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통령

소통령 24

바라쿠다 2012. 9. 15. 14:30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는, 아침 일찍 미진이를 집에 데려다 줬다.

아무것도 모르는 장모님을 안방에 정좌케 해 드리고 큰 절을 올렸다.      

바쁜 일 때문에 당분간 집을 비우게 됐노라고 얼버무렸을 뿐이다.      곁에서 지켜보는 미진이의 얼굴이 어둡다.

연립을 나와 택시를 타러 가는데 미진이가 큰 길까지 따라 나선다.      우리네의 이별과 상관없이 차량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 그만 들어가..   술은 조금만 마시고.. "

옆에 오더니 가만히 팔짱을 낀다.      잠시동안 발 끝만 내려다 보는 미진이다.

" 몸 조심하고, 밥 잘 챙겨먹고..  또 쌈질하지 말고.. "   

" 그래, 나도 앞으로는 변해야지..   이번에 다녀오면 널 지켜주면서 살께.. "

진심으로 그렇게 하고 싶었다.     모든게 덧 없는 기분이다.     그저 그녀와의 새 삶만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 거기 가서도 내 생각 많이 해..  나도 오빠 꿈만 꿀테니까.. "

" 그래, 우리 꿈속에서 만나자.. "

" 키스해 줘.. "

팔짱을 풀고서 내 앞에 마주서는 미진이다.      오랜 시간 못 본다는 생각에 나 역시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미진이의 양 볼을 가볍게 감싸고 입술을 맞 댔다.      입을 벌린 미진이가 내 등을 끌어 안더니 혀를 넣어 헤집는다.

워낙 세차게 내 혀를 빠는 바람에 입안이 얼얼하다.      지나가는 차들이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긴양,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 온다.

 

택시를 경찰서 앞에 세웠다.

수많은 사람들이 경찰서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택시에서 내린 나를 수많은 사람들이 에워 싼다.      방송국의 사람들인지 카메라를 메고 있는 사람도 있고, 최신 휴대폰을

들이대는 사람들도 있다.       정문을 지키는 전경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그저 바라다 볼 뿐이다.

놈들의 귀를 잘라낸 것이 그네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나 싶었다.

" 저기요, 김영훈씨가 맞나요? "

여자의 목소리다.     두겹,세겹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무슨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듯 호기심을 보인다.

" 내가 김영훈이 맞소.. "

" 왜 사람의 귀를 짤라 냈나요.. "

이번에는 남자 목소리다.      몰려든 사람들이 밀고 당기는 바람에 균형을 잡기도 어렵다.

" 죽이고 싶었지만 죽일수가 없었어.. "

" 그 이유가 뭔가요.. "

" 그건 그 놈한테 물어 봐, 평생 짝귀로 반성을 하면서 살 놈한테.. "

" 그 중 한사람이 경찰이라던데요.. "

" 대한민국의 경찰들은 다 썩었어..    내가 그 못된 놈을 징계하라고 고발을 했는데, 신고자의 비밀을 지켜 주겠다던 경찰이

그 놈한테 내 이름을 가르쳐 준거야.. "

" 그게 무슨 말인가요, 자세히 얘기 좀 해 보세요.. "

경찰서 안에서 전경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를 에워싸고 있던 기자들을 밀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나를 에워싼다.

" 김영훈씨..   들어갑시다.. "

사복 차림의 형사인 듯한 남자 둘이 양쪽에서 내 허리띠를 꿰어 잡고 팔짱까지 낀다.

어수선하게 밀고 밀치는 사이 경찰서 현관앞에 다다랐고, 그곳에서도 수많은 카메라 후래쉬가 터지고 있다.

 

곧바로 유치장으로 수감될줄로만 알았건만, 3층에 있는 경찰서장의 집무실로 데려간다.

" 앉으시죠.. "

정복을 입은 경찰서장이 자신의 책상에 앉아 있다가 일어선다.     그때까지 양쪽에서 나를 에워쌌던 형사들이 맞은편

쇼파에 나를 앉히더니 물러선다.

" 김영훈씨가 신문사에 알렸겠죠.. "

알이 작은 안경을 걸친 서장이 말문을 연다.      짧게 깍은 머리지만 정수리 부근은 기름을 발라 뒤로 넘긴 모양새다.

" 나는 아직 신문을 보지 못했는데.. "

" 송경장 어디갔어, 빨리 오라고 해.. "

" 네, 서장님.. "

느긋한 내 대답에 무척이나 화가 난듯 고함을 지르는 서장의 서슬에, 나를 에워쌌던 무리중의 하나가 급히 서장실을 빠져

나간다.

송경장이 올때까지, 분을 삭이지 못한 서장은 안경 너머로 나를 노려다 보고 있다.

" 데려 왔습니다.. "

형사의 뒤로 송경장이 머뭇거리며 들어서서는, 이내 부동자세가 되어 서장에게 거수 경례를 올린다.

" 너..   어떻게 할거야?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보고를 했어야지.. "

길길이 뛰는 서장의 서슬에 말없이 고개를 숙인 송경장이 안쓰러워 보인다.

" 이보쇼, 서장 양반..   저 친구가 무슨 죄가 있어, 내가 그 놈들 귀를 짜른걸 알지도 못했는데.. "

" 당신은 조용히 해 ~   지금 밖에서 얼마나 난리가 났는데 뭘 잘했다고 나불대는 거야.. "

" 당신도 별수없는 인간이구만.. "

" 뭐 ~ 지금 뭐라고 했어..   너 죽고 싶어?  "

" 그래, 죽고 싶어서 자수했다..   어떻게 죽여 줄래.. "

" 근데, 저 자식이.. "

이판사판 할 말은 다하고 싶었다.      놈들의 귀를 짤라 낸 것만으로는, 안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던 참이다.

어느놈이 됐던지, 남은 찌꺼기를 몽땅 쏟아붓고 싶었다.     그 대상이 서장이어도 상관이 없었고, 설사 더 높은놈이 온다

할지라도 내 울분은 토해내고 싶다.

" 당신같은 경찰들 땜에 송경장처럼 착실한 경찰이 욕 먹는거야..    니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을 쳤기 때문에 홍경장이

에미 뱃속에 있는 내 애를 죽였다구.. "

" 저건 또 뭔 소리야..   홍경장이 애를 죽였다니.. "

서장도 자세한 내막은 모르는 듯 싶었다.     그저 관내에서 근무하던 홍경장이, 귀가 떨어져 나간 테러를 당한것만 알고 있는

눈치다.

" 저기..   박치영이가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났습니다..    김영훈이를 접견하겠다고.. " 

급히 서장실로 들어 온 정복 경찰이 서장에게 보고를 한다.

" 그 기자놈이.. "

 

" 우선 인사나 해요..   앞으로 형님의 변호를 맡을 분입니다.. "

서장실 옆에 있는 사무실에서 접견을 했다.      문쪽에서는 정복 경찰 하나가 지키고 있다.

" 그래, 몇년이나 받겠수? "

다 귀찮았다.    모든걸 끝낸 지금 내가 받을 형량이나마 알고 싶었다.

" 그거야 아직 모르죠, 사람 귀를 셋이나 짤랐는데..    그보다 무슨 이유인지를 알아야 변호를 하든지 말든지 하죠.. "

" 그래요, 형님..    법도 눈물이 있으니까, 변호사한테 다 털어 놔요.. "

일단락 지었다는 맘도 있었고, 궁금해 하는 박치영에게 알려줘야만이 다소 남은 찌거기조차 걷히리라는 바램이 든다.

" 나한테 결혼할 여자가 있었어..    자네도 알겠지만 홍경장 그놈이 비리가 많았잖어, 그래서 내가 경찰에 투서를 했는데..

아, 글쎄 그놈이 내가 투서를 한걸 어찌 알았는지, 복수를 한다고 그 여자를 납치해서 윤간을 했지 뭐야..    그때 뱃속에

있던 애가 사산까지 됐구.. "

" 그런 얘기를 왜 이제야 하는겁니까?   참, 답답한 양반일세.. "

무슨 큰 일이라도 되는양 흥분을 하는 박치영이다.      가뜩이나 심란한데 나를 닥달하는 박치영이한테 서운함이 인다.

" 뭐 좋은 얘기라고 다 떠 벌려..   괜히 쪽이나 팔리지.. "

" 최변..   당신은 형님하고 마저 하던 얘기를 끝내라고..   난, 신문사에 가야 되겠어..    이건 특종이야, 특종.. "

변호사와 나를 남겨두고 박치영이 부리나케 사무실을 빠져 나간다.

" 다시 한번 처음부터 자세히 얘기해 보세요, 홍경장을 투서한 그 때부터.. "

 

 

'옴니버스 소통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통령 26  (0) 2012.09.24
소통령 25  (0) 2012.09.19
소통령 23  (0) 2012.09.12
소통령 22  (0) 2012.09.07
소통령 21  (0) 2012.09.04