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남자

숨겨진 남자 41

바라쿠다 2012. 11. 16. 10:34

" 언니..  미안한데 나 먼저 들어갈께.. "

" 그래라, 노인네한테 가게 맡겨놓고 둘이서 깨가 쏟아져라.. "

요즘들어 너무 자주 연숙이 언니를 힘들게 하는것 같아 내심 미안한 정희다.

돌아오는 봉급날 다소 얼마간의 성의라도 보여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 미안해, 언니..  오늘 그사람 생일이야.. "

" 어머나~ 진작 얘기하지..  그래, 어여 들어가..  케이크는 샀어? "

" 가다가 사려고..  와인하고.. "

" 그것도 좋지만, 오늘 아주 홍콩 보내버려..  그래야 더 기념이 되지.호호.. "

" 노인네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내일은 일찍 나올께.. "

" 빨리 들어가기나 해, 어린 신랑 눈 빠지겠다.호호.. "

연숙이 언니의 놀림을 뒤로 하고 가게를 나섰다.    케이크 가게에 들어가서도 이쁜걸로 고르느라 고민을 해야 했고,

와인을 사러 가서도 이것저것 손길이 갔다.

언니 말마따나 준호의 기억에 오래토록 남게끔, 찐하게 안아주리라 생각하고는 혼자 쓴 웃음을 져야 했다. 

분명히 철대문 소리가 났을텐데, 아무런 기척이 없다.     안방의 불이 켜지거나, 현관문이 열려야 하는것이다.

선우는 제 방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데 정작 준호는 보이지가 않는다.

몇번의 신호가 울리고서야 준호의 목소리가 들린다.

" 어디야, 이 밤중에.. "

~ 오늘 못 들어가요.. ~~

" 어딘데? "

~ 이만 끊어요.. ~~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런적이 없던 사람인데 일방적으로 핸폰이 끊어졌다.    

재다이얼을 눌렀다.     몇번 신호가 가더니 핸폰의 신호가 꺼져 버렸다.     아예 핸폰의 전원을 빼 버린듯 하다.

 

" 미리 연락이라도 하지, 사람이 왜 그렇게 미련해요? "

아침이 돼서야 겨우 눈을 뜬 선희다.     그녀를 지켜보느라 꼬박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 ....미안해..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 "

" 궁금해요, 뭣 땜에 애를 낳았는지.. "

" 염려마, 준호한테 기대지 않을께..  나 혼자서도 잘 키울수 있어.. "

"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어요, 애를 낳기로 결심을 했으면 나한테 귀뜸이라도 했어야죠..   바보처럼 혼자서 힘들게 버틸

이유가 없단 말이죠..  그럴 결심을 했으면 제대로 몸 관리라도 하던가, 지금 선희씨 몸이 엉망이래요.. "

몇달씩이나 그 힘든 시간을 홀로 버텼을 그녀에게 화가 났다.    단지 내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생각만으로, 만삭이 된

몸으로 혼자 외롭게 버텼을 그녀가 떠올라 견딜수가 없다.

" 미안해..  준호 모르게 했어야 하는데, 수술을 안해 주겠다고 하는 바람에.. "

" 나가서 죽이라도 사 올테니까 잠깐 기다려요.. "

" ........................ "

" 잘 먹어야 한대요.. "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양 입을 오물거렸지만 그대로 방을 나왔다.

 

도대체가 불안해서 밤을 꼬박 새운 정희다.    수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여전히 핸폰은 먹통이다.

별의 별 생각이 꼬리를 문다.     여지껏 이런 일이라곤 없던 사람이다.   

" 엄마~ 삼촌은.. "

" 선우 일어 났구나..  얼른 씻어.. "

가끔이라도 이런일이 있던 사람이라면 덜 불안할수도 있다.     그래서 더 답답한 것이다.

엊 저녁 사온 케이크와 와인을 냉장고에 넣어둬야 했다.

" 삼촌은 출근한거야? "

" 그래.. "

아침을 차려 선우와 식탁에 앉았지만 밥을 먹는것도 건성일수 밖에 없다.

그리고 보니 준호의 가족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었다.     예전에 준호를 홀로 키우던 아버님이 재혼을 했다는 소리는

들은것 같다.    

준호와 같이 살기로 작정까지 하고는 아버님을 찾아보지 않았던게 마음에 걸린다.

그 전에야 준호의 여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엄두조차 못 냈지만, 지금은 그의 애까지 뱃 속에서 자라고 있는

마당이다.

준호의 아버님이 뻔뻔한 여자라고 몰아 세울망정, 그 집안의 씨까지 받은 지금 물러설수는 없다.

" 엄마~ 유치원 갔다올께.. "

 

" 얼른 먹어요, 내가 보는 앞에서.. "

누워있는 자신의 상체를 일으킨 준호가 죽 그릇을 손에 받쳐 들고 있다.  

죽을 먹기보다는 준호의 얼굴을 더 들여다보고 싶은 선희다.    준호를 떠날수 밖에 없었지만 한시도 잊은적이 없었다.

그래선 안 되는줄 알면서도 그가 잊혀지지가 않았다.    그가 그리울때마다 뱃 속의 태아를 쓰다 듬곤 했다.

" 힘이 없어.. "

수저를 들었다가는 도로 내려놔야 했다.

" 내가 먹여 줄께요.. "

대신 수저를 집어 든 준호가 죽을 떠서 입에 넣어준다.    이제서야 그의 얼굴이 마주 보인다.

" 미안해, 준호씨.. "

" 그런 얘긴 그만하고 기운이나 차려요..  힘을 내야 젖이라도 주죠.. "

" 애기 봤어?   딸이라던데.. "

" 네, 바보같이..  미리 연락이라도 했으면 애기도 건강했을텐데.. "

준호가 애기를 봤다는 말에 애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그가 원하지 않은 애기였겠지만, 마음 한 구석엔 그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 얘기할수가 없었어..  재밌게 살고 있을텐데, 방해가 될까 봐.. "

" ....그 사람도 애기 가졌어요.. "

" ....그렇구나.. "

설마했지만 역시 넘볼순 없는 사람이다.     잠시지만 분에 넘치는 기대를 한 자신이 바보스러울 뿐이다.

어차피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그의 입을 통해 다시한번 확인한 폭이 되어 가슴 한편이 아려온다.

" 준호씨한테 부담주기 싫어..  이제 그만 가, 그 여자가 오해하기 전에.. "

" 선희씨 같으면 갈수 있겠어요?    애기도 그렇고 선희씨도 이렇게 형편없는데, 사람이 왜 그렇게 바보같이.. "

" 나 혼자서 결정한 일이야, 준호씨도 신혼일텐데 피해주기 싫어..   나 혼자 키울께, 그만 가.. "

남편한테 배신을 당하고 처음으로 마음을 준 사람이다.    그를 곤란하게 만든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와 지냈던 꿈 같던 기억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애를 키우면서 그와의 추억만을 먹고 살아야  할 것이다.

" ....선희씨 기운차리면 갈께요..  도움이 못돼서 미안해요.. "

자신과 애를 안쓰러워 하는 준호의 모습이나마 머리속에 담아둬야 했다.

이제는 영영 그의 앞에 나타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아 그의 얼굴마저 희미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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