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통령

소통령 23

바라쿠다 2012. 9. 12. 17:42

혜영이가 얘기를 해 줬는지는 모르지만, 내 손을 부여잡은 미진이의 행동으로 볼때, 마치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남편을

반기듯 절절함마저 보인다.

" 그 놈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어..   미안해.. "

놈들에게 철저한 응징을 가하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늦은 나이에 새로운 인생을 함께 하고 싶었던 내 여자를

무참하게 유린한 놈 들이다.     

태어나지도 못하고 제 엄마 뱃속에서 생명의 끈을 놓아버린 내 자식을 생각하면, 그 놈들을 갈갈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심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놈들을 붙잡아 몽땅 죽여 버리려고 마음을 다 잡았지만, 차마 사람의 생명까지 취할수는 없었다.    

타고난 본성이 모질지 못한 내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미진이에게 미약한 결과를 전할수 밖에 없었음이다.

" 내가 죽일거야, 우리 애가 그 놈들 때문에 죽었어.. "

미진이의 입에서 거친 독설이 쏟아졌다.       마냥 온순하기만 했던 그녀도, 그만큼 가슴속에 맺혀진 한이 컸을 터이다.

뱃속에 새 생명을 잉태하고 부푼 꿈을 가졌을 그녀였다.      남들처럼 행복을 꿈꾸며 소박한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놈들의 몸에서 잘라낸 귀를 갈무리 해 와 냉동칸에 넣었었다.

잠시 얼었던 그 귀들을 후라이 팬에 올렸다.      불이 달궈진 후라이 팬 위에서 사람의 살이 익어가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 알아, 대신 그 놈들의 귀를 잘라 왔어.. "

미진이의 시선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붓고 단숨에 들이켰다.     뻘겋게 익어가는 귀를 하나 집어 입에 넣고 깨물었다.    

비릿하고 역한 냄새가 입안 가득 퍼진다.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 할뿐더러, 사람고기를 씹는다는 자체가 천인공노할 죄를

짓는것만 같아 두렵기는 하다.     하지만 이렇게 독한 짓이라도 저지르지 않으면, 오히려 내가 미칠것 같은 심정이다.

" 나도 한잔 줘.. "

맥주잔에 소주를 부어 미진이 앞에 내밀었다.      쓴 소주를 단숨에 들이킨 미진이가 후라이 팬에 젓가락을 가져가더니,

귀 하나를 집어들고는 잠시 바라보다 입속으로 가져간다.

" 우 ~~ 욱 ~ "

입속으로 오물거리며 귀를 씹던 미진이가 바닥에 몸을 구부리고 토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윤간을 당하고 뱃속의 아기까지 죽인 놈들을 향해, 내심으로야 뼈를 갈아먹어도 시원치 않을 복수를 하겠다고 작정을 

했다지만,  올바른 정신을 가진 여자가 사람의 신체를 먹는다는건 할 짓이 아닐게다.  

연신 토악질이 멈춰지지 않는 미진이의 등을 쓸어 줘야 했다.      한참만에 속이 가라 앉았는지 몸을 일으켜 의자에 앉는다.

" 난 엄마 자격도 없어..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 간 아기의 복수도 못하는 얼간이야.. "

땅속으로 스며들 듯 목소리에 힘이 없다.        안주도 없이 깡술을 들이킨 미진이의 뺨에 굵은 눈물이 흐르고 있다.

미진이를 지켜보는 내 가슴에도 눈물이 흐른다.       좋아하는 여자 하나도 지켜내지 못한 내가 한심스럽다.

 

핸폰이 울린다.  영식이다.

~ 형님..   별일 없는거죠.. ~~

" 그래, 웬일이야.. "

~ 경찰서에 비상이 걸린 모양이에요, 형사들이 형님을 찾아 다닌대요.. ~~

" 너도 조심해, 홍경장 놈이 너를 알잖어..    며칠만 숨어있어, 아우들한테도 그렇게 전하고.. "

~ 난 괜찮어요, 그까짓 몇대 쥐어 박았다고 감옥까지 갈일은 없으니까.. ~~

" 그건 니 생각이고..   그 놈들이 어떻게든 나쁜식으로 몰고 갈수도 있으니까 잠잠해 질때까지 나서지 말란 말이야.. "

~ 형님 걱정이나 해요, 세 놈이나 칼질을 해 놓구서.. ~~

" 알았다, 이만 끊자.. "

아침에 경찰서로 자수하러 가기도 전에 검거가 될수도 있다는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이곳에서 있다가 멀쩡하게 체포를

당할수는 없었다.

" 미진아 ~ 우리 바람이나 쐬러가자.. "

한마디 말도 없이 테이블에만 시선을 두고 있는 미진이의 어깨를 안아 일으켰다.      

" 아저씨 ~ 미사리로 갑시다.. "

라이브 카페라도 데려가 깊은 슬픔에 빠져 넋이 나간듯한 미진이를 달래고자 했다.

택시가 올리픽 대로를 따라 시원하게 달리는 중에도, 미진이의 시선은 차창 밖만 내다 볼 뿐이다.

 

" 뭘로 드릴까요.. "

" 시원한 맥주 몇병하고, 섞어 마시게 소주 한병 부탁해요.. "

작은 무대 위에서는 이름모를 여자 가수가 통키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그대가 그리워 서러운 날엔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대와 나누지 못한 미련들을 가슴에서 쓸어내리며..~

'꿈이어도 사랑할래요' 라는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 제끼는데 가사가 너무나 애절하다.

" 맥주라도 한잔 해.. "

" ........................ "

대답 없는 미진이의 잔에 맥주를 따랐다.       내 잔에는 맥주와 소주를 섞어 붓고 한번에 들이 마셨다.

맥주잔에 흰 거품이 가라 앉을때까지 미동도 없는 미진이다.

" 이제 그만 정신차려야 해, 내일 경찰서로 들어 가면 당분간 못 볼거야..     니가 초희를 돌봐야지.. "

" 오빠가 경찰서엔 왜 가는데..     잘못은 그 놈들이 했는데, 왜 오빠가 경찰서엘 가냐구.. "

초희 얘기가 나왔기 때문일까, 눈에 초점이 돌아온 미진이가 놈들에게 적개심을 드러낸다.

" 그 놈들도 벌을 받겠지만, 내가 칼질을 했잖어.. "

" 안돼, 갈래면 같이 가.. "

흥분을 했는지 격양된 목소리가 떨리면서 나오고, 관자놀이에 퍼런 핏줄까지 돋았다.

" 그래선 안돼, 니가 없으면 장모님하고 초희는 어쩌라구..    힘든건 알지만 마음을 굳게 먹어야 돼.. "

" 왜 그래야 되는데..    왜 나만 이런일을 당해야 하냐구.. 어 ~ 헝 ~~ "

기어코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만다.     그동안 슬퍼할 감정조차 느끼지 못했을 가엾은 여인이다.

자리를 옮겨 미진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격하게 흐느끼는 미진이의 고통이 내 몸으로 전해진다.

그나마 무명 가수가 부르는 노래소리가 커서, 다른 손님들의 이목을 받지 않아 마음껏 울수가 있었다.

 

" 안 씻을래? "

" 그냥 맥주나 마실래, 씻을래면 오빠나 씻든가.. "

미사리 근처에 있는 자그마한 모텔로 들어 왔다.      별로 할일도 없을듯 싶어 카운터에 맥주를 몇병 시킨 것이다.

" 그러자, 그럼.. "

당분간 볼수 없을 미진이의 곁에서 아쉬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작은 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데.. "

" 글쎄..   아마 2년이면 안 될까.. "

" 안돼, 더 빨리 와..   내 발 씻어 줘야지.. "

예전에 어느 지방인가 피서차 놀러갔다가 들었던 전설이 생각난다.        귀바위란 것이 있었다.

커다란 돌의 생긴 모습이 흡사 사람의 귀를 연상시켰다.      생전에 금슬이 너무나도 좋았던 부부가 있었더란다.

그들이 밤에 잠자리에 들어 사랑을 할때마다 서로 상대방의 귀를 만져 주면서 애정을 표시했단다.      

심지어는 해가 떠 있는 낮에도, 서로의 귀를 만져 주며 어제밤의 뜨거운 밤을 회상하곤 했다는 것이다.      

무슨 사고인가를 당해 남편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부인 역시 몇날 며칠을 식음을 전폐하다가 끝내는 생을 달리 했단다.

그 후로 그 전에는 없었던 귀바위가, 부인이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그 장소에서 솟아 났다고 들었다.

미진이도 그들 부부처럼, 자신의 발을 씻어 주는것에 대해 어떤 의미로 생각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 그럼 지금 씻어 줘야겠네. 후후.. "

욕실에서 물을 받아 미진이의 발 앞에 세숫대야를 내려 놨다.       미진이의 종아리가 더 가늘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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