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삶의 무게 10

바라쿠다 2012. 11. 13. 14:59

" 술 마시게? "

" 그럼, 이렇게 안주가 좋은데 술이 빠지면 되겠냐.. "

강릉에 도착해 잠수함 전시장과 조각공원을 둘러 보고는,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자그마한 포구가 눈에 띄길래

그 곳에 차를 세웠다.

몇군데 천막을 쳐 놓고 회를 파는곳이 있어 그 곳으로 미영이를 이끌었다.    술 마신 핑계로 자고 갈 생각이다.

" 운전은.. "

" 정동진까지 왔는데 내일 해 뜨는거라도 봐야지.. "

" 자고 가게? "

" 그러지, 뭐.. "

" 너 미리 작정한거지?   응큼하기는.. "

" 어때, 어차피 사귀기로 했잖어.. "

미영이의 말에 뜨끔하지만 밀고 나가기로 작심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수는 없다.

" 그래도, 미리 물어 봤어야지..   좋아, 까짓거.호호.. "

" 아줌마~ 여기 낙지도 주세요.. "

드디어 미영이를 어찌할수 있다는 안도감이 생긴다.    그제서야 주위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포구를 빙 둘러 몇개의 회집들이 늘어서 있고, 민박집 간판도 서너개 보인다.

바닷가에는 통통배들이 몇 척 앙카에 묶여 있을뿐, 한가로운 어촌 마을의 전경이 평화롭기까지 하다. 

" 너 주량이 쎈가 보더라, 그 날도 새벽 늦게까지 마시던데.. "

" 웬만큼이야 마시지, 술 못마시는 남자는 별로야.. "

" 그래?  한번 겨뤄보야겠네.후후.. "

" 자신있으면 덤벼..  나중에 업어 달라고 조르지나 마.호호.. "

모든 일이 술술 풀려나가고 있다.     초장에 찍어 먹는 도다리 맛이 일품이다.

 

" 그래서 어쩌라고..  아들이 왔으니까 그냥 가라구? "

" 아이~ 왜 그렇게 보채?   잠깐 기다려.. "

사귄지 두달이나 지난 영철이다.    나이는 여섯살이나 어린 46이지만 힘이 좋아선지 밤새 놔 주지를 않는다.

다방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같이 집으로 가곤 했었는데, 아들 녀석이 왔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미숙이다.

카운터에 놔 둔 핸폰을 집어 들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왜.. ~~

" 어디야?  집에서 잔다며.. "

한참이나 발신음이 반복 되고서야 겨우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 오늘 못가, 여기 강릉이야.. ~~

" 강릉엔 왜 갔는데? "

~ 여친이랑..  내일 갈께요.. ~~

" 미리 얘기를 했어야지, 너 먹일라고 갈비도 재 놨구만.. "

~ 미안해, 엄마..  갑자기 그렇게 됐어.. ~~

" 알았어, 집 오기 전에 미리 전화나 해.. "

오늘 밤도 영철이와 함께 지낼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그 곳에 소식이 온다.

" 뭐래, 오늘 안 온대? "

" 그렇다네..  미리 얘기나 해 주지.. "

옆에서 아들 녀석과의 통화에 귀를 기울이던 영철이가 반색을 한다.

" 아들 먹이려고 갈비 쟀다며, 나는 국물도 없냐? "

" 당근 자기것도 있지..  남자가 삐지기는.호호.. "

" 빨리 문이나 닫어.. "

" 응.. "

부랴부랴 가게문을 닫아야 했다.     영철이와 뒹굴 생각에 벌써부터 흐뭇해 진다.

 

민박집을 얻어 놓고 바닷가로 산책을 나왔다.    

정호에게서 핸폰을 받고는 고심을 해야 했다.     동해 바다를 구경하기로 약속까지 한 마당에, 그를 믿고 몸을 주어야

할지가 확신은 없었던 미영이다.     애인으로 삼아도 될지 가늠키가 어려웠다.

그전에 만나던 애인과는 헤어 진지 한달이 넘은지라, 별다른 재미거리도 없었기에 속는셈치고 따라 나서기로 했다.

" 엄마야? "

" 응.. "

" 너, 마마보이구나..  이 시간에 핸폰까지 하냐.. "

만난지 얼마 안된 정호에 대해 궁금해 지는게 많다.     방배동 클럽에서 처음 만났을때, 술을 시킬때마다 계산을 치루는 

정호를 유심히 눈여겨 보게 됐다.     생김새도 그럭저럭 봐 줄만 했고, 겉에 걸친 옷도 이른바 명품이었다.

번듯한 학력도 없이, 여고를 졸업하고 허송세월만 하던 생활도 슬슬 진력이 나던 참이다.

말단 공무원인 아빠의 봉급으로 근근히 버티는 집안이기도 했고, 요즘 들어 무위도식하는 자신에게 눈총을 주는 엄마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기에 만만한 남편감을 고르던 중이었다.

" 마마보이는, 얘가 완전 무시를 하네..  우리집에선 내가 대빵이거든, 내 말대로 안 되면 난리 나는거야.. "

" 큰 소리는..  중고차나 타고 다니면서, 무슨.. "

사귀고 싶은 남자를 점 찍어, 놓친 적은 없던 미영이다.     정호를 옴짝달싹 못하게 꼬시는건 일도 아니지만, 그의 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요량으로 약을 올릴 심산인 것이다.

" 속고만 살았나..  나, 외동 아들이야.. "

" 그 돈이 니꺼야?    부모님이 돌아가실래면 20년은 있어야겠다. "

" 얘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상속세 때문에 미리 나한테 떼 줘야 할걸, 우리 꼰대가 얼마나 짠돌인데.. "

" 그게 그거지, 뭐..  자기 주머니에 없는건 마찬가지잖어.. "

얼추 넉넉한 집안의 놈팽이로 보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결재권이 없다면 시부모의 눈치를 볼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나게 놀고 마시며 만끽하던 자유를 구속 당하면서까지, 그 집안의 틀에 맞출수 있을까도 자신이 없는 지금이다.

" 그러니까 PC방을 차리는거지..   내 용돈은 충분히 떨어진다더라.. "

" 그깢게 몇푼이나 되게..   만약에 장사가 안된다면 어쩔건데.. "

" 근데, 얘가 시작도 하기전에 초를 친다니.. "

" 말이 그렇다는거지, 번듯한 직장이 없으니까.. "

" 으~ 춥다..   그만하고 들어가자.. "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무를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연이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정호를 묶어 놓기로 했다.

제 딴에도 나름 여자들과 놀아 봤겠지만, 철없는 애송이를 다루는 것과 다를바가 없을 것이다. 

여지껏 만나 온 남친들 중 먼저 떨어지고자 한 위인은 하나도 없음이다.     그런면에서는 자신이 있는 미영이다.

" 그저, 이쁜건 알아가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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