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장난이 아냐

사는게 장난이 아냐 20

바라쿠다 2012. 11. 5. 11:55

친구 황철영의 영향력은 대단히 컸다.

TV에는 나가지 않겠다던 영화배우 최영국이 마음을 바꿔 연속극에 출연하기로 한 것이다.

그를 섭외하지 못해 애를 태우던 이영식 PD가 고맙다는 뜻을 전해 왔다.    그 뿐만이 아니다.    주인공의 학창 시절을

연기할, 새 얼굴을 찾기에 미경이의 딸인 유정이를 선 보였고, 카메라 테스트까지 받았다.

더군다나 타 방송의 정현석 PD도 로리와 엘리야를 쓰겠노라고 최종 통보를 해 옴으로써, 명실공히 프라임이 제대로 된

기획사로 발돋움 할 기초가 됐다. 

" 미스최가 바쁘게 생겼구나.후후.. "

" 진짜로 정신이 없다니까요.. "

며칠만에 출근한 남선배가 바뀌어 진 사무실 분위기가 흡족한 모양이다.

" 나한테는 심심하다고 그랬잖어.. "

" 그때는 그때구여..  혼자서는 도저히 힘들어서 안 되겠어요.. "

" 아무래도 식구들을 더 늘려야 겠어요, 차도 하나 더 필요하고.. "

미스최의 엄살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사무실의 인원은 늘려야 했다.     개그맨이나 탈렌트를 통 털어 TV에 얼굴을 내미는

식구만 해도 8명이다.    

쌍동이 자매나 유정이까지 가세가 된다면 정신없이 바빠질 것이다.

" 김실장이 알아서 하라니까..  오랜만에 나도 좀 쉴란다.. "

" 쉬다니,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래..   나한테 몽땅 떠 맡기겠다는 말이유? "

" 아냐, 그건..   벌려놓은 일이 바뻐서 그래, 내 대신 전결권을 가지라는거지..   니 판단대로 밀고 나가 봐.. "

" 미스최..  친구한테 차 한대 더 추천하라고 하고, 동생한테도 쓸만한 매니저 감이 있는지 알아 봐.. "

" 네, 실장님.호호.. "

사무실이 바빠지자 미스최도 덩달아 신이 나는 모양새다.   

 

" 저녁은? "

" 아직.. "

미경이가 시간을 내 달라는 연락이 왔었다.     방송국 스케줄에 따라 사극을 찍기도 하고, 촬영이 없는 날엔 밤 업소에

출연하느라 나름 바쁜 미경이다.

" 요즘 바쁘지?     미스최가 엄살이던데,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면서.. "

" 조금 그런편이야.. "

" 다시 봐야겠어, 처음엔 날건달로 보였는데.. "

" 그렇다고 날건달이 뭐냐? "

" 아, 미안..   귀여운 건달.호호.. "

편하게 대해주는 미경이에게 부담감은 없다.    오히려 솔직한 그녀의 말투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 참, 내..   용건이 뭐야, 바쁠텐데.. "

" 성격도..   일단 저녁이나 먹자, 나 배고파..  꽃등심 어때? "

" 돈이 좀 되나?    통 크게 노시네.. "

" 내가 그렇게 궁상맞게 보였나 보지?   하기사, 틀린 얘기도 아니네..  우리 집으로 가자, 괜찮치? "

" 집?  유정이는.. "

" 친구네서 자고 온대..  가든에 가면 최소한 15만원이 넘어..  정육점에서 사다 먹으면 5만원이면 뒤집어 쓸텐데,

한푼이라도 아껴야지.. "

택시를 타고 그녀의 동네라는 신길동으로 갔다.     배기태의 집과 멀지 않은 곳이다.

" 차비 아끼느라 걸어다닌 적도 많어.. "

그녀가 살아온 굴곡이 짐작된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고, 마트에서 소주와 야채까지 사서는 어느 골목으로 들어섰다.

다세대 주택인듯 한 대문 안으로 들어가자,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지 샷시로 된 출입문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 지저분 해, 흉보지 마.. "

 

좁은 현관에 그녀와 유정이의 것으로 보이는 신발들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다.

현관 옆이 사람 하나가 겨우 드나들 만큼 좁은 부엌이다.     그 안쪽은 침대가 놓여있는 큰 방과 연결되어 있고, 그 옆에

마루도 없이 작은 방과 붙어있는 구조다.

" 잠깐 앉아서 기다려.. "

안방 바닥에 있던 잡다한 물건들을 한쪽으로 치우더니 낡은 방석 하나를 내민다.

내 겉 옷을 받아 벽에 있는 옷걸이에 걸고는, 그녀 역시 내가 있는걸 개의치 않는다는 듯 버젓이 치마까지 벗어 제낀다.

아무리 격의없이 몸을 섞은 사이라지만, 당당히 팬티 바람이 된 그녀를 보는 내가 어색할 지경이다.

브라까지 끌러 맨 몸에 박스로 된 쉐타만을 걸치고는, 방 안에 작은 교자상을 놓고 부엌에서 부루스타와 후라이 팬까지

가져와 고기 구울 준비를 마친다.

" 미안해, 여기서 먹자고 해서.. "

무릎 위까지 내려 온 쉐타지만 책상 다리를 하고 앉은 탓에, 그녀의 하얀 허벅지가 내 눈을 유혹하는 중이다.

" 별소릴 다 한다, 어디서 마시나 소주맛은 똑같애.. "

그녀 역시 나를 편하게 생각하기에 제 집으로 데려 왔을것이다.     달궈진 후라이 팬에서 고기가 지글거린다.

" 한잔 해.. "

" 주량이 몇병이야?   여자가 술을 너무 자주 해.. "

" 아직은 까딱없어, 걱정 마..   그나마 이 놈이라도 있으니까 잠을 자지.. "

" 좀 줄여..  나이도 있는데.. "

나이가 세살이나 연상이지만, 친근한 느낌마저 드는 그녀다.    속사정까지 듣고 나서는 자꾸 그녀에게 신경이 쓰인다.

" 고양이가 쥐 생각하네..   잡아먹지나 말든가.. "

" 내가 먼저 했냐?    지가 먼저 꼬리를 치구선, 무슨.. "

" 남자가 치사하게 발을 빼기는, 설사 그렇더라도 자기가 먼저 꼬셨다고 하면 어때서.. "

" 에구, 그래..  내가 강제로 따 먹었다.후후.. "

술기운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가 옆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 지지만, 그녀 역시 내게 비슷한 동질감을 갖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 이서영이가 당신한테 마음이 있나 보더라.. "

" 그건 또 뭔 소리래.. "

" 같은 여자의 직감은 못 속여..   며칠전에 자기에 대해 은근히 묻더라구, 진짜 총각이냐면서.. "

" 됐어, 이서영이가 이쁘긴 해도 그러긴 싫으니까.. "

절대로 빈말이 아니다.    여자를 좋아하는 그 감정이야 소중하게 여기지만, 프라임에 들어오면서 다짐을 했었다.

목표를 이루기까지는 소속사 연예인들과 몸으로 친해지지 않고자 했다.    아무리 마음을 다 잡았다 한들, 몸으로 친분을

맺고 나서는 그들을 관리한다는 명분이 희석될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굳은 결심을 했는데도, 이미 미경이와 엄미리까지 불가분의 관계가 된 지금이다.

" 그거야 자기가 알아서 할 탓이고..  난, 그저 알려 줄 뿐이야.. "

" 못 믿겠지만 그러기 싫어, 내가 무슨 제비도 아니고.. "

미경이한테 얘기를 한다기 보다 내 자신에게 타이른 말이다.   다시한번 초심으로 돌아가 마음을 다 잡고 싶다.

" 그러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 "

" ...................... "

" 별다른 의미를 두지 말라구..   동훈씨가 얘기하는게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이 바닥은 그런 정직이 먹히는 곳이 아냐..

자기가 이서영이를 멀리하려는 인상을 줬다가 그녀가 떠나면 어쩔건데..   여기가 그런 곳이야, 치사하겠지만 걔네들을

붙잡으려면 할수 없어.. "

진심으로 날 위하는 말로 들린다.     그녀의 말을 듣고보니 나름 설득력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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