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연애 18

바라쿠다 2012. 10. 5. 20:26

" 이제 그만 일어나지.. "

" 네.. "

" 저기, 철수씨..  다른 약속이 없으면 우리랑 한잔 더 하지.. "

박과장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철수를 붙잡고 싶은 여진이다.

" ....아뇨..   이만 가 볼께요.. "

망설이듯 주춤하던 철수는 끝내 등을 보이고 돌아선다.     찰나지만 그의 눈빛이 성희에게 향하는걸 볼수 있었다. 

 

" 뭐 땜에 잡어..   서로가 불편한데.. "

" 너도 그러는게 아냐, 이 년아.. "

" .................... "

" 멀쩡한 사람이 저렇게 망가져 가는데 미안하지도 않니? "

화가 치민다.     아무리 친구지만, 저토록 심성이 고운 사람을 나 몰라라 하는 성희가 괘씸하다. 

" 또 그러네, 이 지지배가..  아주 만만한 싹을 봤어.. "

" 됐어, 이 년아..  나쁜 년.. "

" 근데, 이 년이..  너, 자꾸 이런식이면 나 먼저 가 버린다.. "

학창시절에 그토록 착하고 깔끔했던 성희가, 무슨 연유로 이토록 못되게 변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줄지어 쫒아 다니던 남학생들과 어쩌다 데이트라도 하게 되면, 테이블 밑으로 음식값을 몰래 손에 쥐어 줄 정도로 착한

심성을 가진 친구였다.    

그러던 성희가 한번 결혼에 실패를 했다고 해서, 이다지도 망가진 태도를 보인다는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지 싶다.

" 너, 솔직하게 말해봐..  뭐가 너를 바꿔 놨는지, 지금의 너는 예전의 니가 아냐.. "

" .....몰라, 그런거 없어.. "

" 나..   철수씨랑 잤어.. "

" .................... "

성희한테 사실대로 알려주고 싶었다.     같이 밤을 지새고도 성희를 못 잊어 하는 그의 진심을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니가 맘대로 하라고 했잖어..   너무 사람이 괜찮아 보이길래 욕심 한번 내 봤어.. "

" 참..  할말이 없다..  아무리 그래도 친구랑 사귀던 남자를.. "

성희 말대로 할 짓은 아니었지만, 일편단심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이 나에게 꽂혀 주기를 바랬었다.     

아침에 해장을 하면서 어제 밤의 행위가 본심이 아니었다고 사과를 하는 철수에게 서운한 맘도 있었고, 친구인 성희한테

질투를 느끼기도 했지만, 변치 않는 철수의 진심을 확인한 것에 오히려 뿌듯한 마음이었다.

" 니가 싫다고 했잖어..  나도 웬만해선 그러고 싶진 않았는데, 철수씨도 너무 안돼 보이고.. "

" 됐어..  너한테 실망도 했지만, 이제 나하곤 상관도 없는 일이야.. "

" 아냐, 그건..   너하고 상관이 있기 때문에 이 얘기를 하는거야.. "

" 그건 또 무슨 말도 안되는 궤변이야..   너랑 같이 잤다며? "

" 그게 철수씨를 깍아 내리는 이유가 될까? "

" 그럼, 너랑 같이 뒹군 그 사람을 좋게 보란 뜻이야? "

" 당연하지, 세상에 그만한 남자도 없으니까..  너 역시 한 남자만을 위해서 의리를 지키진 않았을게고.. "

" .................... "

" 내가 철수씨랑 그런건 미안해..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 사람한테 너무 욕심이 났어..   잠깐이지만, 너한테 나쁜년이 된 건

감수할께..    그치만, 너도 그 사람에 대해서 너무 모르더라.. "

" 이제 와, 알아서 뭐 하게.. "

" 그 날, 나랑 같이 있기 불편해 하는 그 사람에게 술을 먹였어..   그것도 잔뜩..    얼마나 취했으면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덤비더라..    막상 기분은 별로였어..   나에 대한 애정은 눈꼽만치도 없었고, 그저 한 마리의 수컸이었으니까..    그래도

일말의 기대는 생기더라..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옆에 있는걸 본다면, 미안해서라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을까 싶었어.. "

" .................... "

" 아침을 먹으면서 그 사람이 그러더라..  미안하다고, 나랑은 안 되겠다고..   성희가 자기를 떠났긴 했어도, 너에게 가졌던

마음까지 퇴색되는 건 싫다면서.. "

" .................... "

"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야, 철수씨는..   오히려 너야말로 그 사람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지지배구.. "

" .................... "

 

" 그나저나 보기 좋아요, 형수님도 미인이시고.. "

" 어머..  놀리지 말아요, 내일 모레면 사십인데.. "

시장에서 매운탕 거리를 사 들고 박과장의 아파트로 들어섰다.     작은 아파트지만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있었다.

웃으며 친절히 반겨주는 그녀의 미소도 그렇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박과장의 눈빛도 그렇게 따뜻할수가 없다.      

" 진짠데..  저랑 동갑이라면서 훨씬 젊어 보여요.. "

" 그 말, 믿을께요.호호..   오빠 ~ 술도 사왔지? "

" 그럼..  넉넉해.. "

" 나도 같이 마셔도 되지?  "

" 에그..  그저 술 욕심은.후후.. "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는 박과장, 또 그런 그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녀다.

주방에서 찌개거리를 끓이면서도, 수시로 박과장에게 향하는 눈길은 애뜻한 감정이 실렸음이다.   재미있게 표현한다면,

행여 박과장이 어디로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자꾸 확인이라도 하는듯 싶다.

" 다 됐어요, 이리들 오세요.. "

전골 냄비 뚜껑을 여니 얼큰한 국물이 뽀얀 수증기를 뿜는다.

" 한잔 하자구..   이 사람이 음식솜씨는 없을지 몰라도 분위기는 잘 맞춰.. "

" 에이~ 오빠는..   나를 완전히 술꾼으로 만드네.. " 

" 그랬나..  후후.. "

평소 꿈 꿔 오던 가정생활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진한 애정이 묻어나고, 돈독하다 싶을만큼 아껴주는게 느껴진다.

그녀의 딸까지 안방으로 불러 아저씨랑 제일 친한 분이라며 굳이 인사를 시키자, 제 엄마를 닮아 이쁘장한 아이가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반기기까지 한다. 

부러울 정도로 화목한 집안 분위기에 기분좋게 술이 취해간다.      이렇듯 단란한 생활을 꿈 꿔 오던 철수다.

성희를 만나고 잠깐이나마 그런 희망을 품었더랬다.      하지만, 치사한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 그녀와의 만남은 크나 큰

상처만 남기고 말았다.      

" 근데, 이렇게 괜찮은 분이 왜 여지껏 혼자시래? "

" 우리 김계장이 눈이 좀 높아.후후.. "

" 원, 형님도..  형수님이 오해하시겠어요.. "

그네들에게서 부러움을 느끼며 마신 술로 인해 점점 취해간다.     

" 잠깐만요.. "

맥주까지 마신 탓에 방광이 터질듯 하다.       욕실에 들어가 변기 뚜껑을 열고 지퍼를 내렸다.

참았던 오줌줄기가 시원스레 쏟아진다.       작은 욕실이지만 거울에 비친 그 곳 역시 정갈하게 꾸며져 있다.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볼때도 아늑한 느낌이 들 만큼 깨끗한 공간이다.

바지 앞을 여미는데 핸폰이 떨어댄다.     주머니 속에 있던 핸폰을 꺼내 들었다.      그녀의 메시지다.

~ 잠깐 볼수 있어? ~~

'연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애 20  (0) 2012.10.09
연애 19  (0) 2012.10.07
연애 17  (0) 2012.10.04
연애 16  (0) 2012.10.02
연애 15  (0) 2012.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