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삶의 무게 7

바라쿠다 2012. 11. 4. 16:28

" 집이 여기야? "

" 응..  저 위.. "

윤수가 큰 길가까지 데리러 왔다.    차 안이 넓직하고 아늑하다.     그가 사 준 패딩과 운동화를 신었다.

" 누구랑 살어? "

" 할머니랑 둘이.. "

" 적적하겠네..   할머니 연세가 얼마야.. "

" 75..  자기는? "

" 나 53.후후.. "

" 뭐라구?   이 도둑놈..  나하고 31 살 차이잖어.. "

대충 나이는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의미는 없다.    윤수처럼 날 끔찍하게 위해 준 남친도 없었을 뿐더러, 따분하고 우울하던

내 일상에, 잔잔한 재미를 안겨 줄 친구로 삼은것 만도 족하다.

" 도둑놈이라..  아무렴 어떠냐.후후.. "

" 나도 손해는 없어..  윤수같은 꼰대랑 친구 먹었으니까.호호.. "

" 수진이하고는 통하는게 많아서 좋아..   앞으로도 그렇게 지내자구.. "

나이만 많을 뿐이지, 살갑게 감싸주는 윤수가 믿음직하다.     그깟 나이보다는, 헤아려 주려는 그의 맘이 더 고맙다.

" 니가 하는거 봐서..  잘 못하면 차 버릴거야.. "

" 에고 ~ 조심해야겠다.후후.. "

" 당근이지..   그 얼굴에 어디가서 나같은 미인을 만나냐? "

" 동감 ~ 근데, 우리 뭐 먹을까? "

" 아무거나 다 좋아..  고기 먹으면 더 좋고.. "

시원하게 뚫린 올림픽 도로를 타고 시원스레 달린다.     저 멀리 행주대교 쪽에 붉은 노을이 걸린다.

얼굴 가득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 윤수다.      여지껏 그 누구도 자가용에 태워 준 사람은 없었을

뿐더러, 시외로 바람쐬러 간다며 호강스런 대접을 받는 것 역시 처음이다.

 

한강을 낀 해안도로를 한참이나 지나, 좁은 길로 빠지더니 비닐 하우스가 쳐진 곳으로 들어간다.

간판이 없는 식당인듯, 안 마당에는 우리네처럼 자가용을 타고 온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다.

윤수를 따라 매점처럼 꾸며진 공간으로 들어서서 음식값을 지불했더니, 주방쪽에서 오리고기와 야채를 건네준다.

고기와 야채가 담겨진 쟁반을 들고 바깥에 개방돼 있는 하우스로 들어갔다.

셀프 시스템인지 손님들이 직접 오리고기를 구워 대고 있다.     그 중 비어있는 한가한 불판 앞에 자리를 잡았다. 

" 술 마시게? "

" 응..  여기서 대리도 해 줘.. "

" 서울까지? "

" 아니..  이 근처에 온천 호텔이 있어.. "

" 수상해..  어찌 그리 잘 알까.. "

" 오래된 호텔이야..   모르긴 해도 30년은 됐을걸..  유명하진 않아도 온천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알지.. "

" 어떤 여자랑 왔던건 아니구? "

" 수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와 보긴 했지.후후.. "

" 피 ~ 나이 많아 좋기도 하겠다.. "

빨갛게 양념이 된 오리 주물럭 고기를 연탄불 위의 석쇠에 올리니, 매캐한 연기가 피어 오르면서 고기가 익기 시작한다.

" 아유~ 왜 연기가 내 쪽으로만 오냐.. "

" 연기도 이쁜 여자만 쫒아 다니는거야.후후..   내 옆으로 와.. "

내가 굽겠다며 집게를 달라고 해도, 하루종일 편의점에 서 있자면 힘들거라면서 굳이 자기가 굽겠단다.

" 자, 한잔 해.. "

" 응.. "

소주잔 두개에 술을 따르고는 잔 하나를 내게 내민다.

" 어때? "

" 맛있어, 진짜.. "

" 수진이가 고기를 잘 먹네..  자주 오자.. "

" 알았어..  근데, 이 패딩에 냄새 배겠다.. "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어 그런지 제법 입맛이 당긴다.     시간이 날때마다 윤수를 조르고 싶을 정도다.

" 드라이 맡겨..   그리고 며칠 있다 백화점에 한번 더 가자.. "

" 왜, 또.. "

" 다른 옷도 사야겠어..   세련된 옷을 입어야 남자 녀석들이 침을 흘리지.. "

입고있는 스웨터나 바지가 맘에 안 든다는 표현이다.     여고를 졸업하고 2년이 지났건만, 변변한 옷이라곤 사 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 하여간에 연구 대상이라니까..   진짜 딴 남자라도 사귀라는거야?    모르는 놈한테 보내고 싶어? "

" 응, 그게 내가 바라는거야..   좋은 놈을 만나야지, 내 아들놈 같이 속이 빈 놈 말고 착실한 놈으로.. "

" 됐어, 그만 해..   재미없어.. "

" 수진이한테 멘토가 되고 싶어.. "

" 멘토?   이끌어주는 그 멘토? "

" 응..  그 멘토..  수진이를 이끌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인생 상담도 해 주고 싶고..   나이살이나 먹은 놈이 어린 처녀를

건드려 놓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인다고 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거든.. "  

자기말에 도취가 된 듯 소주 한잔을 입 안에 털어 마신다.    술기운이 오르는지 얼굴마저 벌겋게 익은 모습이다.

" 수진이가 너무너무 이쁘지만, 영원히 내 곁에 둘 순 없잖어..   나는 수진이가 잘 되길 바래, 이건 진심이야..   앞으로

힘든 일이나 고민거리가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평생 니 편이 되고 싶으니까.. "

" .....고마워.. "

어렴풋 그의 말이 이해가 된다.     그저 스쳐가는 그런 인연이 아닌, 내 옆을 지켜주고 싶다는 뜻으로 들린다.

따지고 보면 아빠가 돌아 가셨을때도,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때문에 제대로 된 병원 치료조차 받지를 못했다.

그 곁을 지키며, 오래동안 병 간호를 해야 했던 엄마도 가난을 피해 도망간 것이나 다를바 없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때마저, 집안 식구들 중 누구 하나 나한테 신경을 써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로 인해 공부는 당연히 뒷전으로 밀려 났고, 마지 못해 편의점 알바를 전전해야 하는 신세가 된지도 모른다.

윤수를 만나게 된 원인 역시, 어찌보면 열흘치 알바비를 준다는 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했던게 이유였다.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친구라면, 꼴난 30만원에 자기 몸까지 팔진 않았을 것이다.

" 고맙긴..  내가 고맙지.. "

" 그럼, 우리 비긴거네.호호.. "

서로가 통한다는 그의 말 뜻도 이제사 이해가 된다.    소주 맛이 달게 느껴진다.     

" 맞아, 비긴거야..   그러니까 비싼 옷 사 줬다고 너무 부담갖지 마..   너는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

" 솔직이 아직은 어색해..   윤수랑 친구한다는게.. "

" 뭐랄까..   그냥 널 따라 다니는 그림자라고 생각해, 항상 니 편이 되어주는 그림자.. "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돈 몇푼에 몸을 팔았다는 자괴감이 들어 마음이 편할수만은 없었다.

해서 나이가 많은 그의 이름까지 불러가며 애써 무시를 하기도 했다.      단순히 내 몸뚱아리만을 노리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내 입장까지 헤아려 주고자 하는 사람이기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중이다.

" 그림자라..  내 그림자..  윤수야 ~ "

" 왜? "

" 나 좀 업어 주라.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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