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연애 19

바라쿠다 2012. 10. 7. 22:57

철수에게 메시지를 보내고는 마음을 졸인 성희다.

여진이에게서 전해 들어서가 아니라, 그간 철수 생각이 날때마다 미안한 마음이었다.

처음에는 일관되게 철수를 무시하기로 작정하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의 본심을 알고는 흔들리기도 했다. 

전혀 아닌듯 냉정한 태도로 일관했지만, 자신을 이뻐해 준 철수에게 몹쓸 짓을 시켜놓고 무덤덤 할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메시지를 보낸 후 30 여분이 지나 집으로 오겠다는 그의 핸폰을 받고서, 뜬금없이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수가 없다.

누구에게도 티를 내지 않았지만, 사실 철수의 한결같은 배려에 감복까지 했던 성희다.

반반한 미모를 앞세워 못된 짓을 부탁 했을때, 공무원 생활에 피해가 가는 줄 뻔히 알면서도 앞뒤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일을 처리해 줬다.      

그가 절절히 원했던 동반자로서의 인연이 안 된다는걸 알면서도, 자신을 위해 선뜻 큰 돈까지 내 주어 전세 아파트까지

마련해 준 사람이다.

그 동안 그의 한결같은 마음씨에 많이 흔들렸던건 사실이지만, 그의 앞에 나설 면목이 없었음이다.

 띵 ~ 똥 ~~ 띵 ~ 똥 ~~ 

안방에서 상념에 잠겨 있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 어서 와.. "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그를 기다려, 좁은 주방의 식탁에 앉게끔 했다.      많이 마셨는지 술 냄새가 코를 찌른다.

" 맥주 줄까? "

" 아니..  술 많이 했어..  금방 가야 돼, 무슨 일이야.. "

예전 같지 않은 그의 냉담한 태도에 당황스럽다.     그런 그의 싸늘한 반응에 어찌 대처를 해야 할지 막막하다.

" 철수씨 생각 많이 했어..   아까 사표 냈다길래..   미안하고..  고맙고.. "

" 다 끝난 일이잖어..  이제와서 돌릴수도 없는게고.. "

" 저기..  내 잘못은 잘 알지만..   그 전처럼 편하게 지내면 안될까? "

뻔뻔스럽다고 욕을 먹을수도 있겠지만, 다감하게 마음을 녹여주던 예전의 철수가 그립다.

" 왜..  뭣 땜에 그래야 하는데.. "

" ................... "

너무나 쌀쌀맞게 변한 그가 전혀 다른 사람인 양 낯설다.      내 맘대로 쥐고 흔들던 철수가 아니다.

" 어차피 성희씨는 나하고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잖어, 이제 와 다시 만난다는게 의미도 없을테고.. "

" 철수씨한테 말은 안 했지만, 요즘 많이 힘들었어..   이럴 자격은 없겠지만 철수씨한테 위로라도 받고 싶었어.. "

그에게 기대고 싶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보이지 않는 미래가 어둡기만 했던 요즘이다.

" 싫어..  지금도 충분히 힘들어.. "

" .................. "

매정한 그의 뿌리침에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 밀려 온다.      내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든 요즈음에, 따뜻한 그의 말 한마디로

위로를 받고 싶었음이다.

" 나, 이만 갈께..  열심히 살아.. "

시야가 뿌옇게 흐려 지면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하염없이 굵은 눈물이 흘러 내린다.

 

식탁에서 일어서긴 했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가 울고 있다.     그토록 도도하고 모질게 굴던 그녀의 큰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고이더니 고개를 숙이고 어깨까지

들썩이며 한스럽게 울고 있다.

평생의 반쪽이라고 믿고 싶던 그녀였다.     평범한 삶보다는 특출난 삶을 원했던 그녀였고, 내가 자격이 없다며 떠나

달라고 매몰차게 나를 몰아세우던 그녀가, 지금 눈 앞에서 서럽게도 울고 있다.

아무리 독하게 마음 먹었다 한들, 한때는 모든걸 다 바쳐 사랑하고픈 여인이었다.     그녀의 눈물에 발이 얼어 붙었다.

한참을 흐느끼던 그녀가, 티슈를 꺼내 눈물과 콧물을 닦더니 조용히 식탁에서 일어선다.

" 미안해..   그만 가 봐.. "

눈과 코까지 벌개진 그녀가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슬픔에 잠겨있는 그녀를 두고 떠날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녀에게 다가가 가만히 어깨를 끌어 안았다.      턱 밑에 그녀의 눈가가 닿아 촉촉함이 느껴진다.

" 왜 이렇게 살어?    보란 듯이 잘 살아야지.. "

그녀의 슬픔이 내 아픔인 양 가슴이 저려온다.      한껏 도도했던 그 모습대로 살아가 주길 바랬던 철수다.

" 이제 괜찮어..  그만 가.. "

" 발이 떨어지게끔 해 줘야 가지..   왜 그래, 왜 이렇게 못났냐구~ "

그녀의 나약한 모습을 보자니 울컥 치밀어 오는게 있었다.      어떤 삶을 원하는지 알수는 없지만 내 삶을 하찮게

여길만큼, 나를 도외시했던 그녀의 쳐 진 모습은 그냥 두고 보기가 힘들 지경이다.

그토록 좋아했던 여자인만큼 행복하게 살아 주기를 바랬다.    비록 나를 형편없고 별 볼일 없는 남자로 매도를 한 그녀지만

그녀의 인생만큼은 장미빛으로 펼쳐지길 바랬다.

" 안 갈거면 맥주나 한잔 해.. "

나를 밀어 낸 그녀가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낸다.      수입 병맥주만을 마시던 그녀였다.

" 맥주가 바뀌었네.. "

" ....며칠있다 이사해..  좀 도와 줄래? "

" 포장이사 시키지 그랬어? "

" 기본적인걸 박스에 담아 놓으면 20만원이나 절약 돼..   그 돈이면 우리 엄마 한달 약 값이야.. "

" ..................... "

" 전세를 얻어줘서 고마워..   덕분에 월세는 안 내도 되니까.. "

일부지만, 그녀의 사생활에 대해 처음 듣는 철수다.     문득 이해할수 없었던 그녀의 사고가 궁금해 진다.

" 어머니가 편찮으신가 보네.. "

" ....오래 됐어..   그 얘기는 그만 하자.. "

 

" 미안해..  괜히 보자고 해서.. "

맥주를 마시기 위해 입에 댄 캔의 금속성 느낌이 싫은 성희다.      날카로움에 베일것 같은 쓰잘데 없는 걱정이 있다.

" 나도 미안해.. 

심하다 싶을만큼 성희에게 쌀쌀하게 굴고 나서 맘이 편할수는 없다.      나와 맺어 지는게 싫다는 여자한테, 좁은 속을

내 보인것만 같아 스스로가 맘에 들지 않는다. 

" 그냥 보고 싶었을 뿐이야.. "

" 난 그게 잘 안돼..   성희씨를 보면 더 힘들어.. "

성희를 잊고자 노력은 했다지만, 아직도 그녀만 보면 뛰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성희 말대로 다시 그녀를

자주 보게라도 된다면, 틀림없이 예전의 감정이 봇물처럼 터져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할게 분명한 까닭이다.

" 그래..  내가 잘못한게 많으니까..   우린 안 맞는 부분이 많어..  

" ...................... "

" 다시 시작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안기고 싶었어, 외로웠거든..   기분 나쁘게 들리겠지만 철수씨가 제일 만만했어..  

아직도 날 이뻐해 줄것 같았구.. "

잔잔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내는 성희를 보고 있자니, 다시금 그녀에게 향한 마음이 솟구치려 한다.

" 이쁘기야 성희만한 여자도 없지..   그래서 안되는거구.. "

" 이해 못하겠어, 날 그토록 이뻐한다면서 한번 안아 달라는데..  처음도 아니구.. "

" 성희를 안느니, 차라리 여자를 돈 주고 사는게 더 편한 사람이야, 나는.. "

그녀를 안으면 틀림없이 애뜻한 감정이 되살아 날 것이다.     그녀를 사랑했다는게 문제다.     

별다른 감정이 없다면, 그녀를 안는것 자체가 한번의 즐거움으로 끝이 날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감정이

가볍지 못한 탓에 또 다시 헤어지는 아픔을 겪을 자신이 없음이다.

그녀가 경외스럽게 보일 정도로, 너무나도 그녀를 사랑했던 까닭이다. 

" 그럼 돈 주고 사..   천원만 받을께.. "

식탁에서 일어 난 그녀가 내 쪽으로 건너와 무릎에 앉더니 목에 깍지를 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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