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장난이 아냐

사는게 장난이 아냐 12

바라쿠다 2012. 10. 21. 15:48

배기태와 헤어지고 곧 바로 그의 집으로 향했다.

프라임의 식구가 된 만큼 그의 모든걸 파악해야 한다.    당사자의 말만 듣고서 관리를 할수는 없는 것이다.

신길동 우신 초등학교 건너편 골목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배기태의 집은, 그래도 제법 잘 나간다는 개그맨치고는

사는 형편이 너무 궁핍해 보인다.

서울특별시에 아직도 이런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오래된 단독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골목길 역시 손수레

하나가 겨우 지나칠 정도로 좁아 보인다.

" 안녕하세요? "

" 어서오세요, 안 그래도 기태씨한테 핸폰이 왔었어요..   소속사가 생겼다고.. "

그 골목길을 꺽어 들어간 곳에 위치한 배기태의 집으로 사들고 간 과일 바구니를 내밀었다.

귀염성 있어 보이는 젊은 부인 옆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발달 장애로 보이는 애기가 장난감을 입에 물고 있다.

" 얘가 기태씨 아들이네요.. "

" 네.. 지금 막 병원에서 왔어요.. " 

가져간 과일 바구니에서 사과와 배를 깍아 내 온 배기태의 부인에게서 많은 얘기를 들을수 있었다.

그녀보다 두살이나 어린 배기태를 알게 된건 5년전이었다고 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만 졸업하고 공장에

다니던 그녀에게, 당시 고 1이던 배기태가 다가 왔단다.

처음엔 누나라고 부르며 붙임성있게 굴던 배기태와 2년여를 만나는 사이 어느새 연인이 되었단다.

둘 다 형편이 어려운 탓에 신림동 고시촌에 쪽방 하나를 얻어 같이 살기 시작했고, 자신이 공장에 다니면서 살림을 맡던

중에 배기태가 방송국에 전속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도 알뜰하게 모은 돈으로  전세를 얻은 것이지만, 애가 태어난 후로는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배기태가 밤 업소까지 나가면서 벌기는 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질 않는다는 것이다.

" 다니는 병원이 어딥니까? "

 

" 미스최~ 고태산씨 좀 들어오라고 해.. "

미용실에 다녀 왔는지 보기 좋던 생머리가 퍼머 머리로 변해 있었다.

" 네.. "

처리 할일이 많아 일찍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고태산의 소개로 배기태를 잡았으니, 그에게도 응당 고마움을 표하기로

마음 먹었다.     인력 자원이 부족한 프라임으로선 그게 맞지 싶었다.

" 혹시, 중고차 취급하는 사람 알어?

" 중고차요? "

미스최가 탁자에 커피를 내려놓고는, 은근 슬쩍 건너편 쇼파에 엉덩이를 붙인다.

" 그래, 봉고를 하나 사야겠어.. "

" 중고차 시장에서 경리를 보는 친구가 있긴 있는데.. "

" 연락해 봐..   그리고 운전기사가 필요한데.. "

" 월급은 얼마나 주실건데요? "

" 글쎄..   얼마나 줘야하나.. "

" 동생이 놀고 있걸랑요, 한 180정도는 줘야 할텐데.. "

" 그 친구도 와 보라고 해.. "

배기태에게 기사가 딸린 차를 하나 내 줄 생각이다.      바쁘게 업소들을 돌려면 기동성도 있어야 하고, 낮 시간에는

배기태의 와이프도 병원에 실어다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참,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었어요..   조연출이래요, 엄미리씨가 출연했던 테잎이 있냐고.. "

" 그걸 이제 얘기하면 어떡해?     그런건 즉시 알려 줘야지, 일이 제일 먼저잖어.. "

" .....죄송해요.. "

무엇보다 일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이다.     어려운 일을 따내기 위해, 먹기 싫은 술도 마셔야 할 때도 많을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미스최가 얼굴이 굳어서는 발끝을 내려다 보고있다.     내심 측은하게 보인다.

" 미스최는 머리를 묶고 있는게 더 이뻐.. "

분위기를 바꿔 주고는, 신문사 기자인 황철호에게 핸폰을 걸었다.

 

" 반갑습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네요.. "

" 나도 반가워요, 앞으로 잘 부탁합시다.. "

" 야, 말 놔.. 직계 후배야.. "

철호와 방송국 PD인 후배 박태수를 만났다.     학교 후배라지만 처음 대면하는지라 철호를 끼워 넣은것이다.

" 그래도..  이거 초면에 아쉬운 부탁을 하게 돼서 면목이 없구만.. "

" 웬걸요..  황선배한테 받은 도움에 비하면 별거 아닙니다.. "

" 됐고, 술이나 마시자..   앞으로 서로가 도우면 잘 되겠지.. "

마침 동창놈 중 하나가 운영하는 스테이크 집이다.     나름 산지에서 올려 왔다는 고기가 먹을만 하다.

해외의 체인점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시점에서, 고기의 질로 승부를 하겠다는 집념때문인지 손님이 많은 편이다.

" 고기가 맛있네요..  이번 작품이 끝나면 이곳에서 쫑파티를 할까 봐요.. "

" 그래, 진짜 맛있어..   나도 애들 데리고 한번 와야겠다.. "

" 니가 그렇게 가정적이었냐?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일세.후후.. "

같이 어울려 술 문화에 젖다 보면 제일 신이 나서 날뛰던 녀석이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둘이나 낳았으니 대견해

보이기도 했지만, 아직도 기회만 있으면 여자 꽁무니를 쫒아 다니는 녀석을 놀려주고 싶었다.

" 왜 이래..  내가 집에서는 잘 한다구, 우리 와이프는 내가 최고라더라.후후.. "

" 니 와이프하고 만나면 안 되겠다, 벌써부터 내 입이 근질거려.후후.. "

" 에라이, 나쁜 놈아..  친구한테 협박질이나 하고..  이런 놈이 뭐가 이쁘다고 후배까지 소개시켜 줬으니.. "

은근한 암시를 해 대자, 속이 타는지 불만을 토해 낸다.     말이 그럴뿐이지 의리만큼은 지키는걸 알기에, 농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것이다.

" 황선배 비리를 알면 저한테도 귀띔 좀 해 주시죠..  저도 복수를 할일이 있거든요.. "

" 어 ~ 박PD 까지 그러면 안되지..    이거 친구들도 못 믿겠으니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사누.. "

" 그러니까 적당히 해, 와이프한테도 더 잘하구.. "

황기자 덕에 방송국에 쓸만한 연줄이 생겼다.     박PD를 눈여겨 보기로 작심했다.

그를 통해 다른 연줄을 만들수도 있을것이다.     나름대로 소득이 많은 술자리다.

" 나중에라도 가능성있는 신인이 있으면 데려오세요.. "

헤어지면서 박PD에게서 반가운 소리도 들을수 있었다.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중고 봉고차를 사야 했고, 미스최의 친동생을 배기태의 전속 매니저로 쓰기로 했다.

사무실에 들른 고태산에게 일종의 특혜를 주기로 했다.     좋은 후배가 있으면 또 다시 소개를 시켜 달라는 말도 빼

놓지 않았다.

" 미스최, 나 좀 다녀올께.. "

" 어디 가시는데요? "

" 병원에.. "

" 어머..  어디 아프세요? "

" 응..  맘이 아프네.후후.. "

" ..................... "

집안 친척 형이 이름 깨나 날리는 의학박사다.      그와 의논을 할 일이 있는것이다.

" 무슨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해.. "

" 네, 걱정마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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