맘에 들어? "

" 그럼..  나랑 생각이 비슷하다니까.. "

" 선우야.. "

" 왜? "

" 아저씨 귀찮게 하면 안돼.. "

" .................... "

" 아저씬 바쁜 사람이야..  매일 선우랑 놀아주기 힘들어.. "

" 나도 그 정도는 알어..   남자끼리는 눈빛만 봐도 통한대.. "

" 그 얘기는 누가 해 줬어? "

" 내 짝꿍..  자기 아빠하고 잘 통한대.. "

" 그랬구나..   선우도 아저씨하고 잘 통하겠네.. "

" 그럼, 당근이지.. "

잘하는 짓인지 아직도 확신이 서질 않는다.      선우도 선우지만, 내 쪽에서 준호를 더 필요로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11시 쯤에 선희가 오피스텔로 들어왔다.     일이 힘들었는지 많이 피곤해 보인다.

" 아버님한테 무슨일이 있었어? "

" 아뇨..  그런일 없었는데, 왜요? "

" 이틀씩이나 안 들어오길래 집에 무슨일이 있는줄 알고 걱정했잖어..   저녁은 먹었지? "

" 그럼요, 시간이 몇신데.. "

" 나 먼저 씻을께.. "

겉 옷을 벗어 옷장에 걸더니 욕실로 들어간다.    흑석동으로 들어오라는 정희의 다그침에 따르기는 해야겠지만, 선희에게

어찌 설명을 해야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 저기..  소주 있어요? "

" 웬일이래, 준호씨가 술을 다 찾고..   잠깐 기다려 봐.. "

팬티와 나시만 걸치고 욕실에서 나온 선희가, 젖은 머리에 수건을 말아올린 채 냉장고를 뒤져 가스렌지에 냄비를 올린다.

" 이리와, 회집에서 가져온 건데 먹을만 할거야.. "

식탁에 올려 놓은 매운탕에서 무럭무럭 김이 올라 오는중이다.

" 그러네요, 맛있어요.. "

첫잔을 부딛치고 한번에 털어 넣었다.     가슴끝이 찌릿해 진다.

" 혹시, 나한테 할말 있어? "

" ..................... "

" 그런거 같은데..   얘기해 봐, 괜찮어.. "

" 저, 사실은..   헤어졌던 여자를 만났어요..   그래서.. "

다행히도 선희가 멍석을 깔아줬기에 말을 꺼낼수 있었다.     어차피 내 입장을 밝혀야 하기에 사실대로 털어놓기로 했다.

" 그랬구나..  잘됐네..  사실은 나도 친구를 만났어..   그 친구가 같이 지내자고 해서, 여기를 그만 떠날려고 했어.. "

" 그러지 말고 여기서 그냥 지내요..  난 몸만 가면 되니까.. "

" 아냐, 거기도 빈 방이 많어..   내일 모레쯤 갈거야.. "

" 그냥 있어도 되는데.. "

" 술이나 마시자구..   우리 이별주네.호호..   자, 건배.. "

 

술을 마시자고 할때부터 어느 정도 눈치를 챈 선희다.

" 얘기해 봐, 괜찮어.. "

이틀씩이나 오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거라 짐작했다.     그 사정이 여자 때문이 아니길 빌고 또 빌었다.

" 헤어졌던 여자를 만났어요.. "

마른 하늘에 천둥과 벼락이 내려쳤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만큼 세찬 빗줄기가 쏟아진다.

외롭고 삭막하기만 했던 인생살이에, 한줄기 따사로운 햇빛처럼 자신을 보듬어 준 사람이다.    꿈처럼 달콤했었다.

10살이나 어린 준호와 분에 넘치는 호강을 누리면서도, 막연하게나마 불안했던 지난 몇달간이었다.

" 잘됐네..  나도 친구를 만나서 여기를 떠나려던 참이야.. "

그 불안함이 현실로 다가 왔지만, 그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생각해 오던 터다.

그의 분신이 뱃속에 자리 잡은지도 4개월이 지났다.     마냥 뿌듯했지만 그마저 지워야 할 것이다.

" 우리 이별주네.호호.. "

긴 방황으로 무의미하게 살던 나를, 다시금 여자로 태어나게 해 준 준호에게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될 노릇이다.

" 미안해요.. "

" 준호가 왜?    그동안 나한테 얼마나 잘 해 줬는데.. "

" 선희씨도 좋았는데.. "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을 후벼판다.     저토록 따스한 준호에게 마음의 부담이 될수는 없다.

" 너무 마음 쓰지마..   준호 덕에 노름까지 끊었잖어.. "

" 저기..  애기는.. "

" 응..  그 친구랑 산부인과에 같이 갈거야.. "

" 내가 같이 가 줘도 되는데.. "

" 바보..  그런데는 여자들만 가는거야.. "

" 네.. "

"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안아줄래? "

 

평생 씻지 못할 죄를 진 기분이다.

정희와 다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선희와의 이별도 없을것이다.

"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안아줄래? "

" 담배피는 모습.. 보고싶어요.. "

" 에구, 참..   준호가 담배 냄새를 좋아했지.. "

그녀의 입술에 물린 담배가 빨갛게 달아 오르더니, 흰 연기로 변해 허공으로 내 뿜어 진다. 

담배를 피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팬티를 벗기기 위해 엉덩이를 들어 안았다.

" 담배 아직 남았는데.. "

한손에 담배를 쥔 채로 엉덩이를 들어준다.     그녀를 벽에 기대게 하고, 다리 하나를 식탁위에 걸치게 했다.

" 그냥 피워요.. "

마지막이라는 기분이 들어선지 그녀의 몸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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