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남자

숨겨진 남자 38

바라쿠다 2012. 11. 10. 09:58

" 정희는? "

" 늦게 나오라고 했어요..   발에 물집까지 잡혔더라구여.. "

출근 시간인 3시가 조금 지나 부랴부랴 가게에 들어선 연숙이다.

항시 먼저 와 있던 정희는 보이질 않고, 보통 6시경에나 나오던 준호 혼자뿐이다.   

" 그래서 대신 나왔다고? "

" 네.. "

자기 여자를 위한다는 마음이야 기특하지만, 장사하기 전에 준비를 해야 할 일이 꽤 많은 편이다.

" 호오~   힘든 색시를 대신해서 고생을 하시겠다?    근데 어쩌누, 닭도 손질해야 하는데..   그 힘든걸 나혼자 하라구? "

" 가르쳐 주면 제가 도울께요.. "

" 이건 여자들이 할 일이야..   써빙하고는 틀려.. "

" 저도 부엌일 잘해요..   정희씨랑 김치도 담어 봤어요.. "

며칠전 준호를 처음 만나 인사를 하게 되면서, 정희로부터 둘의 관계에 대해 설명을 들을수 있었다.

통념상으로 볼때 이래선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일편단심 자신을 쫒아다니는 준호에게 이미 많이 기울어 있는 정희의

마음도 들여다 봤다.     

그런 정희를 보면서 어쩌면 잘 된 일이란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힘들게 젊은 시절을 보내야 했던 정희를 보듬어 주는

준호가 살가워 보였기 때문이다.

" 닭 들어왔지? "

" 네, 저기 다라에.. "

" 이리 가져와.. "

어릴적부터 이웃에 살던 정희를 지켜봤기에, 그녀의 성장 과정을 어느 정도는 꿰고있는 연숙이다.

남편이 일찍 죽는 바람에, 어린 세자매를 홀로 키우느라 엄청사리 고생을 해야 했던 정희의 엄마였다.

정희가 어렵게 여고를 졸업할 무렵, 그 모친이 몹쓸 병으로 자리에 누웠고 그때부터 정희가 술집에 나가야 했다.

귀염성 있던 어린 정희가, 돈에 팔려 현지처 노릇까지 해야 했고 그 덕에 선우가 태어나게 된 것도 후에 알았다.

모진 팔짜를 타고 난 정희를 측은스레 지켜보기만 했다.     나중에 돈 많은 홀애비를 만나 행복하게 산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느닷없이 호프집을 하게 됐다며 도와달라는 연락이 온 것이다.

" 우선 깨끗이 씻어야 해..   이렇게 속에 있는 찌꺼기를 걷어내고 물에 씻어 내자구.. "

" 네..  제가 할께요.. "

팔까지 걷어 붙이고 씽크대에서 닭을 씻고있는 준호를 보며 흐뭇한 생각마저 이는 중이다.     저렇듯 정희 대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준호의 따뜻함에 감동마저 밀려온다.

" 정희가 그렇게나 이뻐? "

" ....네, 이뻐요.. "

" 어디가 그렇게 이쁜데? "

" 다요, 전부 다.후후.. "

정희 이름만 들어도 좋은지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런 그를 지켜보며 오늘 쓸 양배추와 야채를 손질했다.

" 그래서 정희한테 애기를 낳아 달라고 한거야? "

" ....네.. "

" 잘 할수 있겠어?    끝까지 그 맘 변치않고 선우까지 책임지겠냐구.. "

" 당연하죠..   정희씨 핏줄인데.. "

여지껏 힘겹게 살아야 했던 정희에게 보은의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저렇듯 진심으로 정희를 아껴 줄 사람은

다시는 없을것이다.

" 다 씻었는데.. "

" 어디 봐..   잘 씻었네..  여기다 튀김가루를 이렇게 묻혀서 한마리씩 담어..  닭다리는 두개씩만, 알았지? "

" 네, 쉽네요.후후.. "

 

" 왜 벌써 나와요? "

집에서 쉬고 있으라며 어린애처럼 떼를 쓰는 준호의 그 마음이 뜻하는 바는 충분히 고맙긴 했다.    하지만 장사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에 집에만 있자니 불안할 뿐이었다.

" 할일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집에만 붙어 있어.. "

" 벌써 다했어..  준호씨가 너보다 훨 낫더라,얘.호호.. "

이미 장사 준비가 끝났는지, 홀이며 주방까지 깨끗하게 정돈이 돼 있다.

" 선우는요? "

" 밥 차려주고 나온거야.. "

" 에이, 천천히 나오라니까.. "

" 어차피 내가 할일이야.. "

" 이 기회에 준호씨한테 맡기고 살림이나 하지 그러니?  호호.. "

" 안돼, 이사람이 이런일 하는거 싫어..  써빙하는것도 보기 싫은데 닭 손질까지.. "

준호한테 어울리지도 않는 써빙을 시키고서 마음이 편할리가 없다.      연숙이 언니가 그런 준호를 우습게만 보는것 같아

속이 상한 참이다.

" 뭐, 어때요.. "

" 글쎄, 싫다니까.. "

요즘 회사일이 바쁘다며 새벽까지 모니터를 들여다 보는 사람이다.     내 몸 하나 편하자고 준호에게까지 궂은 일을

시킨다는게 양심상 꺼려지는 것이다.

" 정희야..  그냥 받아들이지 그러니..  사람사는 방법이라야 다 거기서 거기야..   태어날때부터 귀한 일 하는 사람하고  

천한 일 하는 사람이 정해진건 아냐.. "

" 박사 학위까지 받은 사람이야, 그런 사람한테 이런걸 어떻게 시키냐구? "

어려운 집안 환경땜에 그토록 하고 싶던 공부를 중도에 접어야 했고, 버젓하게 정장에 하이힐까지 신은채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을 멀리서 지켜봐야만 했다.

대학에서 배운 전공을 살려,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는 친구들이 마치 딴 세상 사람인듯 그렇게 부러웠었다.

미국까지 가서 박사 학위를 따 낸 준호에게, 이따위 허접스런 일을 하게 한다는건 크나 큰 잘못이란 생각이다.

" 그거랑은 틀리지..  준호씨는 니가 고생하는 꼴이 보기 딱해서 저러는건데..  그치, 준호씨~ "

" ....네..  정희씨가 몸이 약하니까.. "

" 거 봐, 얘..   행복에 겨워 가지고설랑..  그냥 못본 척 하라니까.. "

" 그래도.. "

나이 많은 자신에게 더할 나위없이 애뜻하게 살펴 주고자 하는 그의 마음이야 고맙기 이를데 없지만, 나로 인해 준호까지  

하찮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만 같아 그 속상함은 이루 말할수 없음이다.

내심으로는 자격없는 나 같은 여자가 좋다며, 곁에 머무르고자 하는 준호를 아끼고 싶은 이유도 있다.

" 회사 안 나가는 날만 도울께요.. "

" 그래, 그렇게 하자..   어차피 너랑 나랑 둘이서는 힘들어, 사람을 더 쓰면 몰라도..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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