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일하러 가야 돼.. 토요일 만나, 그때 놀아줄께.. "
이여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고, 조금 후에 식당에서 나왔다.
골목 입구에 있는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가 창가쪽에 자리를 잡았다. 막연히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시간이 오후로 접어 들었을 뿐이다. 이어폰을 끼고 그녀의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 뭐 해요? ~~
기다리기가 무료해서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뭐 해? ~~
엉뚱하게 이여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 커피 마시는데요.. ~~
~ 생긴대로 노네.. 남자가 지지배처럼.. ~~
~ 방금 일어났어, 어디야? ~~
~ 정희씨 남편 회사 앞.. ~~
~ 지지배 아닌데.. ~~
정희와 이여사의 메시지에 동시에 답신을 날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 거긴, 왜.. ~~
~ 그래도 남자라고.. 이번 토요일 시간 있어? ~~
~ 무슨일을 하는지 궁금해서요.. ~~
~ 시간은 있는데.. 왜요? ~~
~ 미쳤어.. 어쩔려고 그래.. ~~
~ 누나가 나오라면 그냥 나와.. 이유 달지 말고.. ~~
정신없이 두 곳으로 메시지를 날리고 있을때 이어폰에서 음악이 들렸다. 아마도 남편이 탄 차가 가까이 온듯 싶다.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큰 길에서 들어오는 차량들을 지켜 봤다. 메시지가 계속 들어왔지만 창에서 시선을 뗄수가
없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뒤 그녀 남편의 차가 눈 밑을 지나쳐 자신의 회사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간다.
차를 주차시키는지 주차장 바닥과 바퀴의 마찰음이 들리고, 음악이 꺼지면서 차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린다.
기발한 생각이 떠 올랐다. 그가 차에서 내려 자신의 사무실로 오르는 시간을 계산하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이따 전화할께.. ~~
발신음이 두번 울리고서, 이여사가 소근대듯 한마디 하고는 핸폰을 끊는 와중에 그녀 남편이 외치는 소리도 겁쳐 들렸다.
~ 도대체 일들을 어떻게 하는거야.. ~~
이여사가 남편 회사의 직원인 것이 확실해 진 만큼, 이여사를 통해 남편의 움직임을 어찌해서 전해 들을수 있는지를
고심해야 했다.
"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왜 그곳엘 갔냐구? "
저녁이 다 되어 집에 왔다는 준호의 메시지를 받고 부리나케 다락방으로 올라온 정희다.
" 더 이상 정희씨가 당하는건 못 보겠어요.. "
" 그렇다고 거기를 찾아가?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것도 아니고.. 그러다 그 사람이 알게라도 되면 어쩔려구 그래.. "
진흙탕처럼 엉망인 삶 속에서 준호와의 밀월이 그나마 위로가 되긴 하지만, 그에게 내 삶을 보이는 건 여기까지란 생각이다.
잘못 꼬인 인생은 나만의 책임이고, 더불어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일 것이다.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까지 말도 안되는 구렁텅이로 끌어 들인다는 것은 할 짓이 아닌것이다.
" 어떻게 모른척을 해요? 정희씨를 그렇게 못살게 구는데.. "
" 끼여들지 마, 준호까지 날 비참하게 만들지 말라구.. "
" 이상하다, 오늘은 아저씨가 일찍 오네.. "
노트북 화면에 남편의 차가 골목으로 들어오는게 보인다. 서둘러 다락방을 내려와야 했다.
" 앞으론 그러지 마.. "
사다리 끝에 발을 딛고 한번 더 다짐을 했다. 거실로 내려가는 중에 초인종이 울린다.
" 밥 줘.. 배고파.. "
남편이 욕실에서 씻는 사이, 가스 렌지에 찌개를 올려놓고는 선우를 데리고 내려 왔다.
식탁에 앉은 선우의 표정이 어둡다. 세 식구가 저녁을 먹기 위해 식탁에 모이면 항시 마음이 좋질 못했다.
아빠라고 부르긴 하지만, 자신을 이뻐해 주지 않는 것을 어린것마저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남편이 자리에 앉고 나서야 수저를 드는 선우였다. 카타부타 말도 없이 식사를 시작하는 남편이 야속하기만 했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다정한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식사를 하는 남편에게 주눅이 들어 눈치를 보는 선우를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듯 하다.
" 사내 녀석이 밥 먹는게 그게 뭐냐, 계집애처럼 깔작대기만 하고.. 에잉~ "
" ..................... "
큰 죄나 저지른 것처럼 식탁에 고개를 쳐 박는 선우의 모습에서 또 한번 가슴이 찢어지는 정희다.
"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야? 애 하나 교육도 못시키고.. "
" ....죄송해요.. "
어린 자식이 보는 앞에서 비굴해 질수 밖에 없는 내가 미워진다.
더불어 모든걸 지켜보고 있을 준호에게도 면목이 안 서는 것이다.
" 어디 가? "
" 볼일이 있어요.. "
" 또 거길 가는건 아니지? "
" 네.. "
이여사와 만나기로 한 토요일이다. 정희의 신신당부대로 당분간 남편을 뒤쫒는 걸 그만둬야 했다.
그를 쫒는다 해도 차속에 감춰 둔 감청 마이크만으로는, 여타의 정보를 얻는것에 한계가 있었다.
핸폰이나 그의 사무실에 도청 장치를 숨겨 두는것이 가장 좋기는 하지만 그럴 방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 약속시간은 잘 지키네.. "
" 그런건 잘해요.. "
이여사가 일러준 대로 과천 경마공원 지하철역에서 그녀를 만났다.
" 밤일은 잘해? "
" ...................... "
" 농담이야.호호.. 무슨 남자가 얼굴까지 빨개진다니.. "
자그마한 키에 야구모자까지 눌러쓰고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그녀의 모습대로 털털한 성격으로 보인다.
" 나, 뭐하는 사람이게? "
" .....글쎄요.. "
" 노름하는 여자야, 나.. 그래도 이뻐 보여? "
" .....네.. "
" 준호라고 그랬지, 참 별나다.. 여자를 보는 눈이 특이해.호호.. 따라 와, 노름도 재밌어.. 인생을 걸만큼.. "
그녀를 따라 난생 처음 경마장이란 곳을 구경할수 있었다.
멋들어지게 생긴 말을 타고, 골인 지점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는 기수들에게서 싱싱한 활력이 느껴진다.
한번씩의 경주가 열릴때마다 매표소로 가서 돈을 거는 이여사의 얼굴도 생기로 가득 차 보인다.
" 나랑 내기 한번 할까? 지금 찍은 말이 1등으로 들어오면 내 소원 들어주고, 다른 말이 들어오면 준호의 소원
들어주기, 어때.. "
" .....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