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에 안가도 돼? "
입원 수속까지 대신 처리해 주고도, 내내 병원 앞에서 지키고 있는 윤수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응급실의 할머니를 지켜보다가, 혼자 기다리고 있을 윤수가 심심할까 봐 승용차에 같이 앉아 있는 중이다.
" 어차피 집에 가도 아무도 없어.. 수진이는 밤 샐거야? "
" 글쎄.. 어차피 응급실에 있어봐야 도움도 안되고, 집에 가서 몇시간이나마 잘까 봐.. "
" 그래, 그럼.. 내가 데려다 줄께.. "
" 잠깐만 기다려, 할머니한테 얘기하고 올께.. "
응급실로 가기 위해 병원 화단을 지나치면서, 다시 한번 윤수에 대해 곱 씹어 보는 수진이다.
오늘만 해도 윤수가 없었더라면 실로 암담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돌아가신 아빠도 결국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수술조차 받아 보질 못했다.
할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수술비를 포함한 입원비가 무려 2백만원이 넘는 금액이라고 들었다.
윤수가 대신 내주지 않았다면, 아빠의 경우처럼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파스만 붙이고 말았을런지도 모른다.
" 어때, 할머니.. 괜찮어? "
" 그래, 이제 안 아퍼.. 그만 집에 가자.. "
링거를 꼽고 병원 침대에 힘없이 누워 있는 할머니가 몇년은 더 늙어 보인다.
이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라곤 할머니 뿐인데,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만 바랄뿐이다.
" 안돼, 내일 수술하기로 했어.. "
" 나이 먹으면 다 그런거야.. 앞으로 얼마나 산다고 수술까지 해, 꽤 비쌀텐데.. "
" 그냥 시키는대로 해, 할머니.. 내 말 안 듣고 힘든일 하다 다친거잖어.. "
" 에구 ~ 그 돈이 있었으면 니 아빠 수술이라도 해 봤을텐데.. "
" ..................... "
" 얼른 들어가서 몇시간이라도 자야지.. "
병원에서 나온 수진이를 태우고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할머니 걱정 때문인지 오는 내내 말 한마디 없다.
" 윤수야.. "
" 응? "
" 우리집에서 자고 갈래? "
" ...................... "
" 집이 좀 누추하지만 그냥 자고 가.. 혼자 있으면 무서울 것 같아서 그래.. "
" 에그, 겁은.. 그래, 그러자.. "
나이는 어려도 당찬 성격인줄로만 알았는데, 혼자 자는걸 겁내는 수진이다.
" 들어 와.. "
어렵게 살리라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까진지는 몰랐다.
차들이 다니는 비탈진 골목 옆, 허름한 샷시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백열등 하나가 부엌을 비춘다.
작은 씽그대와 연탄 아궁이가 있어 부엌이지, 겨우 사람하나가 지나치기도 힘들만큼 좁은 곳이다.
이런 곳에서 어찌 밥이며 빨래를 했을지 의심스럽다. 부엌 한 쪽에는 연탄도 몇장인가 쌓여 있다.
그녀를 따라 들어간 방도 부엌과 대동소이하다. 작은 방 두개가 맞닿아 있는데 두사람이 눕기에도 좁은 공간이다.
" 우리 소주 마실까? "
" 왜, 술 마시고 싶어? "
점퍼를 벗어 벽에 걸더니 느닷없이 술타령을 하는 수진이다.
" 바보.. 분위기 잡으려면 한잔 해야지.. "
" 분위기? "
" 응, 분위기.. 내가 오늘 널 잡아 먹을거걸랑.호호.. "
" 그래, 좋다..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후후.. "
" 어머 ~ 술이 없네.. "
방 안에 있는 작은 냉장고를 연 수진이의 낭패스런 목소리다.
" 내가 갔다 올께.. "
" 아냐, 내가 갔다올래.. 잠깐만, 아궁이 구멍도 열어 놔야지.. "
벽에 걸어 논 점퍼를 걸치더니 밖으로 나간다. 무심코 방 안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큰 길까지 나와 슈퍼에서 소주 3병과 몇가지 안주를 챙겼다.
윤수와 같이 차를 타고 오면서 내내 생각에 잠겼던 수진이다. 지금의 현실과 윤수에 대해 골똘하게 정리를 해 봤다.
어차피 그에게서 돈을 받고 애인노릇을 해 주기로 한 폭이지만, 분에 넘치게 도와주고자 하는 그의 배려가 너무나 고맙기는
하다.
그 고마움에 보답하는 길은 몸뚱아리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고 가라고 붙들었던 것이다.
" 아직도 추워? "
" 아니, 이제는 따뜻해.. "
" 근데, 왜 옷을 안 벗어? 바보.. 쫄았구나, 내가 잡아 먹을까 봐.호호.. "
윤수와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그만큼 믿음직하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 그래, 겁 먹었다.후후.. "
" 빨랑 옷이나 벗어, 금방 가지고 들어갈께.. 잡아먹기 좋게 홀라당 벗어.호호.. "
" 알았어, 대충 가지고 들어 와.. "
변변한 반찬도 없기에, 할머니와 먹는 작은상을 꺼내 소주와 주전부리 안주를 놓고 김치를 더 얹었다.
" 술상 차리느라 고생했다, 자 한잔 받아.. "
" 가만 있어, 나도 옷 좀 벗고.. "
겉 옷을 벗어 벽에 걸고 브라와 팬티까지 벗어 던지고는 완전 알몸이 되어 그와 마주 앉았다.
" 야 ~ 웬일이래.후후.. 술 맛 나겠는데.. "
" 너도 다 벗어.. 남자가 치사하게.. "
" 그래, 나도 벗어야지.. "
그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와 마찬가지로 모두 벗어 제낀다. 이왕이면 윤수에게 한껏 잘 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 건배 해, 우리의 알몸을 위하여.. "
" 나도.후후.. "
소주가 목으로 넘어가더니 식도 끝이 짜릿해 진다.
" 윤수야.. "
" 응? "
" 고마워.. 덕분에 할머니 수술도 하고.. "
" 너 그래서 이러는구나.. "
" .......................... "
" 고마워 하지 말라니까.. 니가 내 옆에 있어주는것 만도 충분해.. 그까짓 돈에 비할까.. "
" 그래도.. 우리 아빠는 수술도 못하고 돌아 가셨어.. 진짜 고마워.. "
돌아가신 아빠를 떠 올리자 가슴이 먹먹해 진다. 할머니의 수술비를 대 준 윤수가 의지가 된 때문인지 설움마저 밀려
온다.
" 바보, 울기는.. 수진아.. "
" 응? "
" 그건 됐고.. 할머니 퇴원하면 이사가자.. "
" 이사? "
" 응.. 이사해라, 조금 넓은 집으로.. 내가 하나 얻어줄께, 요즘에 연탄 때는 집이 어딨냐? "
" .......................... "
" 그렇게 해, 오히려 내가 고마워 그러는거야.. 넌 그럴 자격도 있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