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삶의 무게 4

바라쿠다 2012. 11. 1. 09:42

아침부터 혈압이 오를만큼 충격을 받은 윤수다.    

집에 있는 금고가 열려져 있고, 그 곳에 있던 금붙이가 몽땅 없어졌다.

"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 니 나이가 몇인데 그따위 짓을 하는건지.. "

" 그럼 어쩌라구요, 진작에 차를 사 주던지.. "

하나밖에 없는 아들 녀석이 도둑놈이었다.     백일과 돐 잔치때 들어온 금반지와, 몇십년 동안 모아 두었던 패물을 몽땅

훔쳐간 것이다.

" 근데, 이 놈의 자식이 뭘 잘 했다고 꼬박꼬박 말대꾸까지 하는거야?   당장 도로 가져와..  경찰서에 신고하기 전에.. "

" 맘대로 하세요..   난, 엄마한테 갈테니까.. "

" 거긴 뭣하러 가?    니 엄마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

" 그래도 아빠처럼 짜게 굴진 않더라..   몰라요, 아빠하고는 아예 대화도 안 되잖아..   갈래요.. "

" 저, 저 괘씸한 녀석.. "

가게문을 열고는 뒤도 안 보고 도망을 간다.    전 처와 이혼을 한 뒤로 사고만 치면 그 쪽으로 달아나곤 한다.   

너무 받들어 주며 키웠지 싶다.     외아들이다 보니 웬만한 잘못은 모르는 척 했고, 친구들 사이에서 기 죽지 말라고 용돈도

듬뿍 쥐어줬다. 

농사를 짓는 부모 밑에서 어렵사리 학업을 마쳐야 했던 아픔이 있었기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에게 잘 해 준다는 것이

부작용이 되어 돌아 온 것이다.

 

" 수진씨~ 커피.. "

아침부터 일진이 사나울것 같아 짜증부터 난다.      편의점에 출근해서 막 일을 시작하려는데 첫 손님이 진상 덩어리다.

" 직접 가져 오시죠.. "

" 너무 그러지 마, 오늘 기분도 별론데.. "

한번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저 따위 인간땜에 하루의 기분을 망쳐 버리기는 싫다.

~ 그래, 참자..   지 애비하고 같이 잔 여자도 몰라보는 철부지 자식.. ~~

진열 냉장고에서 커피를 꺼내 카운터에 올려 놓았다.

" 천원 입니다.. "

" 누가 이걸 달랬어..  따뜻한 커피로 줘.. "

" 어제는 이걸로 가져 갔잖어요.. "

" 여자가 그렇게 눈치가 없냐..   딱 보면 몰라?    따뜻한 걸로 줘.. "

" ....................... "

다시 한번 성질을 죽이기로 했다.     참을 인을 수없이 되뇌이며 커피를 바꿔 줬다.

" 수진씨..  우리 드라이브 갈래? "

" ..됐거든요.. "

" 영광으로 알아야지, 차 뽑아서 처음 태워 주는건데.. "

편의점 바깥에 흘깃 눈길을 돌리니, 검은색 구형 그랜저가 서 있다.

" 뽑은게 아니고 중고네, 뭐.. "

" 그렇게 보이지?     에잉~ 꼰대가 짠돌이라.. "

" 아빠가 사 줬나 보네요.. "

" 아냐, 훔쳤어.. "

" ........................ "

도대체가 개념이 없는 인간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알아 들을수도 없다.

" 어쩔거야?    드라이브 안 가? "

" 어머, 내가 그 차를 왜 타요..   별꼴이야, 정말.. "

" 되게 비싸게 노네..  그럴 인물도 아니구만, 쯔쯔.. "

" 여보세요 ~ "

어릴때부터 악바리 소리를 듣던 내가 무던히도 참았었다.     가게가 떠나 가도록 소리를 질러댔다.

" 왜 불러..  부르지 마, 정 들어.후후.. "

꼭지가 돌만큼 화를 돋궈 놓고는, 정작 진상은 느물거리며 편의점을 빠져 나간다.

 

" 나야.. "

~ 웬일이야? ~~

오래 전에 갈라선 애 엄마에게 핸폰을 했다.     돈 씀씀이가 헤퍼서 절제가 안되던 마누라였다.

" 정호놈이 또 사고를 쳤어.. "

~ 무슨 일인데.. ~~

" 집에 있는 패물을 몽땅 들고 나갔어.. "

~ 당신한테 차를 사 달랬는데 안 된다고 했다면서.. ~~

자식놈이 저렇게 대책없이 커 버린데는 애비인 내 책임도 있겠지만, 아들 말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여편네의 잘못이

더 크다.

" 매일 빈둥거리는 놈한테 뭣땜에 차까지 사서 바치냐? "

~ 그 돈, 죽을때 싸 가지고 갈래?    하나밖에 없는 아들한테 뭐가 아깝다고,쫀쫀하게스리.. ~~

" 아니, 근데 이 여편네가..   그 돈이 니 돈이냐?     에미나 자식이나 그저 돈만 밝힌다니까.. "

~ 그래..  평생 돈이나 끼고 살아라..   진작에 갈라서길 잘했지.. ~~

" 애 좀 달래 봐, 당신한테 간다고 하드만.. "

그나마 지 에미 말이라면 끔찍이 따르는 아들놈이다.    여편네를 달래고자 했다.

~ 몰라, 나도..  당신이 알아서 교육을 시키든가..  끊어, 나 바빠.. ~~

하도 울화가 치밀어서 통화를 했다가 기분만 더 잡친 셈이다.      도대체가 여자라는게 사근사근한 맛이 없다.

그에 비할바가 아니지만, 수진이가 떠 오르자 금새 맘이 평안해 진다.     느즈막히 행운이 찾아온 듯 싶다.

넘보지 못할 나이지만, 수진이 주위를 맴도는 것 만으로도 기쁨이 샘 솟는다.     그저 보기만 해도 좋았다.

 

소득도 없이 통화가 끝났을 때, 책상위에 놓아 두었던 핸폰이 울어댄다.

~ 나야.. ~~

" 우리 공주님이 웬일이실까? "

깨물어 주고 싶도록 이쁜 수진이다.      그녀의 목소리만 들어도 금새 기분이 좋아진다.

~ 아들 교육 좀 똑바로 시켜.. ~~

" ............................ "

짧은 시간에 아들 교육 운운하는 소리를 거푸 들어야 했다.

~ 나한테 드라이브를 가자네..~~

" 이런, 썩을 놈이.. "

~ 자기 아빠 친구한테 버릇없이.. ~~

" 미안해..  나중에 혼내 줄테니까 맘 풀어.. "

짐짓 토라진 듯 싶은 수진이를 달래야 했다.     갖은 공을 들여 간신히 꼬셨는데, 물거품으로 만들순 없는 노릇이다.

~ 나, 내일 놀아.. ~~

" 그래?   그럼, 오늘 바람이나 쐬러 나가면 되겠네.후후.. "

어찌할수 없을만큼 그녀가 소중해 진다.     그녀를 위해 모든걸 쏟아부어도 아깝지가 않을듯 싶다.

그런만큼 그녀의 말 한마디,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눈에 밟힌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수만 

있다면 못할 짓이 없다는 생각이다.    

 

못된 진상한테 받았던 수모를, 윤수에게 대신 퍼 부었더니 조금이나마 후련해 진 수진이다.

" 어서오세요, 담배 드릴까요? "

그동안 눈여겨 보았던 고시룸이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 여기 혹시 쓰레기통 있나요? "

" 그런건 안 파는데..  얼마나 커야 하는데요? "

" 방에 놓으려고 그러는데.. "

" 그냥 하나 드릴께요, 잠깐만요.. "

본사에서 나온 비매품 중에서 남는 쓰레기통이 있었다.     창고에서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 이거 미안해서.. "

" 신경쓰지 마세요..  마침 남는게 있어서 드리는거니까.. "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순박해 보인다.     저 큰 키에 어린애마냥 수줍어하는 것이다.

" 술 마실줄 아세요?    고마워서 한잔 사고 싶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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