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너한테 뻥 칠 사람은 아니잖어.. 열심히 해 봐.. "
" 형이 바람도 잡네.. 내가 무슨 능력이 있다구.. "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 온다. 새로 시작할 일에 나도 모르게 의욕이 생기기도 한다.
" 내가 이 일 말고도 신경 쓸 일이 있어.. 앞으로 미스최하고 잘 꾸려 가 봐.. "
" 형~ 그건 오버지.. 오늘 처음 왔는데.. "
" 미스최가 되도록 빨리 인계를 해 줘.. 잘 모르긴 해도 감이 와.. "
" 몰라요.. 나한테 미루시긴.. "
" 지금처럼만 하면 돼.. 근데, 이 여자는 왜 안 와? "
" 누구.. 백미경씨? "
" 그래.. 업소에 출근하기 전에 들린다고 했는데.. "
" ..................... "
" 우리 사무실 소속 가수야.. 아직 데뷔는 못 했지만.. "
" 참, 사장님도.. 나이가 몇인데 데뷔를 해요.. 은퇴 할 나이도 한참 지났구만.. "
" 너무 그러지 마.. 한번 뜨면 사무실에 도움이 될테니까.. "
" 에궁~ 행여나.. "
그네들의 대화마저 신선하게 느껴진다. 처음으로 접하는 이 곳의 보편적인 일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 어~ 늦었네.. 이리 와.. "
상필이 치켜든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무대복을 입은 여자가 이 쪽으로 오는 중이다.
" 미안해요, 길이 막혀서.. 미스최 안녕? "
" 반가워요, 언니.. "
" 인사들 해요, 앞으로 같이 지낼 김실장이야.. "
" 잘 부탁 드릴께요.. "
" 저도 부탁합니다.. "
사자머리 퍼머를 한 백미경의 미모가 제법 봐 줄만 하다. 겉에 걸치고 있던 점퍼를 벗어 등 뒤 의자에 걸쳤을때 그녀의
아찔한 몸매가 드러났다.
어깨에 걸린 가녀린 끈이 위태로워 보일만큼, 가슴골이 깊게 파인 드레스는 그녀의 바디라인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귀엽게 둥그스럼한 어깨에서 내려오는 팔뚝의 라인도 탱탱하고, 가녀린 손목에서 뻗은 손가락들도 날렵한 편이다.
얼굴에 흐르는 미소마저 은근히 남자를 끄는 매력이 있다. 가지런한 치아도 깔끔하니 윤이 난다.
" 그래.. 어려운건 없죠?
" 네.. 업소 지배인이 신경을 많이 써 주네요.. "
"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 친구한테 얘기하세요.. "
" 네.. "
" 나하고 동창이걸랑.. "
" ..................... "
잠시나마 표정이 어두워 지는 그녀다. 미스최가 그녀와 정산할게 있는지 통장번호를 받아 적는다.
잠시 앉아있던 백미경이 무대에 오를 시간이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상필이 선배도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떳다.
" 실장님 집은 어디세요? "
미스최와 둘만이 있기도 어색한지라 앞에 놓인 잔을 마시고는 일어서야 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왔을 때다.
" 흑석동.. 미스최는? "
" 어머~ 우리집이랑 가깝네요.. 난 상도동인데.. "
" 진짜 그러네.. 상도터널 앞에서 고개만 넘으면 우리집이걸랑.. "
" 그럼, 우리 생맥주 한잔 더 해요.. 내가 살께요.. "
" 어? 그러면 안되지, 술이야 이 후배가 사야지.. "
" 에고, 좋아라.. 제법 쓸만한 후배하나 생겼네.호호.. "
상도역에 있는 호프집에 마주 앉았다. 각기 500짜리 생맥주를 시켰다.
" 미스최 집이 이 근방인가? "
" 아뇨, 장승백이.. 실장님이 너무 많이 걸을것 같아서.. 여기가 딱 중간이잖아요.. "
시원하게 생맥주를 들이 킨 그녀가 입술에 묻은 거품을 훔친다. 성격이 활달해 보이고, 붙임성도 있지 싶다.
" 이런 고마울데가.. 맘씨 고운 선배를 만나 다행이야.후후.. "
" 선배한테 잘 보이면 앞길이 편하다니까요.호호.. "
" 정말 그러네.. 일을 배우려면 우리 선배한테 재롱도 많이 떨어야겠는데? "
" 이제서야 제대로 된 후배를 만났네.호호.. "
사무실 여직원과 친할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곳에서의 모든 흐름은 미스최가
꿰고 있을 터이다.
전반적인 경리 업무나 중간 연락책의 임무까지 맡고 있으리란 짐작이다.
" 사무실이 어떤식으로 유지가 되는지 궁금한데.. "
" 사장님한테 못 들으셨나 봐요? 하기야 별로 내 세울 것도 없으니까.. 조금은 어렵다고 보는게 맞을거예요.. "
그녀에게서 많은 얘기를 들을수 있었다.
사무실과 계약한 가수나 배우들은 대개 5대 5의 개념으로 시작을 한다고 한다. 그들에게서 나오는 수익으로 사무실
임대료와 직원들의 봉급을 충당하지만, 회사 차량같은 유지비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흔히 잘 나가는 가수나 배우들은 개인차량과 운전을 하는 매니저까지 붙여 주지만, 그렇지 못한 소속 연예인들은 스스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그런 특급 대우를 받는 사람은 한사람 뿐이란다.
" 회사가 크려면 인기많은 연예인을 끌여들여야 하겠구만.. "
" 사장님이 노력은 하시지만 쉽지가 않아요.. 그런 연예인들이야 대개 대형 기획사에서 다 틀어쥐고 있어서.. "
" 요즘에는 아이돌이 돈 많이 번다면서? "
" 그게 부익부 빈익빈이라고, 자본이 넉넉해야 신인들을 키우는데 우리 사무실 재력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차라리
이미 뜬 연예인을 스카웃하는게 더 쉬울걸요.. "
" 스카웃이라.. "
" 걔네들도 웬만한 조건으로는 꿈쩍도 않을거고.. "
미스최의 설명으로 조금이나마 윤곽이 잡힌다. 어느 가수가 얼마를 벌었다는 뉴스를 들은 기억이 났다.
웬만한 중소기업의 매출과 맞먹는 액수라 긴가민가 했던 적이 있다. 대기업의 행사에 그 가수를 반나절동안 빌리는
가격이 무려 1억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에 비해 밤무대에서 뛰는 삼류가수의 출연료가 5만원짜리도 있다고 한다.
참으로 불평등한 사회적 모순일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의 척도란 생각이 스친다.
" 미스최 나이를 물어도 될까? "
" 어머.. 감히 후배가 그런 실례를.호호.. 농담이예요.. 꽉 찬 29이죠, 올해.. "
" 나하고 8살 차이네.. 20중반으로 봤는데.. "
" 에고.. 선수 출신처럼 듣기 좋은 소리만.. "
500짜리 생맥주를 두 개나 비워 낸, 그녀의 얼굴에 핀 술꽃이 보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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