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남편이 운전석 문을 열어 놓은채, 마주 서 있는 두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중이다.
얼굴은 확연하지 않아도, 귀에 꽂은 리시버에 그들의 대화는 또렷이 들려왔다.
" 한눈 팔지 말고 잘들 해.. "
" 네, 사장님.. "
" 먼저처럼 돈 잃지 말고.. "
" 염려 마시라니까요.. "
" 상대의 패를 읽으면서 하는데 어떻게 돈을 잃냐구.. "
" 그 날 이여사가 술이 취해서, 그만.. "
"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게임을 하는데 술을 쳐 마셨다는 말이야? "
" 저, 그게.. "
" 이것들이 정신이 있는거야, 뭐야.. 지금은 바빠서 가지만 내일 얘기하자.. "
" ....................... "
승용차에 올라선 그녀의 남편이 차를 움직여 큰 거리로 나선다. 뒤를 쫒기위해 빈 택시를 찾아 봤지만 보이질 않는다.
저 멀리 사라져 가는 차를 보며 마음만 조급해 진다. 그때 남편이 어디로 핸폰을 하는지 이어폰에 컬러링이 들려 왔다.
~ 왜.. ~~
" 나야.. 지금 갈테니까 기다려.. "
~ 알았어.. ~~
스피커 폰을 통해 들려오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에서 되바라진 느낌을 받았다.
다음에 올땐 택시라도 대절 해 놔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서는데, 좀 전 남편과 얘기 중이던 직원인 듯한 친구들이 골목을
나서는게 보인다.
모른척 하고 그 들을 지나치고는, 잠시 뒤 걸음을 돌려 그들을 따르기로 했다.
큰 길가로 나와 한참을 걸어 내려가던 그들이, 골목길로 접어들더니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선다.
어째야 할지 망설이다가, 일단은 그네들에게서 남편에 대한 정보를 얻을수도 있지 싶어 들어가 보기로 했다.
" 어서오세요.. "
테이블이 4개뿐인 식당은 작고 아담했다. 주방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반기는 소리를 흘리면서,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는 그네들의 뒤쪽으로 등을 지고 앉았다.
" 오늘은 두 사람 뿐이네.. "
" 네, 백반하고 소주 하나 주세요.. "
자주 오는 단골집이란걸 그들의 대화에서 충분히 알수 있었다.
" 돈도 많이 번다면서 삼겹살이라도 시키지.. 손님은 뭘로 드릴까? "
" 선지국 하나 주세요.. "
" 근데, 사장 너무 짜게 노네.. 우리가 벌어 주는게 얼만데, 도통 성과급도 없고 말이야.. "
등 뒤에서 들려오는 직원들의 얘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촉각을 기울였다.
" 그렇지? 우리 배당금이 나온지 두 달도 넘었지, 아마.. "
" 들어온 액수를 뻔히 아는데, 핑계만 대고 말이야.. "
" 그 소문 들었어? "
" 무슨.. "
" 이여사가 그랬잖어, 사장한테 세컨드가 생겼다구.. "
" 원래가 밝히는 인간이잖어.. 그 인간 여자가 하나둘인가.. 그 전에 회식할때 데려갔던 그 룸의 마담도 사장 애인이라고
하던데, 뭐.. "
" 그나저나 왜 여직원을 안 뽑나 몰라.. 미스 홍이 그만 둔지가 언젠데.. "
그들의 뒤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온 보람이 있었다. 그들이 나눈 얘기의 요지가 인터넷을 통해 불법 도박을 하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듯 싶었고, 여자 문제가 다소 복잡한 느낌도 받았다.
더 자세한 사실을 알고 싶어, 식당을 나선 그들의 뒤를 쫒아 사무실이 몇층인지 확인까지 했다.
" 못 됐어.. 변태.. "
" 별거 아닌데, 뭐.. 난, 재밌기만 하던데.후후.. "
저녁 10 시가 넘어 집에 들어 왔다고 준호에게서 핸폰이 왔다. 선우를 재우고 집안 문단속을 끝낸 시간이다.
대문을 통하지 않고도 다락방까지 올라간 준호의 동선이 궁금했던 참이다.
" 이해가 안돼.. 어떨 땐 진짜 박사님 같기도 하고, 이런 짓을 할때 보면 영락없는 철부지구.. "
짖궃게 술이 취해 정신없이 널브러 진, 그 모습을 담아놓은 준호가 얄밉던 참이다.
" 정희씨는 이게 창피해? "
" 당연하지, 못 볼 꼴을 보인건데.. "
모니터에 세숫대야를 중심으로 크게 크로즈 업이 됐고, 그 뒤로 멀찌감치 한쪽 무릎을 올리고 적나라하게 치부를 드러낸
흉한 내 모습이 민망스럽기만 하다.
" 난, 이 사진이 제일 맘에 들어요.. "
" 좋기도 하겠네.. 취향도 특이 하다니까.. "
" 이건 말이죠, 단순히 이 사진만 보고 얘기하면 안돼요.. "
" ....................... "
" 이 사진을 찍기 전에 정희씨랑 나랑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그때 정희씨의 감정은 어땠는지 그걸 떠 올려 주는 사진이란
말이죠.. 일종의 추억이랄까.. "
"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저 꼬락서니를 하고있는 내 생각은 해 봤어? "
" 어때서요? 저 사진처럼 인간적인 것도 없을텐데.후후.. "
" 놀려 먹느라고 좋기도 하겠다.. 에휴~ 변태.. "
준호의 장난끼 어린 투정을 받아주며, 자질구레한 얘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에 핸폰이 울린다.
" 남편이 오늘 못 들어온다네.. "
" 가끔 외박도 했나 봐요.. "
" 응.. 회사일이 바쁠 땐, 가끔.. "
"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지도 모른다면서.. "
남편의 차를 큰 길에서 놓쳤을 때, 그와 통화를 했던 젊은 여자가 누구인지 못내 궁금하던 참이다.
" 그게 뭐가 중요해, 알고 싶지도 않고.. 그나저나 오늘 이 곳이 내 보금자리네.. "
" 나, 술 한잔 하고 싶은데.. "
" 웬일이래.. 몇 잔만 마시면 취하는 사람이.. "
" 나도 취해서 세숫대야에 소변 좀 보려구요.후후.. "
자기 멋대로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 남편의 행실을 모르는 정희가 안 돼 보인다.
" 못 됐어.. 자꾸 놀리구.. "
정희가 주방에서 가져 온 술과 안주를 사다리 밑에서 받아 다락방으로 올렸다.
" 저 사진 좀 치워.. 컴퓨터를 끄던지.. "
" 싫어요.. 오히려 술이 더 땡길것 같은데.. "
예상 했었지만 그녀 남편의 어긋난 짓을 보고난 뒤라 개운치가 못했다. 눈치채지 못하게 위로라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