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남자

숨겨진 남자 15

바라쿠다 2012. 10. 6. 21:36

그녀의 남편이 운전석 문을 열어 놓은채, 마주 서 있는 두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중이다.

얼굴은 확연하지 않아도, 귀에 꽂은 리시버에 그들의 대화는 또렷이 들려왔다.

" 한눈 팔지 말고 잘들 해.. "

" 네, 사장님.. "

" 먼저처럼 돈 잃지 말고.. "

" 염려 마시라니까요.. "

" 상대의 패를 읽으면서 하는데 어떻게 돈을 잃냐구.. "

" 그 날 이여사가 술이 취해서, 그만.. "

"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게임을 하는데 술을 쳐 마셨다는 말이야? "

" 저, 그게.. "

" 이것들이 정신이 있는거야, 뭐야..    지금은 바빠서 가지만 내일 얘기하자.. "

" ....................... "

승용차에 올라선 그녀의 남편이 차를 움직여 큰 거리로 나선다.       뒤를 쫒기위해 빈 택시를 찾아 봤지만 보이질 않는다.

저 멀리 사라져 가는 차를 보며 마음만 조급해 진다.       그때 남편이 어디로 핸폰을 하는지 이어폰에 컬러링이 들려 왔다.

~ 왜.. ~~

" 나야..  지금 갈테니까 기다려.. "

~ 알았어.. ~~

스피커 폰을 통해 들려오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에서 되바라진 느낌을 받았다.

다음에 올땐 택시라도 대절 해 놔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서는데, 좀 전 남편과 얘기 중이던 직원인 듯한 친구들이 골목을

나서는게 보인다.      

모른척 하고 그 들을 지나치고는, 잠시 뒤 걸음을 돌려 그들을 따르기로 했다.

 

큰 길가로 나와 한참을 걸어 내려가던 그들이, 골목길로 접어들더니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선다.

어째야 할지 망설이다가, 일단은 그네들에게서 남편에 대한 정보를 얻을수도 있지 싶어 들어가 보기로 했다.

" 어서오세요.. "

테이블이 4개뿐인 식당은 작고 아담했다.      주방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반기는 소리를 흘리면서,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는 그네들의 뒤쪽으로 등을 지고 앉았다.

" 오늘은 두 사람 뿐이네.. "

" 네, 백반하고 소주 하나 주세요.. "

자주 오는 단골집이란걸 그들의 대화에서 충분히 알수 있었다.      

" 돈도 많이 번다면서 삼겹살이라도 시키지..   손님은 뭘로 드릴까? "

" 선지국 하나 주세요.. "

" 근데, 사장 너무 짜게 노네..   우리가 벌어 주는게 얼만데, 도통 성과급도 없고 말이야.. "

등 뒤에서 들려오는 직원들의 얘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촉각을 기울였다.

" 그렇지?  우리 배당금이 나온지 두 달도 넘었지, 아마.. "

" 들어온 액수를 뻔히 아는데, 핑계만 대고 말이야.. "

" 그 소문 들었어? "

" 무슨.. "

" 이여사가 그랬잖어, 사장한테 세컨드가 생겼다구.. "

" 원래가 밝히는 인간이잖어..  그 인간 여자가 하나둘인가..   그 전에 회식할때 데려갔던 그 룸의 마담도 사장 애인이라고

하던데, 뭐.. "

" 그나저나 왜 여직원을 안 뽑나 몰라..   미스 홍이 그만 둔지가 언젠데.. "

그들의 뒤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온 보람이 있었다.      그들이 나눈 얘기의 요지가 인터넷을 통해 불법 도박을 하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듯 싶었고, 여자 문제가 다소 복잡한 느낌도 받았다.

더 자세한 사실을 알고 싶어, 식당을 나선 그들의 뒤를 쫒아 사무실이 몇층인지 확인까지 했다.

 

 

" 못 됐어..  변태.. "

" 별거 아닌데, 뭐..  난, 재밌기만 하던데.후후.. "

저녁 10 시가 넘어 집에 들어 왔다고 준호에게서 핸폰이 왔다.      선우를 재우고 집안 문단속을 끝낸 시간이다.

대문을 통하지 않고도 다락방까지 올라간 준호의 동선이 궁금했던 참이다.

" 이해가 안돼..   어떨 땐 진짜 박사님 같기도 하고, 이런 짓을 할때 보면 영락없는 철부지구.. "

짖궃게 술이 취해 정신없이 널브러 진, 그 모습을 담아놓은 준호가 얄밉던 참이다.

" 정희씨는 이게 창피해? "

" 당연하지, 못 볼 꼴을 보인건데.. "

모니터에 세숫대야를 중심으로 크게 크로즈 업이 됐고, 그 뒤로 멀찌감치 한쪽 무릎을 올리고 적나라하게 치부를 드러낸 

흉한 내 모습이 민망스럽기만 하다.

" 난, 이 사진이 제일 맘에 들어요.. "

" 좋기도 하겠네..   취향도 특이 하다니까.. "

" 이건 말이죠, 단순히 이 사진만 보고 얘기하면 안돼요.. "

" ....................... "

" 이 사진을 찍기 전에 정희씨랑 나랑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그때 정희씨의 감정은 어땠는지 그걸 떠 올려 주는 사진이란

말이죠..   일종의 추억이랄까.. "

"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저 꼬락서니를 하고있는 내 생각은 해 봤어? "

" 어때서요?   저 사진처럼 인간적인 것도 없을텐데.후후.. "

" 놀려 먹느라고 좋기도 하겠다..   에휴~ 변태.. "

준호의 장난끼 어린 투정을 받아주며, 자질구레한 얘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에 핸폰이 울린다.

 

" 남편이 오늘 못 들어온다네.. "

" 가끔 외박도 했나 봐요.. "

" 응..  회사일이 바쁠 땐, 가끔.. "

"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지도 모른다면서.. "

남편의 차를 큰 길에서 놓쳤을 때, 그와 통화를 했던 젊은 여자가 누구인지 못내 궁금하던 참이다.

" 그게 뭐가 중요해, 알고 싶지도 않고..   그나저나 오늘 이 곳이 내 보금자리네.. "

" 나, 술 한잔 하고 싶은데.. "

" 웬일이래..   몇 잔만 마시면 취하는 사람이.. "

" 나도 취해서 세숫대야에 소변 좀 보려구요.후후.. "

자기 멋대로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 남편의 행실을 모르는 정희가 안 돼 보인다.

" 못 됐어..   자꾸 놀리구.. "

정희가 주방에서 가져 온 술과 안주를 사다리 밑에서 받아 다락방으로 올렸다.

" 저 사진 좀 치워..   컴퓨터를 끄던지.. "

" 싫어요..  오히려 술이 더 땡길것 같은데.. "

예상 했었지만 그녀 남편의 어긋난 짓을 보고난 뒤라 개운치가 못했다.    눈치채지 못하게 위로라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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