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사가 빠진 사람이야, 당신은.. 그건 알지? "
이왕지사 치사했던 내 속셈이 드러 난 마당에, 철수에게 구차한 변명까지 한다는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해서 방귀 뀐 년이 성을 낸다고, 철수의 약점이라도 들 쑤셔 이 시간을 모면하고 싶다.
" 맞아.. 아무생각 없어, 당신 밖에는.. "
" ...................... "
또 다시 예상을 깨고 있다. 아무리 심한 말을 해도 노여움을 타지 않는다.
" 나한테 부담 갖지마.. 당신한테 책임없어,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짓이니까.. "
연애라는 감정을 담보로 철수를 속이면서까지 이익을 챙기고, 본인에게 해를 끼치려는 나에게 오히려 위안을 주고자 한다.
" 나랑 섹스하니까 그렇게 좋디? 이리와, 한번 더 대 줄께.. "
어떠한 질책도, 저를 무시하는 언행도 그에게는 통하지가 않는다. 막 나가는 말투로 그를 자극하고 싶다.
" 싫어.. "
" 싫어? "
" ....응.. "
도무지 감을 잡을수 없는 그의 내면속에는, 무엇이 있는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한다.
" 근데, 왜 찰거머리처럼 따라 다녀.. "
" 당신이 좋아서.. "
" 그러니까 한번 더 준다잖어.. "
" 당신의 몸을 좋아하는게 아냐, 그냥 당신을 보고 있으면 좋아서 그래.. 앞으로 안 만나줘도 괜찮어, 그냥 내 머리속에
넣고 있기만 할께.. "
" 진짜 바보네, 멍청한 놈이라구.. "
" 알아, 난 바보야.. "
갑자기 궁금해 진다. 도대체 저 만큼이나 나를 좋아하는 그를, 나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를 파 헤쳐보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
" 벗어.. "
" ........................ "
" 내 말 안들려? 벗으라니까.. "
아무것도 정립이 되질 않아 답답하던 참에 그와 섹스라도 해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그냥 대책이 없는 지금,
이 순간을 견뎌 낼 자신마저 없다.
바지를 벗는 그에게 다가가 팬티까지 벗겨 내렸다. 남들과 다름없이 그 물건은 제자리에서 뻔뻔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다.
" 이 놈만 정상이네.. "
눈을 내리깔고 소심하게 서 있는 그의 물건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것이 손바닥 위에서 딱딱해 지는 중이다.
" 벗겨.. "
" ..................... "
" 왜 이렇게 답답해.. 내 옷 좀 벗기라니까.. "
"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야, 결재를 하지 말랬잖어.. "
이튿날 시청으로 출근한 철수는 최대표의 허가 신청서에 싸인을 해서 박과장의 책상에 올려 놨다.
나중에 그 서류를 본 박과장이 시청 옥상으로 불렀다. 와이셔츠 소매까지 걷어 올린 그 모습에서, 박과장이 많이 흥분
하고 있다는걸 알수 있었다.
" 그냥 해 줍시다, 우리가 버틴다고 될 일도 아니고.. "
오랜 기간을 같이 근무했던 터라 사석에서는 형님처럼 친근한 사이다. 설사 나중에 일이 꼬여 내 위치가 잘못 된다
할지언정, 박과장을 구슬려 이 일을 빨리 매듭짓고 싶은 마음뿐이다.
" 뭐야, 임마.. 너도 돈 먹었냐, 내가 그렇게 얘길했는데.. 그 놈한테 끌려가면 안된다고 했잖어.. "
" 국장까지 나서서 통과시키려고 하는걸 무슨 수로 막아요, 과장님도 결재하라고 하구선.. "
" 그때는 그때고.. 내가 설명했잖어, 그 놈이 나를 엮어서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했다고.. "
" 대충 넘어가요, 우리가 무슨 청백리도 아니고.. "
" 난 못해..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그런 놈이 잘되는 꼴은 못 봐.. "
길길이 뛰는 박과장이 변수로 떠 올랐다. 처음엔 박과장이 먼저 나서서 나를 회유하려 했었다. 이제사 입장이 뒤바뀐
셈이지만, 되도록 설득을 해서 성희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
" 형님.. 그만 합시다, 나도 이젠 공무원 생활이 지긋지긋해요.. 대충 떡고물이나 챙겨서 새롭게 살고 싶어요.. "
박과장이 결재를 하게끔 해야 한다. 어차피 국장이 벌린 일이니까, 박과장만 넘어가면 모든게 끝날것이다.
" 이 자식이 근데.. 안돼, 절대 안돼.. "
" 뭔 일이야, 또.. 다신 보지 말자며? "
철수가 출근을 해야 한다며 호텔방을 나가고도, 한참을 그 곳에서 뒹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어수선한 집안을 청소도 하고, 빨래를 돌리는 중에 여진이가 찾아온 것이다.
" 술이 취했는데도 밤새 잠을 못 잤어, 나랑 얘기 좀 하자.. "
" 일단 들어와.. "
냉장고에서 오렌지 쥬스를 꺼내 놓았다. 방에 앉지도 않고 두리번 거린다.
" 웬일이냐, 니 방이 깨끗할때도 있네..
" 근데, 이 지지배가.. 염장을 지를거면 뭐하러 왔어? "
" 됐어, 이년아.. 우리가 언제 그런거 따졌다구, 지가 예민해 진거지.. "
하기사 여진이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내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도 맘대로 되지를 않는다.
"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
" 내가 오죽하면 옛날일까지 떠 올리며 생각을 해 봤어, 넌 의리도 있었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지지배였다구.. 뭐가
너를 바꿔 놨는지는 모르지만, 이건 아니지 싶더라.. "
" 너도 굶어 봐, 이년아.. 옛말에 사흘 굶으면 다 도둑년이 된다고 했어, 나보러 어쩌라구.. "
친구라고는 유일하게 저 하나뿐인데 친구의 약점만 들춰 내는게 괘씸하다. 철수에게 미안한 감정이야 왜 없겠냐마는,
그럴수밖에 없는 사정을 헤아려 주지 못하는 여진이가 못내 서운한 성희다.
" 차라리 철수씨랑 새로 시작하면 어떻겠니? "
" ...................... "
" 그렇잖어.. 공무원이면 안정된 직업인데다 너라면 껌뻑 죽는사람인데, 고생은 안 시킬거 아냐.. "
" 얘가,지금.. 그까짓 봉급이 얼마나 된다고.. "
아닌게 아니라 지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민을 주길래, 안 그래도 마음이 흔들리기는 했다. 다만 한가지, 그를
만나게 된 경위가 얄팍한 속셈을 지니고 만났기에, 양심상 그를 꺼리게 되고 엉뚱한 말만 흘러 나오게 되는 것이다.
" 미친년.. 야, 이년아~ 공무원 봉급이면 부러울게 없는 세상이야, 지가 대책없이 써 대는건 모르고.. "
" 그렇게 맘에 들면 니가 갖던가.. "
가뜩이나 골치가 아픈데, 자꾸만 나를 가르치려는 여진이가 귀찮아 진다.
" 정말이야? 너 나중에 뒷말하기 없기다.. "
" .................... "
너무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질 않는다. 아무리 내가 철수한테 관심을 두지 않기로, 친구란 년이 가로챌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게 기가 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