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통령

소통령 25

바라쿠다 2012. 9. 19. 12:22

뭐가 뭔지 반쯤은 혼이 빠진 영식이다.

아침뉴스마다 영훈이 형이 저지른 일로 난리가 난 듯 떠들어 댔다.      희대의 사건이라며 온통 영훈이 형 얘기 뿐이다.

경찰서에 자수를 하는 형의 모습이 TV에 보여지고, 세 사람의 귀를 짤라낸 엽기적인 사건이라며 입방아들을 찧고 있다.

갑자기 기자란 인간이 찾아와서는 영훈이 형을 빼 주겠다며, 말도 안되는 공언을 할때부터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자기가 영훈이 형한테 사건 내용을 들었다면서, 내일 아침신문에 기사를 실어야 하니까 미진이를 만나게 해 달라고 했다.

그의 뜻대로 혜영이를 시켜 미진이 형수를 만나게 해 줬더니, 이번에는 단란주점 사장인 최인숙과 청송스님, '모래시계'

사장까지 데려 오란다.

갑자기 영훈이 형 가게로 모여든 인원이 대충 15명이 넘어선다.

그러자 신문사로 전화를 해서는 사진기자까지 오라고 하더니, 모여든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나한테 전부 받아 적으라며

난리를 피워댄다.

" 저 사람 말처럼 오빠가 나올수 있을까? "

가게문을 닫고 돌아가는 상황에 촉각을 세우는 미희다.

" 난들 아냐, 형한테 도움이 된다니까 시키는대로 해 보는거지.. "

청송스님과 무슨 얘긴가를 나누는 기자를 지켜봤다.     그 옆에는 미진이 형수 역시 두 손을 합장하듯이 모으고는, 그네들의

얘기를 간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영훈이 형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하니까 행여나 하는 심정일 것이다.

무슨 얘기가 오고가는지 그네들의 옆으로 다가가 들어보기로 했다.

" 스님께서 사람들을 데리고 검찰로 가서 탄원서를 내 주세요.. "

" 그래 봅시다, 아까운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쳐야지.. "

" 내일쯤 가셔야 할 겝니다.. "

" 그러죠.. "

" 홍경장 일행도 병원에서 응급 치료가 끝나는대로 구속이 될 겁니다.. "

" 아귀같은 놈들, 아미타불.. "

" 그 녀석들도 취재를 해야 합니다, 먼저 일어 나겠습니다.

신문 기자가 일어서고도 한바탕 난리를 떨어야 했다.       영훈이 형에게 도움이 된다며 모여 든 사람들에게 지장을 찍으란다.

 

" 도대체 일처리를 어떻게 한거야? "

경찰서장인 최판석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경찰청장을 위시한 경찰청의 고위 간부들이, 이번 사건의 수사 본부를

차려놓은 자신의 경찰서로 몽땅 몰려든 것이다.

" 죄송합니다, 청장님.. "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모르지만 무조건 사과부터 해야 했다.

이른 아침 조간 신문들이 일제히 경찰의 무능을 질타하고 나섰다.

병원에 누워있는 피해자 홍경장이 사실은 서민의 피를 빨아먹는 악질 경찰이었으며, 그의 비행을 투서한 김영훈은 영웅으로

둔갑해 있었다.

더군다나 고발자의 신원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함에도,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귀뜸을 해주어 홍경장이 김영훈의 약혼자인

이미진을 납치하고, 세 놈이 돌아가며 그 여자를 강간을 했으며, 마침 임신중이던 그 여자의 질속에 야구 방망이를 쑤셔넣어

뱃속의 아이를 사산까지 시켰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김영훈이 그들 셋을 잡아, 한쪽 귀들을 짤라버린 희대의 복수극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 죄송하다고 끝날 문제가 아냐, 종교계 인사들이 검찰청에 몰려가서 김영훈이를 석방해 달라고 탄원을 냈단 말이야.. "

" 아무리 그래도 현행범인데.. "

" 근데, 이 사람이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못하네.. "

" ............................ "

" 신부들과 스님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고..    사진 기자들이 살 판이 났어, 대한민국 검찰청이 모든 국민들의

구경거리가 됐단 말이야.. "

" ............................ "

" 피의자를 당장 데려 와.. "

 

" 김영훈씨..   이리 나오세요.. "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지샌 영훈이다.       사복 차림의 형사 둘이 찾아 와서는 이름을 불러댄다.

" 어디 가는데.. "

" 서장실로 데려 오랍디다.. "

" 난 싫어..   가기 싫다고 전하슈.. "

오전에 면회를 왔던 박치영이 석방이 될수도 있다는 얘기를 해 줬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나가기는 싫었다.

내 여자가 핍박 당하고, 내 자식이 세상 구경도 못한채 죽어갔다.      그런 무리들한테 선처를 받는 모양새로 나가기는

싫었다.

" 이 양반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서장실에는 경찰청장도 와 있다구.. "

" 경찰청장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어?   홍경장한테 투서한 사실을 알려준 놈이나 데려 와.. "

내 분을 삭히기 위해서는, 그 일에 동조한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어찌 생겨먹은 놈이 법으로 보호를 받게끔 되어있는

고발인의 신상명세를 빼 돌렸는지 묻고 싶었다.      아니, 할수만 있다면 그 놈 귀도 싹뚝 짤라내고 싶었다.

" 어허 ~ 뭘 잘 했다고 버팅겨..   한번 혼이 나야겠구만.. "

" 그래, 너 말 잘했다..   어디 한번 해보자, 개자식들아..   몽땅 덤벼.. "

가뜩이나 울분을 삭히고 조용히 지내고자 했건만, 높은 놈이라고 거들먹거리는 꼴에 부아가 치밀었다.

철창을 붙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더니, 유치장 안에 있던 피의자들이 좋은 구경거리가 생긴듯 모두가 일어서서

벌어지는 사태를 주시하며 웅성댄다.

" 미치겠네, 도대체가 말이 안 통하는 인간일세.. "

" 그러니까 생사람 귀를 짤랐겠지..   건들지 말자구, 괜히 우리까지 불똥이 튈지 몰라.. "

씩씩 거리던 형사들이 유치장 근무자에게 뭐라고 속삭이고는 문을 열고 사라진다.

 

" 그 자식이 뭘 믿고 버팅기는거야? "

사방에서 걸려오는 전화로 몸살을 앓던 서장이다.      관내를 책임지는 서장으로서 걸려오는 전화를 피할수도 없었다.

조용하던 임기중에 느닷없이 몰려온 태풍이었다.      그간 평점 관리를 잘 해 왔기에, 남은 임기만 잘 채우면 경찰청의 요직

하나 정도는 꿰어차리라 생각하던 중이었다.

청장을 위시한 직속 상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태풍의 중심에 있는 김영훈이 뻗대고 있다.

" 저기..   홍경장한테 자기를 알려준 사람을 불러 달라구.. "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 홍경장 친형이 청와대에 있는데, 아마 그 양반이 정보를 빼 낸것 같습니다.. "

뭐가 뭔지 복잡해서 정리가 되질 않는다.     꼬이고 꼬인 실타래가 쉽게 풀리지를 않는것이다.

" 청장님..  그냥 법대로 처리하시죠.. "

되도록 빨리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다.      경찰서 가득 모여든 취재진들을 쫒아버리고 싶다.

" 이사람아, 모르는 소리 좀 작작해..   위에서 시킨 일이야, 청와대로 들어가서 보고를 해야 한다구.. "

" 청와대요? "

" 신문이고 방송이고간에 온통 난리가 났는데 거긴들 모르겠나.. "

아무래도 된 통 걸려든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빠져 나가기 힘든 올가미에 걸려버린 것이다.

올 초에 와이프가 조상 묘에 다녀 오자고 했던걸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던게 후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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