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장난이 아냐

사는게 장난이 아냐 1

바라쿠다 2012. 10. 4. 19:43

" 여 ~ 이게 누구야?    한 10년 되나, 얼굴 본지.. "

" 그러네..  그리고 보니 지금 돌아가신 양반, 큰 딸 결혼식때 형을 본것 같은데.. "

" 맞다,후후..  우연치고는.. "

어릴적부터 유달리 친했던 동네 선배인 남 상필이다.     한때는 연예계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다.

" 형이 저 둘째 딸하고 동창이지? "

" 넌 세째랑 동창이고.후후..   그 때가 좋았는데.. "

딸만 내리 다섯을 낳은 딸 부자집이다.      흰 소복을 입은 딸들이 음식을 나르고 있다.

" 요즘도 그 계통에 있는거유? "

" 당연하지..   한번 이 세계에 들어오면 발 빼기 힘들어.. "

" 돈만 많이 벌면 장땡이잖어..   형은 한 밑천 잡았다면서.. "

한때는 오빠부대를 끌고 다니는 잘 나가는 가수와,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두,세편 출연한 여배우까지 휘하에 거느리고

거들먹 거렸었다.

" 옛날 얘기야, 요즘엔 워낙 젊은 친구들이 잘 나가니까 입에 풀칠하기도 쉽지 않다니까.. "

" 전에 키우던 가수들은 계속 형 밑에 있을거잖어.. "

" 야, 말도 마라..   지금은 시대가 달라, 꺼꾸로 걔네들 눈치를 보는 처지라니까..   참, 더러워서.. "

" 난 형이 괜찮은줄 알았지.. "

" 괜찮긴..  일단 술이나 한잔 하자.. "

돌아가신 양반한테 마지막 절을 올리고 나오다 만났기에, 음식이 차려진 구석진 테이블에 앉았다.

" 차 가져온거 아니죠? "

" 대리 부르면 돼..   그나저나 동훈이 너는 요즘에 뭐하냐.. "

" 아직..  시간이나 죽이고 있죠, 뭐.. "

" 참, 내..  결혼은.. "

" 그것도 아직..  누가 나같은 실업자한테 오겠수? "

" 니가 어때서..   집안 빵빵하지, 대학 나온데다 생긴것도 그만하면 빠지지 않고..   너도 어지간히 안 풀린다.. "

" 글쎄 말이유..  나도 왜 이렇게 한심하게 됐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니까. 후후.. "

" 야, 동훈아..  너 취직이라도 하면 어떻겠냐? "

" ................... "

" 그렇잖어..   하는 일이 없으니까 그렇지, 니가 꿀릴 이유가 없잖어.. "

" 에이~ 내 나이가 몇갠데..   받아 줄 곳도 없을테고.. "

" 나랑 같이 있자..   내가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나 모르겠네.. "

 

" 뭐하는 곳이길래 출근시간이 이렇게 늦누? "

" 별거 아녜요, 조그만 개인회사니까.. "

오랜만에 안 입던 양복까지 찾았으니, 모친께서 관심을 가지는건 당연하다.     자세한 얘기를 드리기가 애매하기도 했다.

정오가 돼서 집을 나섰다.      영등포쪽에서 여의도가 바라보이는 오피스텔에 사무실이 있었다.

'프라임 기획'이라는 명판이 붙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사무실 한켠 책상에 앉아있던 아가씨가 고개를 든다.

" 어디서..  혹시, 김동훈씨.. "

" 네, 맞아요.. "

" 대표님께서 말씀하셨어요..  1시쯤 오실거라구..   미스최라구 불러주세요.. "

" 아,네..  반가워요.. "

제법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몸매도 늘씬한 편이다.     긴 생머리를 뒤로 묶어서 그런지 이마도 반듯하니 시원스럽다.

" 이리로 앉으세요, 커피 드릴까요? "

" 네..  부탁할께요.. "

미스최가 커피를 끓이는 동안 사무실을 둘러 봤다.      이십여평 되는 공간에 책상이 두개 있고, 넓직한 쇼파가 사무실

중앙에 자리를 차지했으며, 몇개의 장식장과 캐비넷이 벽에 세워져 있다.  

한쪽 벽에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이 두개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회의실이고 나머지 하나는 상필이 선배가 쓰는 집무실이다.

" 처음이라면서요, 이런 일.. "

" 네.후후..   잘 할수 있을까 걱정이네요..   이 쪽으로 앉아요.. "

내가 마실 커피만 가져다 주고 건너편에서 엉거주춤 서 있는 미스최다.

" 별로 어려운건 없어요..   며칠 지나면 감도 잡힐걸요.. "

긴 쇼파인데도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가지런히 다리를 모은다.

" 미스최는 얼마나 됐어요? "

" 3년..  사무실에서만 있어서 잘은 몰라요.. "

" 그래도 많이 가르쳐 줘요.. "

" 네,물론이죠..  근데, 잘 하실것 같애요..  예감이.호호.. "

30은 넘지 않은듯 싶다.     차분히 대화를 하는 품새가 나이는 어려도 속은 깊어 보인다.

" 호 ~ 예감까지.. "

" 참, 여기에 성함과 핸폰 번호를 적어주세요..   명함을 맡겨야 해서.. "

마침 상필이 선배가 외근 중이라, 사무실이 꾸려지는 것에 대해서는 전반적인 귀 동냥만 할수 있었다.

이상하게 직업에 대한 운이 없었는지 꾸준하게 자리를 잡을수 있는 직업이 없었다.     이제 나이가 37살인데 비해 지금까지

기웃거린 직종이 10가지가 넘는다.

 

" 미안하다, 갑자기 좋은 껀수가 하나 생기는 바람에..    너하고 운대가 맞나 봐..   니가 오자마자 좋은일이 생기니.. "

" 다행이네요, 형한테 도움이 돼야 하는데.. "

저녁 퇴근 시간이 되어, 사무실로 돌아온 선배와 간단하게 한잔 하기로 했다.

" 미스최도 같이 가자..   앞으로 한 식구가 될텐데 환영식은 해야지.. "

" 안 그래도 술이 고팠는데..   콜~ 호호.. "

그들이 이끄는대로 영등포 시장 건너편에 있는 도가니 집에 앉았다.      주인이 반기는 걸로 봐서 단골집인 듯 하다.

" 둘이 서로 면은 텄을테고, 미스최가 여자이긴 해도 통이 크고 판단이 빨라..  앞으로 널 많이 도와줄게다.. "

" 그렇죠?    나도 그렇게 느꼈는데, 처음 봤는데 눈치가 9단이더라구.후후.. "

" 에이~ 우리 김실장님도 아부가 보통이 넘네요.호호.. "

" 어~ 진짠데..  첫날부터 내 진심을 왜곡하네.. "

" 둘이 얼추 맘이 맞아 보여 다행이다..   이 계통은 눈치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어..   서로 잘 맞춰 봐.. "

" 아직 모르겠어요, 솔직이 뜬구름 잡는 것도 같고.. "

" 벌써 알수는 없지, 조급하게 굴지 마..   앞으로도 시간은 많어, 니가 얼마나 소화시키냐가 문제지.. "

" 잘 하시지 싶어요, 내 예감이 어긋난거 보셨어요? "

" 미스최가 그리 봤다면 다행이네..   저 친구랑은 어릴때부터 봐 왔어..   최소한 사무실 분위기는 바뀌지 싶고, 물론

내 바램이긴 하지만.. "

" 처음부터 너무 부담 주지 말아요..  그러다 실망하면 어쩔거유? "

" 아냐, 미스최가 본게 정확할거야..    왜 진작에 널 생각 못했나 몰라, 어릴때부터 남보다 머리가 빠르고 추진력까지

있는 놈인데..   지금부터 하나도 놓치지 말고 모두 배워..   내가 숨쉬는 것까지.. "

" 갑자기 살벌해 지네.후후.. "

" 니가 얼마나 닳고 닳을지는 몰라도, 이 계통에서 이름을 날려 봐..   너 하기에 따라서 대한민국 연예계를 쥐고

흔들수도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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