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서와요, 김실장.. "
좋은 일이 있다며 자신의 아파트로 오라는 엄미리와 통화를 하고는 곧장 달려왔다.
먼저번처럼 들이대면 혼쭐을 내 줄 생각이다. 나이도 많은 여자가 밝혀도 너무 밝힌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현관에서 맞이한 엄미리가 몸을 돌리자, 거실 쇼파에 또 한명의 여자가 앉아 있는게 보인다.
" 이리 와 앉아, 뭐 마실거라도 드릴까? "
" 그냥 커피나 한잔 주시죠.. "
" 우선 인사나 해, 이서영이라고 내 후배야.. 얘도 옛날엔 잘 나갔지.호호.. "
그리고 보니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다. 의외로 잘 나가던 배우가, 왕왕 아무런 이유없이 사라지기도 하는 세상이다.
" 반가워요.. "
" 네, 반갑습니다.. "
고개만 까딱거린 이서영의 눈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다 본다. 전체적으로 갸름하니 이쁜 얼굴이다.
" 며칠전에 라운딩 나갔다가 만났거든.. 우리 사무실 소속이 되고 싶다고 하길래.. "
" 아, 그래요.. 저야 당연히 환영이죠.. "
" 내가 나갈만한 작품은 있나요? "
" 글쎄요.. 사극 한번 해 보실래요? "
좀 전에 박태수가 전해준 작품이 떠 올랐다. 그 쪽에서 원하는 나이와 뉴 페이스란 이미지가 맞아 떨어질 듯도 싶다.
" 서영이가 작품을 많이 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 전엔 날리던 애야.. "
" 일단 한번 해 보시죠, 뭐.. 이서영씨가 잘 소화하면, 더 좋은 배역도 올테고.. "
" 그래, 한번 해 봐.. 난 집에만 있으려니까 좀이 쑤시더라.. "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엄미리가 중견급 탈렌트를 물어다 준 것이다. 거기다가 업서버 역할까지 자처하고 있다.
" 계약 조건은 어찌.. "
" 지지배.. 그냥 실장님이 시키는대로 해, 그런 욕심은 없는 사람이라니까.. "
" 그러세요, 모르긴 해도 딴 사무실과는 틀릴겁니다.. 그게 내 소신이기도 하고.. "
" 언제 시간한번 내 줘라, 남자가 너무 무심해도 못쓰는 법이야.. "
내일쯤 엄미리와 이서영이 사무실로 들리겠다는 약속을 받고 그 집을 나서자, 엄미리가 엘리베이터까지 따라 나와서는
서운함을 토로한다.
" 조만간에 한번 들릴께요.. "
어느정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유독 얻어 먹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는걸 알게 됐다.
내 쪽에서 그런 맘이 들었을땐 새로이 사귀는 사람에게서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나름 사무실에 도움을 줬으니 응당 그에 맞는 포상은 해야 할 것이다.
" 이런 시간에 어쩐 일이야? "
일치감치 사무실에 나갔더니 배기태가 와 있었다.
" 실장님 좀 뵈려고.. "
" 이리 들어 와.. "
남선배가 쓰는 사장실로 그를 데리고 들어갔다. 연희에게는 그가 애 딸린 유뷰남인걸 알게 해서는 곤란하다.
" 그래, 무슨 일인데.. "
" 저기.. 와이프한테 들었어요, 실장님이 신경을 많이 써 주셨다고.. "
친척 형님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는 바람에 많이 고마워했던 배기태의 와이프였다. 더불어 앞으로는 말도 안되는
치료비를 물지 않아도 될 것이고, 훨씬 가능성 있는 치료 방법까지 들었던 것이다.
" 당연한 일을 한거야.. 이제부터 우린 한 식구잖어.. "
" 말도 안되는 조건으로 들어와서 미안한데, 우리 애까지 챙겨주시고.. "
" 괜찮어, 열심히 해서 돈이나 많이 벌어.. 앞으로도 애한테 돈이 많이 들어갈텐데.. "
" 제 후배가 몇명 있어요.. 조만간에 TV에도 나올겁니다.. 걔네들이 아직 소속사가 없걸랑요.. "
" ....................... "
" 실장님이 연습실 하나만 구해주면 걔네들하고 계약하기가 쉬울텐데.. "
" 몇명이나 되는데.. "
" TV에 나오는 애들이 3명이고, 꾸준히 연습하는 애들도 4명이나 있어요.. "
" 그래, 고맙다.. 되도록 빨리 구해 볼께.. "
" 미스최.. 우리 사무실 임대료가 얼마야? "
배기태가 최순호와 함께 사무실을 나가자 미스최를 불렀다.
" ....5천에 100인데.. "
" 오피스텔이 비어 있는게 있을려나? "
" 왜요? "
" 왜긴, 하나 더 얻을려고 그러지.. 관리 사무실에 전화 넣어 봐.. "
개그 연습실이라면 멀리 구할 필요는 없을것이다. 이곳에서도 방송국이 있는 여의도가 가까워 움직이기 쉬울것이다.
집기도 별로 필요치 않을것이고, 벽에는 통으로 된 거울만 부착해도 훌륭하지 싶은 생각이다.
" 네.. "
" 그리고 계약서 몇장 더 준비해.. "
" 네.. "
이제서야 사무실이 활기를 띠는 모양새가 되는듯 하다. 박태수와 사극 연출을 한다는 친구도 만나야 할 것이다.
" 내일쯤 고태산씨도 한번 들어오라고 하고.. "
" 네.. "
아무래도 나보다는 발이 넓을 고태산에게, 엑스트라로 쓸만한 친구들이 있는지 알아볼 요량이다.
" 웬일이래, 여기까지 찾아오고.. "
백미경의 무대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업소로 마중을 갔다. 로리와 엘리야도 같이 나왔다.
" 맛있는거 사주고 싶어서.. 싫어? 싫으면 말고.. "
" 누가 싫댔나, 남자가 삐지기는.. "
" 시간 늦었으니까 사 가지고 가자구.. "
" 숙소로 가게? "
" 그래야지.. 로리하고 엘리야도 그게 편할거구.. "
" 오케이, 콜 ~ 호호.. "
옆으로 오더니 팔짱까지 낀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취객들의 발걸음도 바빠지는 시간이다.
영등포 시장 안에 위치한 참치집에서 2인분을 포장시켰다. 숙소로 오면서 길에서 파는 떡볶기와 순대도 샀다.
세 여자가 화장을 지운다고 씻고 있는 사이, 식탁 위에 사 가지고 온 참치와 안주들을 올려놨다.
" 오늘 무슨 날이야? "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말아 올린 그녀가 식탁에 앉는다.
" 날은 무슨.. "
" 안하던 짓을 하니까 그렇지.. 마중도 와 주고, 술상도 차리고.. 원래가 쌀쌀맞은 남잔줄 알았는데.. "
" 술이나 한잔 받어.. 다음부터는 마중 갈일 없을거야.. "
괜시리 다정다감한 이미지로 비치기는 싫다. 그녀와 몸을 섞기는 했지만, 인연으로 맺어질 사이가 아닌바에야
어떤 기대감이 생기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소주잔을 마주치고 한잔씩을 털어 넣었다. 로리와 엘리야가 욕실에서 나와 식탁에 함께 앉았다.
" 미경씨.. 탈렌트 한번 해 볼래? "
" 탈렌트? "
" 응.. TV에 얼굴을 비치면 출연료가 더 올라갈지도 모르잖어.. "
그녀를 만나야 했던 용건을 꺼냈다. 새로이 한솥밥을 먹게 될 이서영과 한 작품에 출연시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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