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혈압이 오를만큼 충격을 받은 윤수다.
집에 있는 금고가 열려져 있고, 그 곳에 있던 금붙이가 몽땅 없어졌다.
"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 니 나이가 몇인데 그따위 짓을 하는건지.. "
" 그럼 어쩌라구요, 진작에 차를 사 주던지.. "
하나밖에 없는 아들 녀석이 도둑놈이었다. 백일과 돐 잔치때 들어온 금반지와, 몇십년 동안 모아 두었던 패물을 몽땅
훔쳐간 것이다.
" 근데, 이 놈의 자식이 뭘 잘 했다고 꼬박꼬박 말대꾸까지 하는거야? 당장 도로 가져와.. 경찰서에 신고하기 전에.. "
" 맘대로 하세요.. 난, 엄마한테 갈테니까.. "
" 거긴 뭣하러 가? 니 엄마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
" 그래도 아빠처럼 짜게 굴진 않더라.. 몰라요, 아빠하고는 아예 대화도 안 되잖아.. 갈래요.. "
" 저, 저 괘씸한 녀석.. "
가게문을 열고는 뒤도 안 보고 도망을 간다. 전 처와 이혼을 한 뒤로 사고만 치면 그 쪽으로 달아나곤 한다.
너무 받들어 주며 키웠지 싶다. 외아들이다 보니 웬만한 잘못은 모르는 척 했고, 친구들 사이에서 기 죽지 말라고 용돈도
듬뿍 쥐어줬다.
농사를 짓는 부모 밑에서 어렵사리 학업을 마쳐야 했던 아픔이 있었기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에게 잘 해 준다는 것이
부작용이 되어 돌아 온 것이다.
" 수진씨~ 커피.. "
아침부터 일진이 사나울것 같아 짜증부터 난다. 편의점에 출근해서 막 일을 시작하려는데 첫 손님이 진상 덩어리다.
" 직접 가져 오시죠.. "
" 너무 그러지 마, 오늘 기분도 별론데.. "
한번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저 따위 인간땜에 하루의 기분을 망쳐 버리기는 싫다.
~ 그래, 참자.. 지 애비하고 같이 잔 여자도 몰라보는 철부지 자식.. ~~
진열 냉장고에서 커피를 꺼내 카운터에 올려 놓았다.
" 천원 입니다.. "
" 누가 이걸 달랬어.. 따뜻한 커피로 줘.. "
" 어제는 이걸로 가져 갔잖어요.. "
" 여자가 그렇게 눈치가 없냐.. 딱 보면 몰라? 따뜻한 걸로 줘.. "
" ....................... "
다시 한번 성질을 죽이기로 했다. 참을 인을 수없이 되뇌이며 커피를 바꿔 줬다.
" 수진씨.. 우리 드라이브 갈래? "
" ..됐거든요.. "
" 영광으로 알아야지, 차 뽑아서 처음 태워 주는건데.. "
편의점 바깥에 흘깃 눈길을 돌리니, 검은색 구형 그랜저가 서 있다.
" 뽑은게 아니고 중고네, 뭐.. "
" 그렇게 보이지? 에잉~ 꼰대가 짠돌이라.. "
" 아빠가 사 줬나 보네요.. "
" 아냐, 훔쳤어.. "
" ........................ "
도대체가 개념이 없는 인간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알아 들을수도 없다.
" 어쩔거야? 드라이브 안 가? "
" 어머, 내가 그 차를 왜 타요.. 별꼴이야, 정말.. "
" 되게 비싸게 노네.. 그럴 인물도 아니구만, 쯔쯔.. "
" 여보세요 ~ "
어릴때부터 악바리 소리를 듣던 내가 무던히도 참았었다. 가게가 떠나 가도록 소리를 질러댔다.
" 왜 불러.. 부르지 마, 정 들어.후후.. "
꼭지가 돌만큼 화를 돋궈 놓고는, 정작 진상은 느물거리며 편의점을 빠져 나간다.
" 나야.. "
~ 웬일이야? ~~
오래 전에 갈라선 애 엄마에게 핸폰을 했다. 돈 씀씀이가 헤퍼서 절제가 안되던 마누라였다.
" 정호놈이 또 사고를 쳤어.. "
~ 무슨 일인데.. ~~
" 집에 있는 패물을 몽땅 들고 나갔어.. "
~ 당신한테 차를 사 달랬는데 안 된다고 했다면서.. ~~
자식놈이 저렇게 대책없이 커 버린데는 애비인 내 책임도 있겠지만, 아들 말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여편네의 잘못이
더 크다.
" 매일 빈둥거리는 놈한테 뭣땜에 차까지 사서 바치냐? "
~ 그 돈, 죽을때 싸 가지고 갈래? 하나밖에 없는 아들한테 뭐가 아깝다고,쫀쫀하게스리.. ~~
" 아니, 근데 이 여편네가.. 그 돈이 니 돈이냐? 에미나 자식이나 그저 돈만 밝힌다니까.. "
~ 그래.. 평생 돈이나 끼고 살아라.. 진작에 갈라서길 잘했지.. ~~
" 애 좀 달래 봐, 당신한테 간다고 하드만.. "
그나마 지 에미 말이라면 끔찍이 따르는 아들놈이다. 여편네를 달래고자 했다.
~ 몰라, 나도.. 당신이 알아서 교육을 시키든가.. 끊어, 나 바빠.. ~~
하도 울화가 치밀어서 통화를 했다가 기분만 더 잡친 셈이다. 도대체가 여자라는게 사근사근한 맛이 없다.
그에 비할바가 아니지만, 수진이가 떠 오르자 금새 맘이 평안해 진다. 느즈막히 행운이 찾아온 듯 싶다.
넘보지 못할 나이지만, 수진이 주위를 맴도는 것 만으로도 기쁨이 샘 솟는다. 그저 보기만 해도 좋았다.
소득도 없이 통화가 끝났을 때, 책상위에 놓아 두었던 핸폰이 울어댄다.
~ 나야.. ~~
" 우리 공주님이 웬일이실까? "
깨물어 주고 싶도록 이쁜 수진이다. 그녀의 목소리만 들어도 금새 기분이 좋아진다.
~ 아들 교육 좀 똑바로 시켜.. ~~
" ............................ "
짧은 시간에 아들 교육 운운하는 소리를 거푸 들어야 했다.
~ 나한테 드라이브를 가자네..~~
" 이런, 썩을 놈이.. "
~ 자기 아빠 친구한테 버릇없이.. ~~
" 미안해.. 나중에 혼내 줄테니까 맘 풀어.. "
짐짓 토라진 듯 싶은 수진이를 달래야 했다. 갖은 공을 들여 간신히 꼬셨는데, 물거품으로 만들순 없는 노릇이다.
~ 나, 내일 놀아.. ~~
" 그래? 그럼, 오늘 바람이나 쐬러 나가면 되겠네.후후.. "
어찌할수 없을만큼 그녀가 소중해 진다. 그녀를 위해 모든걸 쏟아부어도 아깝지가 않을듯 싶다.
그런만큼 그녀의 말 한마디,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눈에 밟힌다.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수만
있다면 못할 짓이 없다는 생각이다.
못된 진상한테 받았던 수모를, 윤수에게 대신 퍼 부었더니 조금이나마 후련해 진 수진이다.
" 어서오세요, 담배 드릴까요? "
그동안 눈여겨 보았던 고시룸이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 여기 혹시 쓰레기통 있나요? "
" 그런건 안 파는데.. 얼마나 커야 하는데요? "
" 방에 놓으려고 그러는데.. "
" 그냥 하나 드릴께요, 잠깐만요.. "
본사에서 나온 비매품 중에서 남는 쓰레기통이 있었다. 창고에서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 이거 미안해서.. "
" 신경쓰지 마세요.. 마침 남는게 있어서 드리는거니까.. "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순박해 보인다. 저 큰 키에 어린애마냥 수줍어하는 것이다.
" 술 마실줄 아세요? 고마워서 한잔 사고 싶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