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연애 26

바라쿠다 2012. 10. 18. 01:54

" 일어나.. "

곤하게 자고 있다가 졸지에 눈을 떠야 했다.      여진이 년이 침대 모서리에 앉아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 왜 꼭두 새벽부터 깨우고 난리야? "

여진이야 11시도 못 돼 쓰러졌지만, 철수와 뒤엉키느라 새벽 2시가 넘어 잠 들었지 싶다.

" 이 년이, 지금이 몇신데 새벽은..   빨리 나와서 밥 먹어.. "

" 난 더 자야 돼, 이 년아..   쳐 먹을거면 너나 먹든가.. "

" 철수씨가 너 없으면 같이 안 먹는대, 빨리 나와.. "

할수없이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나서야 했다.      여진이는 식탁에 앉아있고 철수가 밥통에서 밥을 떠 담는 중이다.

된장찌개가 먹음직스럽게 김이 올라오고, 생선까지 노릇하니 구워져 기름이 흐른다.

" 왜 깨워?   더 자야 하는데.. "

" 여진씨가 배 고프다잖어..   할수없이 아침 차렸지.. "

" 이 년이 이제 아침밥까지 축내네.. "

" 그럼 어쩌냐..   배는 고파 죽겠고, 철수씨는 니가 없으면 안 먹겠다는데.. "

요 근래 일찍 일어나 본 기억이 없다.      철수가 가게로 나가고도 10시가 넘어서야 일어나곤 했는데, 여진이 때문에

8시도 못 돼 일어난 것이다.

" 이왕 일어났으니까 한술 떠.. "

" 아주 웃기는 년이라니까..   철수씨는 지 먹여 살리겠다고 새벽부터 설치고 다니는데, 여자라는게 남자 출근하는데도

침대에서 쳐 자고 있으니.. "

" 저 년이 또 아침부터 긁어대네..   니가 왜 참견이야, 이 년아.. "

" 그만하고 빨리 와, 나 가게 나가봐야 돼.. "

할수없이 식탁에 앉아 먹기싫은 밥을 먹어야 했다.      입안이 깔깔해서 밥 맛이 없다.

 

" 내가 도울 일이 없을까? "

할일도 없고 무료한 김에 점심시간에 맞춰 가게로 나왔다.     밥맛도 없는지라 철수와 외식이라도 할 요량이다.

청소며 빨래까지 철수가 도맡아 하는 덕에 남는 시간이 많기도 했지만, 혼자서 고생하는 철수에게 미안하긴 하다.

" 당신이 뭘 한다고 그래..   그냥 집에 있어, 굶기진 않을테니까.. "

" 하여간에 사람이, 요즘에 굶는 사람 봤어?     혼자 집에 있기 심심하잖어.. "

유기농 가게를 하겠다고 했을때 시큰둥했었다.      그까짓 야채나 과일 팔아봐야 큰 돈이 되지 않을성 싶었기 때문이다.

" 가게에서 전화만 받아줘도 도움은 많이 되지..   그 시간에 돌아다니면 물건도 더 많이 팔테고, 그러면 당신이 좋아하는

돈도 더 벌테니까.. "

" 월급 줄거지? "

"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구만, 월급 타령은.. "

" 앞으로는 그 짓 할때 돈 안 받을테니까 월급은 주라, 응.. "

" 웬일이래, 우리 성희가 신통하게..   근데,월급을 얼마나 달라고.. "

" 여진이 년이 자꾸 놀리잖어, 그 짓 하면서 돈 받는 년이 어딨냐구..   월급은 그냥 알아서 줘, 그냥 해 주면 내가 손해

보는것 같아서 달라는거니까.. "

" 알았어..  당신 말대로 한번 해 보지, 뭐.. "

며칠 하다보니 요령이 생긴다.      어려운 일도 없는 편이다.

주문 전화를 받고서는, 벽에 걸려있는 지도에 표시를 하고 물건의 종류와 수량을 적는다.

철수가 배달을 끝냈다는 확인 전화가 오면, 지도에 적혀 있던 표시를 지우면 되는것이다.

내가 전화를 받아주는 덕에 밖에서의 일이 더 많아진 철수는 왼종일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고, 그만큼 판매량은 늘어갔다. 

더군다나 돈에 대한 소중함까지 알게 됐다.     몇만원짜리 화장품도 거들떠 보지 않던 내가, 무거운 감자 한박스를 팔아

이,삼천원을 남기기 위해 카트에 싣고 근처 식당으로 배달까지 했다.

 

" 자기야..  오늘 꽃등심 좀 먹자.. "

" 웬일로..   당신, 등심은 질겨서 싫다며.. "

가게문을 닫을 시간이 가까웠다.     해가 잛아져서인지 어느새 어둑어둑하다.

" 이따 여진이 올거야, 오늘이 걔 생일이거든..   그 년이 꽃등심을 얼마나 밝히는데.. "

" 만나기만 하면 싸우면서 그런건 잘 챙기네.. "

" 친구라고는 그 년 하나뿐이잖어.. "

" 근데, 욕이라도 빼면 말이 안 되나?

어릴적부터 맘이 통했던 여진이다.      어찌하다 보니 둘다 아픔을 겪었고, 나름 비슷한 처지에다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기에 체면을 차리지 않아 더 편한지도 모르겠다.

" 심심하잖아, 맹숭맹숭하고.. "

" 어이구, 말을 말아야지..   정육점에 다녀 올께.. "

 

철수가 나간 사이에 여진이가 들어선다.     집에서 빈둥대던 대로 츄리닝 차림이다.

" 왜 부르고 지랄이야..   치사하게 밥값까지 내라면서.. "

" 니 귀빠진 날이잖어, 이 년아..   어쩌니, 보기 싫어도 내가 챙겨야지.. "

" 웬일이래, 니가 이렇게 이쁜 짓을 다 하고..   조심해 이 년아, 갈때가 됐는지도 몰라.. "

" 하여간에 말하는 싹퉁머리하고는..    조금만 기다려, 철수씨가 너 먹인다고 꽃등심 사러 갔으니까.. "

" 에고 ~ 하도 고마워서 눈물이 앞을 가리네.. "

밖에 놓여 있는 야채와 과일 상자를 가게안으로 끌어 들였다.     철수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 진작에 이랬어야지 이 년아.. "

무거운 과일 박스를 같이 거들었더니 금새 치울수 있었다.     저쪽에서 철수가 걸어오는게 보인다.

 

" 내가 할테니까 철수씨도 이리 앉아.. "

요 며칠간 가게를 따라 나서고서야, 철수의 하루가 얼마나 바쁜지 몸소 알게 됐다.

하릴없이 집에서 빈둥대던 나와 달리, 새벽부터 저녁까지 혼자 바쁘게 움직였을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피곤에 지쳐 집에 들어와서도, 편히 쉬지도 못하고 중뿔 난 내 재롱까지 받아주면서 싫은 내색 한번 없던 그였다.

주부가 해야 할일을 대신해서, 식사도 챙겨주고 빨래며 청소까지 도맡아 했던 사람이다.

지금도 내 친구 여진이 생일을 챙겨준다며, 케잌까지 사들고 들어와서는 고기를 굽고 있다.

철수의 팔을 끌어 식탁에 앉히고는, 대신 가스렌지 앞에 섰다.

" 쟤가 왜 저런데..   갑자기 사람이 틀려 보이네, 그쵸? "

" 틀려보이긴..   철수씨가 니가 쳐먹을 고기까지 굽는게 싫어서 그러지, 이 년아.. "

" 건드리지 마, 여진씨..   저러다 맘 변하면 나만 손해야.. "

" 철수씨 말대로 건드리지 마, 꼬라지 나면 이나마 안 할테니까.. "

고기를 구워서 식탁위에 놓고는 셋이 마주 앉았다.     철수가 소주병을 들어 여진이와 내 잔에 따라준다.

" 생일 축하 해, 여진씨.. "

" 고마워요, 그래도 철수씨가 최고야.호호.. "

" 이 년이..   철수씨가 니 생일을 어찌 아니?    다 내가 시킨거지.. "

" 그래 고맙다, 주둥아리 닥치고 있으면 내가 모르냐..   이긍 ~ 그저 생색이나 낼려고.. "

한잔, 두잔 술잔이 비워졌다.      요즘 들어 맘이 많이 느긋해 졌지 싶다.      엄마가 요양소에서 있을때와는 마음가짐이

틀려진 것이다.     

모든게 철수의 덕이라고 생각하니 그에게 등한시 했던 지난날이 후회가 된다.

" 근데, 철수씨..   내가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 "

거나하게 술이 취한 여진이가 탁자 위로 몸이 쏠린다.     술이 많이 약해졌지 싶다.

" 저 년이 어디가 그렇게 이뻐요? "

" 그렇게 물어보면 안되지..   안 이쁜데가 어디냐고 물어봐야지.. "

" 그 말이 그 말이지, 뭐..   그래, 어디가 보기 싫은데요? "

" 어쩌누, 아무리 찾아봐도 미운데가 없는데.후후.. "  

" 에고 ~ 한쌍의 바퀴벌레들..   그래, 둘이서 잘먹고 잘 살아라.. "

" 철수씨가 내 똥꼬도 닦아줬다, 히 ~ "

" 뭐야?    어디를 닦아 줬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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