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삶의 무게 6

바라쿠다 2012. 11. 3. 11:59

해장국집에서 선지국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백화점에 도착했다.

평일인지라 부동산 가게를 비워둘수 없기에, 12시까지는 들어가 봐야 한다는 윤수다.

" 저거야? "

" 응.. "

이른 오전이라 백화점은 한산하다.    여성복 코너를 돌다, 전에 봐 뒀던 매장앞에서 그 패딩을 가르켰다.

" 그럼 입어 봐야지..  들어가자.. "

" 정말 사 줄거야? "

" 당연하지..  아가씨 저것 좀 꺼내줘요.. "

" 네, 어서오세요..   따님이 참 이쁘시네요.. "

눈치없는 매장 직원이지만 그나마 딸이라고 오해를 해 주는것이 더 마음 편하다.

" 어서 입어 봐.. "

" 응.. "

여지껏 이렇듯 비싼 옷은 입어 본 적이 없는 수진이다.    맘에 드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던 윤수지만, 이 순간 만큼은

다정다감한 사람으로 보인다.

" 어때? "

" 어울리네, 그걸로 하자..   그냥 입고가.. "

" 너무 비싸잖어.. "

고맙긴 하지만 괜시리 미안하다.    윤수에게 하등 좋은 감정을 품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 그게 뭐가 비싸?    다른것도 사 줄텐데.. "

" 또, 뭘.. "

" 저 쪽에 수진이한테 어울려 보이는 가죽쟈켓이 있더라..   거기 한번 가 보자구.. "

" 어머~ 따님은 좋겠다..  그거 엄청 비쌀텐데.. "

매장 직원의 부러움을 뒤로 하고 앞서 걷는 윤수를 따라야 했다.

" 저거야.. "

" 어서오세요, 손님.. "

가죽 제품만 취급하는 매장에 들어섰다.      가죽으로 만든 온갖 제품들이 가게 안에 가득 진열돼 있다.

" 어머..  이건 더 비싸.. "

그가 어울릴것 같다는 쟈켓의 텍을 보니 75만원으로 찍혀 있다.      방금 전에 산 패딩만도 30만원이다.

어려서부터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사촌언니의 옷을 얻어 입곤 했다.     어쩌다 모직으로 된, 겉 옷이나마 사 입게

됐을때도 그 가격은 5만원이 넘지 않았다.     그만큼 빈곤하게 살아왔던 수진이다.

" 일단, 입어 보라니까.. "

" 손님, 이리오세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패딩은 벗으시구요.. "

 

패딩은 입고, 입고 갔던 옷과 가죽쟈켓은 쇼핑백에 담았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내려오며 그의 팔에 매달렸다.

" 고마워, 오빠.. "

" 오빠라니..  갑자기 웬 오빠? "

값 비싼 패딩에 가죽자켓까지 얻어입은 터에, 오빠라는 명칭이 부르기가 편할듯 싶었다.

" 그게 더 났잖어, 남들이 듣기도 그렇고.. "

" 오빠가 더 이상하지..   그냥 윤수라고 불러, 난 그게 편해..  니 덕분에 젊어지는 느낌이야.. "

" 하여간 이상하다니까..   나랑 친구하자고 할때부터.치이 ~    알았어,고마워 윤수야.. "

" 이제 신발사러 가자.. "

" 또? "

" 그래, 신발이 낡았잖어.. "

" 신발 사주면 도망간다던데.호호.. "

세심하게 보살펴 주려는 그가 고맙게 보인다.     졸지에 돌아가신 아빠 대신에, 맘 편히 응석을 부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도망가도 돼.. "

" ....................... "

" 니가 내 옆에 있어 좋긴 하지만, 내 욕심만 차릴수는 없잖어..   언제든지 좋은놈 나타나면 도망가, 마음이야 좋지

않겠지만 어쩌겠냐..   내 욕심땜에 니 앞길까지 막을수는 없는 노릇이고.. "

여지껏 나이 어린 여자만 밝히는 한심한 꼰대로만 치부했었다.    오늘에사 처음으로 그의 속마음이 궁금해 진다.

비싼 선물을 받았대서가 아니라, 내 미래까지 염두에 둔 듯한 말투에 그가 새롭게 보인다.

" 진짜로 애인이 생기면 어쩔려구 그런다니.. "

" 할수없지, 뭐..   보내줄수 밖에.. "

그의 배려가 고마워 나도 모르게 짖궃어 진다.     버릇없는 말이나, 맘에 없는 행동까지 그가 감싸주리란 믿음마저 든다.

" 피이~ 날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    나 같으면 붙잡고 늘어질텐데.. "

" 너무 좋아해서 탈이지..   수진이가 무슨짓을 하던 미워하지 못할걸? "

 

1층에 있는 나이키 매장에 들어섰다.

보기만 해도 탐이 나는 운동화들이 너무 많아 고르기가 쉽지 않다.

" 저거 어때? "

그 중 밑창에 에어 효과가 있는 운동화를 들고는 윤수에게 의향을 물었다.

" 신발은 봐선 모르는 법이야, 직접 신어 봐.. "

" 제가 봐 드릴께요, 발 싸이즈가 몇이죠? "

" 좀 큰데..  245.. "

어느틈엔가 남자 직원이 다가와서는 운동화을 뺏어든다.     제법 옷차림도 깔끔하고 호감이 가는 스타일이다.

" 아, 여깄네요..  신어보세요.. "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발목을 잡아 끌어서는 신발을 신기운다.     처음 본 남자의 손길이 닿아서인지 조금은 어색하다.

" 손님한테 딱이네요.후후.. "

" 어때? "

" 안 어울려.. "

" 내가 보기엔 이쁜데.. "

" 다른 매장도 둘러보자구.. "

뭔가 기분이 나쁜듯, 아직 신발도 바꿔 신지 않았건만 휭하니 매장을 나가 버리는 윤수다.

" 왜그래, 갑자기.. "

휘적휘적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윤수의 팔을 꿰어찼다.

" 기분 나빠, 그자식..  수진이 발을 멋대로 주무르잖어. "

" 호홋~ 그래서 삐졌어?    좋은 놈 있으면 따라 가라며.. "

그제서야 윤수가 뒤도 안보고 매장을 벗어 난 이유를 알것 같았다.

" 그거랑은 틀리지..  내가 보고 있는데.. "

건너편 라인에 있는 아디다스 매장으로 들어간 윤수가, 맘에 드는 신발을 골라들고는 직접 내 발에 신키운다.

" 어때?   어울리지 싶은데.. "

" 몰라, 니 맘대로 해..   싫다고 하면 삐질거잖어.호호.. "

" 이걸로 싸 주세요.. "

윤수의 고집에 못이겨 화장품 코너까지 가야 했고, 덕분에 여러개로 늘어난 쇼핑백을 들고서야 백화점을 나섰다.

" 참, 생일이 언제야? "

" 12월 3일..   왜? "

" 얼마 안 남았네..  수진이는 발이 이뻐서 힐을 신어도 이쁠거야..   그 때 생일 선물로 사줄께, 밍크 쟈켓이랑.. "

" 밍크 쟈켓?    그거 엄청 비싸다고 하던데.. "

" 괜찮어..  수진이한테는 아깝지 않으니까.. "

분에 넘치는 사람을 만났지 싶다.    비록 나와 함께 할 짝은 아니지만, 그가 베풀어 주는 친절이 너무나도 고맙다.

" 오늘 가게 쉬면 안돼?   같이 있고 싶은데.."

이미 1시가 지난 시간이지만, 이대로 그와 헤어지는게 못내 섭섭하다.

" 쇼핑백이나 집에 가져다 놔..  이따 일찍 만나서 바람이나 쐬러 가게.. "

 

'삶의 무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의 무게 8  (0) 2012.11.07
삶의 무게 7  (0) 2012.11.04
삶의 무게 5  (0) 2012.11.02
삶의 무게 4  (0) 2012.11.01
삶의 무게 3  (0) 2012.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