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남자

숨겨진 남자 17

바라쿠다 2012. 10. 11. 10:54

" 어디 가? "

" 일이 있어요.. "

밖으로 나간다고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는 준호다.

" 그럼 미리 얘기를 했어야지..   같이 먹으려고 다 차려 놨는데.. "

다락방에서 준호와 함께 하얗게 밤을 지새웠다.     그를 만난 이후로, 어제처럼 야수로 보인적이 없었다.

가지고 올라간 양주를 다 비우고도, 술이 모자라 한병을 더 가져갔을 만큼 그와 밤새 얘기를 나누고 거친 몸 싸움도 했다.     

술에 취한 준호가 몇번인지도 모를만큼, 용케 쾌락을 안겨주는 바람에 아직도 그곳이 퉁퉁 불은 느낌이다.

그에게 시달림을 당하기는 했지만, 결코 잊을수 없는 황홀한 밤이었다.

여명이 밝고서야 단잠에 떨어진 준호다.     어렵사리 다락방을 내려와서는 선우를 챙겨주고, 한숨도 못 잔 상태에서 그를

위해 아침상까지 차려놓고 그가 잠에서 깨길 기다렸다.

자꾸만 눈꺼풀이 내려 앉아 힘들었지만, 그를 챙겨줄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런 그를 위한 노력이 물거품이 되려한다.      마음 한구석에 서운함이 생긴다.

" 조금이라도 먹고 가지..   난 한숨도 못 잤는데.. "

나이어린 준호에게 앙탈을 부린 여자가 된것 같아, 내심 개운치가 못한 심정이다.

" 그랬어요?    미안해요, 정희씨 땜에 나가는 건데.. "

" .................... "

" 나중에 설명 해 줄께요..   이리와요.. "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올라온 준호가 자신을 품속에 가둔다.     넓은 그의 가슴에 안기자 잠이 쏟아지려 한다.

" 일찍 올께요, 잠이나 자 둬요.. "

이마에 뽀뽀를 해 주더니 다시 신발을 신는 준호다.     현관을 나서는 그를 멀거니 지켜봐야 했다.

기껏 차려놓은 음식이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대충 치우고 다락방으로 올랐다.     그의 체취라도 맡고 싶었다.

 

사당역 근처에서 렌터카를 빌렸다.      그녀 남편의 행실을 알기 위해 그의 동선을 따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시가 짹에 가방에서 꺼낸 위치 추적기를 꽂았다.     반경 1키로를 넘지만 않는다면 그를 추적할수 있을것이다.

어제 왔던 회사 건물에 도착을 했는데도 그의 승용차는 보이지 않았다.

그 건물과 가까운 유료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미리 식사라도 해 둬야 했다.

어제 선지국을 먹었던 식당으로 들어섰다.      이른 시간이라 하나의 테이블에 모자를 쓴 여자 손님이 하나 있을 뿐이다.

선 머슴처럼 밀리터리 야구모자에 카키색 점퍼를 입었지만, 언뜻 보이는 옆 얼굴의 윤곽이 뚜렷하니 미인형이다.

" 또 오셨네..  선지국 드릴까? "

" 네.. "

" 이 근처에 계시나 보네, 자주 와요..   잘 해 드릴께.. "

족히 70 가까이는 돼 보이는데 기억력이 보통이 아니다.     두번째 왔을 뿐인데도 먹은 음식까지 기억을 한다.

" 네.. "

옆에서 묵묵히 식사를 하던 여자 손님이 힐끗 내 쪽을 쳐다보더니, 이내 다시 자신의 식탁으로 눈을 돌린다.

" 이여사..  요즘 미스 홍이 통 안보이네..  외상값이 만만치 않은데.. "

" 얼만데.. "

어제 회사 직원들이 얘기한 이여사와 동일 인물인 듯 싶고, 경리 여직원까지 거론이 된다.

" 벌써 30만원이 넘어.. "

" 내가 저녁에 줄께요, 미스 홍이 그만 뒀거든..  소주나 하나 줘요.."

" 왜 그만 뒀대..  이쁘고 참하드만.. "

" 그러니까 그만 뒀지.. "

" ....그건 또 뭔 소리래? "

이여사의 테이블에 소주를 가져다 놓은 주인 할머니도 궁금증을 못 참는다.

" 노인네는 몰라도 돼.. "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없는 여자로 보인다.     움직임이나 하는 말투가 남자다운 구석이 있다.

 

" 저기..  실례가 안 된다면, 그 술 내가 사면 안 될까요? "

나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평상시에는 도저히 있을수 없는 행동을 저지른 것이다.   아마도 그녀의 남편에

대한 궁금증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 몇살이죠? "

" 32인데.. "

" 애들이네..  분위기도 나하고 틀리고.. "

" .................... "

첫 만남이지만 그녀에게 주눅이 든다.     나에 대한 일방적인 평가도 그렇거니와, 뭐라고 할수 없을만큼 카리스마가 있다.

" 그렇찮어..   꼭 샌님처럼 곱상하니, 내 스타일은 아니야..   이리 앉아요, 술 친구를 뿌리치는 건 그러니까.. "

" 실례 하겠습니다.. "

그녀 앞에 마주 앉았다.     고개를 갸웃하더니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 뭐야, 이 말투는..  특이하네..  솔직하게 말해 봐, 직업이 뭐야? "

" 저기..  소리로 먹고 사는데요.. "

" ................... "

" 그러니까 가수는 아니고.. "

" 됐어..  경찰도 아닐테니까..   술이나 마셔.. "

그녀가 내미는 술잔에 잔을 부딛쳤다.      차를 끌고 왔기에 술을 마셔서는 안 되지만 궁금증은 풀어야 했다.

" 이제 술 친구끼리 대화 좀 할까?    왜 나랑 술이 마시고 싶었을까.. "

" 그냥..   그러니까..   웬지 끌려서.. "

정곡을 찔린것 같아 나도 모르게 말까지 더듬게 된다.     내 속을 들여다 보는것만 같아 언변조차 조심스러워 진다.

" 노름 좋아해? "

" 아뇨.. "

" 그럼, 내가 이뻐? "

" ....네.. "

" 호호호..   재밌다..  내가 이쁘게 보인다~호호.. "

" ................... "

한번 시작된 그녀의 웃음이 그치지를 않는다.      머쓱한 기분이 되어 그저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 정말 오랜만이네..   내가 여자였었는지 기억조차 없는데.호호.. "

" ................... "

" 술도 잘 못하지?    술잔은 입에도 안 대고..  반말해서 미안한데 그 쪽보다 10살이 많어.. "

" 괜찮습니다..  편하게 하셔도.. "

" 날 여자로 봐 준다는데 매정하게 굴수도 없고..    여자 친구도 없어? "

" 네.. "

" 이상하네, 여자 애들이 좋아하게 생겼구만..   다른데서 찾아 봐, 난 남자가 귀찮은 사람이야.. " 

" 진짜, 이쁜데.. "

이왕지사 이여사와 안면을 텄으니, 무턱대고 들이대 보기로 했다.

" 그래서, 어쩌라구..  열살이나 어린데, 나더러 귀여워라도 해 달라는 거야? "

" ....네.. "

" ....호호호..   정말 대책없는 총각이네.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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